따뜻한 밤

밤의 카페 테라스-빈센트 반 고흐, 1888년

by 루시

2월의 그리스 아테네는 을씨년스러웠다. 겨울의 유럽은 처음인지라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으슬으슬한 추위가 어떤 것인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절감했다. 우리나라처럼 영하 10도, 이렇게 드라마틱한 추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라고. 음 이런 건가.

그렇게 그리스 여행은 시작되었다. 공항에서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까지는 쉽게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예약한 숙소까지 찾아가는 길이 험난했다. 구글 지도가 모바일 서비스를 시작하기 이전이라 예약 사이트에 나온 설명과 지도에 의지해서 찾아가는 것은, 나름 어려운 일이었다.

그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땀이 떨떨 날 정도로.

지도 서비스가 이렇게 생활 깊숙이 들어온 지금은 정말, 상상도 되지 않는 일이긴 하다.

낯선 도시에서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으슬으슬 몸을 파고드는 추위와 싸우면서 헤매는 일은,

여름보다 몇 배는 사람을 더 진 빠지게 만들었다.

헤매고 헤맨 끝에 드디어 숙소에 짐을 풀 수 있었다. 한 달이 넘는 일정으로 떠난 그리스/터키 여행의 짐도 만만치는 않았다. 하지만 그대로 숙소에 널브러져 있기에는 날이 너무 밝았다. 그래서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 가장 번화한 곳으로 나갔다. 광장 앞 맥도널드에서 치즈버거를 시켰는데 치킨버거가 나오는 놀라움을 경험하며, 이미 물어뜯은 치킨버거를 망연자실 바라보다가 꾸역꾸역 넘겼다. 이번 여행에서 ‘c’로 시작하는 버거는 시키지 말자. 비프버거로 가자. 아 이런, 제일 싫어하는 치킨버거라니. 목이 자꾸 메이는 것이 콜라를 마시지 않았기 때문인지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의 생고생 때문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신타그마 광장 의회 앞에서는 근위병 교대식이 열렸다. 그들이 팔과 발을 과장되게 올리는 모습이 현실감이 없어 넋 놓고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의회를 등지고 쭉 내려가면 에르무 거리로 이어진다. 쇼핑가다. 명동 같고 사람 미어터졌고 의류, 신발, 잡화 등 아는 브랜드 모르는 브랜드가 혼합되어 입점되어 있다. 그렇게 그리스 알파벳과 친해지고 있자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래서 저 멀리 아크로폴리스가 보이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노천카페였는데 신기하게 의자가 아를의 고흐의 방에 있던 의자와 같은 의자였다. 물론 밀짚이 아닌 플라스틱인가 하는 인공소재로 앉는 부분을 엮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겉보기에는 고흐의 의자였다.

기쁜 마음에 착석. 희한하게 노천카페에 앉아 있는 데에도 춥지는 않았다. 여기서 맥주를 참을 수 없지.

맥주 일 병 시키고 어스름이 내려앉는 아테네에 앉아 있자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태양이 서서히 저 너머로 넘어가고 석양이 비명을 지르듯 빨간빛으로 하늘을 물들였다. 그리고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해가 넘어가는 시간을 좋아라 하는데 서양 문명의 시원에서 그 시간을 만끽하고 있자니 행복은 지극에 달했다.

비어져 나오는 웃음에 맥주가 옆으로 흐를 지경.

로마와는 또 다른 매력, 로마가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개구쟁이라면 아테네는 고고한 이상주의자. 정제되고 고결한 인품이 느껴진다. 현실의 잡다한 문제에 천착하기보다는 그 본질을 움직이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건축에서 조차 이상미를 구현하고자 했던 그리스인들의 정수가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에서, 박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그렇게 추위도 잊은 채(나 취한 거?) 행복감에 젖어 이 세상에 태어나길 잘했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맥주를 드링킹.

물론 파르테논 신전을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그 카페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왠지 모르게 묘하게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밤의 카페 테라스에서 봤던 노란색의 주조가 아테네의 그 카페에도 묻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밤의 카페 테라스-kroller-muller-museum.jpg [from kroller muller museum]

아를은 조용한 시골 도시였다고 한다. 놀거리 즐길거리가 프랑스 파리에 비해서 현저히 떨어지는 깡촌 아를은 작품에 전념하기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을지도 모른다.

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반 고흐는 이 그림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푸른 밤, 카페 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어. 그 위로는 별이 빛나는 파란 하늘이 보여. 바로 이곳에서 밤을 그리는 것은 나를 매우 놀라게 하지. 창백하리만치 옅은 하얀빛은 그저 그런 밤 풍경을 제거해 버리는 유일한 방법이지. … 검은색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아름다운 파란색과 보라색, 초록색만을 사용했어. 그리고 밤을 배경으로 빛나는 광장은 밝은 노란색으로 그렸단다. 특히 이 밤하늘에 별을 찍어 넣는 순간이 정말 즐거웠어.” 이어서 그는 “기 드 모파상(Guy de Moupassant, 1850-1893)의 소설 『벨 아미(Bel Ami)』(1885)는 대로의 밝게 빛나는 카페들과 함께 파리의 별이 빛나는 밤에 대한 묘사로 시작되는데, 이 장면은 내가 방금 그린 것과 거의 같은 거야”라고 덧붙이기도 했다.(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고흐가 편지에서 밝힌 것처럼 이 푸른 밤하늘 아래 펼쳐진 카페 테라스의 노란 가스등은 공간을 매력적으로 채우고 있다. 맑지만 약간은 차가운 기운이 돌 것 같은 어느 봄밤이 아닐까? 카페 위층의 가정집은 창문을 열어 상쾌한 봄기운을 실내로 들이고 있다. 주목나무처럼 보이는 우측의 나무 역시 녹색의 싱싱한 생명력을 내뿜으며 반대편 카페의 노란 가스등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4월의 어느 봄밤, 이제 아를의 아름다운 자연이 생동할 직전에 사람들 역시 삼삼오오 카페에 모여 담소를 나눈다.

“올해 밀 농사는 잘 될까?”

“당신도 참,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저 잘 되길 빌 뿐이지.”

“쟝이 결혼한다는데 당신은 천하태평이네. 사람이 어떻게 그래?”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요? 성인 된 놈이 지 밥벌이하고 결혼하는 거야 지가 알아서 할 일이지 부모가 무슨.”

이렇게 농사와 가정 대소사를 두고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지 않았을까. 그래서 카페 공간이 예나 지금이나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물론 집에서 얘기를 나눌 수도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 벗어난 ‘다른’ 공간에서 얘기를 나누는 것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눈앞의 풍경이 다르고 (가구가 아닌 자연과 가게가 있고 다른 사람들이 보인다.) 분위기가 다르다. 그러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평소와는 다른 생각을 확률이 높아진다. 다른 문제를 얘기할 수도 있고 다른 해결책을 찾아갈 수도 있다. 뭐가 되었든 중요한 점은 우리가 그 공간에서 서로서로의 얘기를 들으며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점이다.

물론 혼자일 수도 있다. 고갱과 싸운 고흐가 깊은 절망에 빠져 혼자였던 것처럼. 그림에도 여자 홀로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저 시대에 ‘나 홀로 카페족’이 많지는 않았겠만.

아를은 너무 따분해. 나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 역시 파리로 가야겠어. 파리에 가면 나의 감성과 재능을 펼칠 곳이 여기보다는 더 많고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거야.

여자는 홀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빛이 쏟아지는 카페에 앉아 있다. 5월이 되면 문화의 중심지 파리로 가서 꿈을 펼치기로 지금 막 그녀는 굳은 결심을 했다. 푸른 밤하늘처럼 청운의 꿈을 안고.


이 한적한 시골의 카페를 이렇게 따뜻하게 그리면서 고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 역시 누군가와 함께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훈훈한 가스 불빛 아래에서 생각을 나누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맨날 동생에게 편지를 쓰는 것 말고 실제 입을 열고 말을 하고 싶다고.

하지만 또 아무도 옆에 없다고 한들 무슨 상관일까? 하늘에 외로이 별이 빛나고 가스등이 어둠을 밝히고 영혼을 위로할 당신의 소울 음료가 있다면 그런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온기가 퍼지지 않을까. 희망이 스멀거리지 않을까. 이 눅진한 노오란 빛이 충만한 밤의 카페 테라스를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따로 또 같이 이렇게 밤은 따뜻한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