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랭 드 라 갈레트 무도회-오귀스트 르누아르, 1876년
춤을 춰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졸업하고 바로 취직한 회사 생활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시점이었다. 출근 시간은 정해져 있었지만 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고 당연한 얘기지만 주 52시간 같은 꿈같은 얘기가 혀끝에도 나오지 않던 시절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가당치도 않게 토요일에 출근을 했었다.
‘반공일(半空日)’이라는 용어가 지금은 자취도 남아 있지 않지만 회사 취직하고 첫해인가 두 번째 해까지는 토요일에도 출근을 했다. 토요일이 반공일이었다. 반은 일하고 반은 쉬고. 오전에 나와서 오후에 퇴근하는 것이었다. 반은 공휴일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토요일에 출근해서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딱히 하는 일이 없었다. 선배들은 따분하게 신문을 뒤적거렸고 후배들도 슬슬 눈치를 보면서 일하는 ‘척’을 하다가 점심이 되면 “식사나 하고 퇴근하지?” 이런 선배의 말과 함께 회사 근처의 식당에 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점심을 먹고 퇴근을 하는 거였으니 진짜 왜 나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토요일 출근은 그렇다 치고 근무 시간이 저주스러우리만큼 안 길었고 퇴근 시간 역시 일정치 않아서 퇴근 후 학원을 다닌다거나 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댄스 동호회에 가입하는 거였다. 댄스 동호회는 강제성도 없었고 내가 시간 맞을 때 동호회 모임에 나가서 기초적인 스텝을 배우고 회원들과 춤을 추는 것이니 당시 나의 상황에 비추어 봤을 때 적당해 보였다. 그래서 다음에서 가장 큰 라틴댄스 동호회에 가입했다.
지금 생각하면 젊은 혈기였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았나 싶다. 댄스 동호회에 혼자 가입하다니, 지금의 나라면 가당치도 않을 일이다. 하지만 당시 스트레스는 하늘을 찔렀고 뭐라도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으니 당연한 귀결이었던 걸까 싶기도 하다.
정기모임 장소는 홍대 지하 연습실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 모임에 참가했다. 동호회원들은 많지만 정기모임에 참석하는 인원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에 일단 안도했다. 나이는 실로 다양한 범주를 커버하고 있었는데 이십 대부터 사십 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좋아서 온 동호회원들이었다. 라틴댄스의 기본도 모르던 나는 살사, 메렝게, 탱고 등 라틴댄스의 기본 스텝 정도는 알게 되었다. 특히 메렝게가 아주 쉬웠던 것으로 기억하고 탱고는 상당한 난도를 자랑했던 것이 아련히 떠오른다. 가죽을 덧댄 댄스화를 사고 회의가 10시에 잡힐 때면 저녁을 마다하고 홍대로 넘어갔다가 10시에 맞춰서 다시 회사로 귀가하는 번거로움도 번거롭다 생각하지 않고 다녔다. 그런 나를 다른 생태계의 일원인 것처럼 신기하고 이물스럽게 바라봤던 선배들의 시선이 지금도 생각난다.
한 번은 나이 지긋한 중년 남자와 살사를 출 기회가 있었다. 속으로는 실망하면서(왜 나 같은 젊은이가 파트너가 아닌가!) 춤을 추는데, 정말 놀랐다. 나는 그를 통해서 댄스의 소위 ‘밀당’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었다. 보통은 나와 같은 초짜들은 스텝을 밟는 것에 정신이 빼앗겨 ‘tension’이라는 것을 어떻게 쓰는지 까지는 신경 쓰지 못한다. 그런데 그 중년 남자가 나에게 tension이 무엇인지를 몸소 알려 주었다. 남자는 잡아당기려고 하고 여자는 버티려고 하는 것에서 나오는 작용/반작용으로 인해서 몸의 턴은 화려해지고 속도를 얻는다. 비로소 ‘춤’이 완성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중년 남자는 ‘춤꾼’이 아니었을까? 상당히 능숙한 솜씨로 춤을 리드했고 어떤 식으로 힘을 줘야 하는지, 버텨야 하는지를 조곤조곤 설명해줬다.
사실 라틴댄스 동호회를 시작하면서 간직한 꿈이 있었다. 언젠가 크루즈로 남미에 가서 본토에서 라틴댄스를 멋지게 춰보리라! 물론 실현되지 못했다. 중미에서 멈췄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나중에라도 남미에서 라틴댄스를 추게 된다면 그 중년 ‘춤꾼’의 덕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라틴댄스의 열기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이사 갈 때 아끼던 ‘댄스화’를 처분한 것을 마지막으로 몸을 흔드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주변인들은 거의 음주가무에 능하지 않다. 나도 딱히 능하지 않으니 무도장과의 거리는 북극과 나와의 거리만큼 벌어져 있는 상태다.
하지만 지금도 생각한다. 답답할 때 생각이 막혀 있을 때, 신나는 라틴음악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고 싶노라고.
물랭 드 라 갈레트 무도회는 라틴댄스와는 거리가 있다. 여기는 왈츠 같은 스탠더드 댄스가 어울린다. 물론 영화에서 보는 것같이 귀족들이 데뷔를 하는 화려하고 고급진 실내 연회장은 아니다. 여긴 몽마르트르 언덕의 야외 댄스홀이다. 무도회지만 자유분방함이 넘쳐흐른다. 햇살이 자유롭게 흘러넘치는 것처럼 이 야외 댄스홀을 둘러싼 공기는 느슨하고 격식 없다. 앞쪽에 언니를 따라 나온 금발의 소녀까지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어느 휴일 오후, 가족끼리 혹은 연인끼리, 친구와 함께 여흥을 위해서 모두 여기 운집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언니, 나도 춤추고 싶어.”
“넌 아직 어려서 안돼. 봐, 모두 춤을 잘 추지? 먼저 춤을 배워야 해.”
“그럼 언니가 가르쳐줘.”
언니가 하는 것은 동생들은 뭐든 따라서 하고 싶어 하는 법이다. 언니는 아마도 남자 친구와 비밀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 동생을 방패로 데리고 나온 것이 아닐까?
그들 오른편의 자매 두 명의 낯이 익다면 당신은 눈썰미가 뛰어난 사람이다. 르누아르의 작품에 종종 모델로 등장한 잔느와 에스뗄 자매라고 한다. 르누아르의 작품 속 여인들이 화풍 때문인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는 인상을 받는데 흠흠, 역시 동일인이었던 건가요?
그녀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남정네 3명은 르누아르의 지인이라고 한다. 한 명은 실크햇까지 멋지게 쓰고 오늘에 임하는 결연한 자세가 엿보이는군요. 무도회장을 쭉 둘러보니 실크햇에 성장을 한 사람, 평범한 중절모를 쓴 사람 등 복장에서도 자유로움이 묻어난다. 드레스 코드가 엄격하지 않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야외인데 왜 조명이 있을까? 저 샹들리에는 뭐지? 싶지만 그것들이 있음으로 해서 일렁이는 햇빛이 더 잘 전달되고 있다. 남자의 목을 부여잡은 흰 드레스의 여자는 그를 많이 사랑하나 보다.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여자의 귀에 대고 뭔가 여자가 좋아할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고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서는 여자의 얼굴이 저렇게 빛날 리가 없다. 그들의 좌측으로 보이는 커플은 아직 친밀도가 농익지 않았다. 왠지 겸연쩍어하는 신사의 표정도, 배시시 웃고 있는 핑크빛 드레스의 여자도 이제 막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의 커플 같은 풋풋함이 묻어난다. 춤을 추고 있지 않아도 시선과 시선이 마주치고 서로 말을 주고받으면서 무도회장은 엄청난 사랑의 잠재력을 하나씩 하나씩 축적해가는 중이다. 그래서 무도회장은 즐겁다. 현실이 비루할 지라도 미래의 어떤 잠재력을 꿈꿀 수 있기에. 햇살이 내리비치는 화창한 오후, 화려한 사람들 사이에 있노라면 그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도 어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지금은 코로나로 이런 군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지만 언젠가는 ‘무도회장’에 다시 발을 들여놓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남미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