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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계현 Dec 25. 2021

"산타 싫어~ 엄마가 돈 주고 선물 사 오면 안 돼?"

- 산타할아버지, 올해 저희 집에는 안 오셔도 될 것 같아요. 

크리스마스다. 메리 크리스마스!! 별 약속이 없는 탓에 명동 거리를 활보하지는 못하지만, 크리스마스는 그냥 설렌다. 다이소에서 만원 flex로 반짝이 줄 장식과 트리를 사다가 집안을 정신 사납게 꾸며놨다. 화장실과 안방 벽면을 따라서 기다란 전구를 붙였다. 역시 연말에는 빤짝빤짝, 휘황찬란해야 제 맛이다. 


트리를 꾸미면서 크리스마스이브를 기다렸다. 크리스마스날 아침, 트리 밑에 놓인 선물을 보면서 흥분과 설렘으로 행복해할 아이를 생각하면서~ 아, 근데 우리 연우는 산타가 누군지 잘 모른다. 재작년 크리스마스에는 남편이 산타 분장을 하고 어린이집에 나타났었다. 다른 아이들은 꼬집고 매달리면서 신나 했는데, 연우는 울었다. 가까이 오지도 않고 선물도 안 받겠단다. 연우는 모르는 사람을 보면 경계한다. 그러지 마라. 아빠다. 


아빤데.. 아빤데... 산타가 싫다면서 엄마한테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연우(당시 만 2세, 그럴 수 있지.. 암)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회사 교육 때문에 아이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 올해는 기필코 산타가 무엇인지, 크리스마스의 설렘이란 게 무언지 알려주고 싶었다. 근데 우리 연우는 빨간 옷만 입고 다니는, 뚱뚱하고 털 많은 이 할아버지를 안 좋아한다. 재작년의 공포를 아직도 기억하는 건지, 산타로 분장한 아빠가 자신만 졸졸 따라다니던 그날의 공포. 어릴 때 나를 떠올려보니, 산타를 만화로 처음 접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핑크퐁에서 나온 크리스마스 만화를 보여주었다.


"엄마, 나 이거 안 볼래."

"왜?"

"저 할아버지 도둑 같아."


빨간 옷 입은 할아버지가 굴뚝으로 들어오는 장면이었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봐도 그 장면은 주거 침입처럼 보였으니. 살면서 단 한 번도 산타의 진의를 의심한 적 없었는데,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어... 어... 근데, 저건 말이야. 나쁜 짓 하려고 그러는 건 아니고, 산타 할아버지가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려고 그러는 거야. 아이들이 자는 동안 몰래 두고 가려고."

"나도 선물 받아?"

"연우, 자기 전에 치카 잘했어?"

"응." (엄마 속마음: 도리도리)

"엄마가 밥 먹자~ 하면 바로 와서 밥 먹었어?"

"응." (엄마 속마음: 도리도리)

"엄마가 자자~ 하면 바로 잤어?"

"..... 응." (엄마 속마음: 도리도리)

"그래. 그러면 우리 연우는 착한 일 많이 했네.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주시겠는데?"

"근데 선물 받기 싫어."

"어? 응? 왜?"

"그냥 엄마가 돈 주고 선물 사주면 안 돼?"

"..."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주실 거라고, 끝까지 우기려다가 말았다. 낯선 사람이 선물을 주면 경계하라는 안전교육을 잘 받아서인지, 엄마가 평소에 군말 없이 잘 사주어서인지, 연우의 당당한 표정과 말에 더 이상의 설명을 접었다. 그래, 올해는 엄마가 사줄게. 누가 사주면 어떠랴. 한 해를 돌아보고, 지금의 내 모습을 돌아보고,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게 연말이면 되지. 산타 할아버지, 올해 저희 집은 건너뛰셔도 될 것 같습니다. 산타할아버지도 메리 크리스마스!!! (전 어렸을 때 할아버지를 한 번도 도둑으로 의심한 적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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