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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계현 Dec 17. 2021

사랑하는 배뚱이에게

- 둘째를 반대하는 남편 설득하기

사랑하는 배뚱이에게


결혼 7년 차, 재잘거리는 5살 딸아이, 여전히 퍽퍽한 살림이지만 서로 능력이 있기에 그렇게 걱정되지는 않아. 연우는 여전히 작고 어려서 늘 붙어 다녀야 하지만, 함께 카페도 가고 나름 의미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좋아. 똑같은 시나리오의 역할놀이를 무한 반복하는 게 짜증 나기도 하지만, 그래서 일부러 틀리게 말해서 연우를 짜증 나게 하는 얄궂은 엄마지만, 그렇게 투닥거리면서 지내는 게 나쁘지 않아. 난 지금 만족해.


그런데 왜 둘째에 대한 미련이 가시지 않는지 모르겠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임신을 상상하다니. 이미 생긴 아이라면 그저 받아들이는 단계를 고민하면 될 텐데, 마흔의 임신은 미리 모든 걸 계획하고 시작해야 해서 고민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 사실 임신이 될지 무사히 출산을 하게 될지도 걱정이지만, '출산보다 열 배 힘든 게 육아'라는 걸 이미 알아버렸기에, 출산 이후의 고민이 사실 더 크다.


내년 3월에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면 월 대출금만 150만 원(그것도 잘해야), 숨만 쉬어도 나가는 고정비 100만 원, 아무리 아껴도 생활비 150만 원, 둘이 400만 원은 벌어야 하는데, 아이 출산하고 1년 정도는 돈보다는 육아가 우선일 테니 경제적인 부담이 큰 게 사실이야. 당신이 걱정하듯이, 그 사이에 부모님 건강이 극도로 나빠져서 추가 비용이 들어갈 수도 있고, 당신이 아파서 일을 쉬게 될 수도 있겠지. 이런 상황에서 출산과 신생아 육아를 강행하는 게 우리한테 큰 부담이 될 수 있을 거야.


물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난 다시 일을 할 거고(아마 임신 중에도, 육아를 하면서도 일을 하고 있을 테지만) 경제적인 부분을 뒤로 미룬다 해도 여전히 걱정되는 건 있어. 내 몸이 걱정이지. 출산하고 지독하게 빠지지 않던 살들이 4년이 지나니까 이제야 재배치 되는 기분이거든. 출산 후에 튀어나온 아랫배가 복주머니처럼 달랑거리다가 이제야 들어갔는데, 다시 아랫배가 볼록한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안 좋아진다. 뱃살은 약과지, 눈가 주름도 늘고 머리카락도 더 많이 빠질 거야. 흰머리가 날지도 모르고, 면역이 떨어지면 얼굴에 물사마귀가 다시 번지게 될걸. 펑퍼짐한 옷만 입고 다니는 내게 사람들은 '아줌마'라는 호칭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날리고, 이제 연우가 원하는 '쇼 베이비 머리(양갈래로 작고 동그랗게 묶는 머리)'는 못할 거야. 


아이 둘 육아에 지치고, 몸은 점점 망가지고, 자기 일에만 빠져있는 당신을 보면서 서운해하고 원망할지도 모르지. 왜 아무것도 거들지 않냐고. '함께 하는 육아'라는 말은 집어 치고, 그냥 도와주기라도 하라고. 하지만 그런 말을 겉으로는 하지 못할 거야. 이 모든 상황은 내가 다 우겨서 만든 거고, 당신은 말리는 입장이었으니까. 당신이 반대하는 둘째를 설득과 설득을 거쳐 낳아 기른다 해도, 힘든 일은 영화의 뻔한 클라이맥스처럼 반드시 닥쳐올 거고, 그 고난을 난 혼자 견디려고 마지막까지 노력할 거야. 아마 하다 하다 안될 때 뻥하고 터지겠지.


<출처: 유튜브 '최재천의 아마존'>


동물행동학자 최재천 박사님도 그러시더라. 요즘에 한국에서 애 낳으면 바보라고. 먹고 살기가 빠듯하면 번식을 안 하는 게 진화에 유리한 거라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게 '번식 본능'이고, 먹고사는 게 '생존본능'이라고 할 때, 생존본능이 더 우위에 있는 종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높고 진화에 유리한 거라고. 구구절절 맞는 말씀. 고로 먹고 살기 편하게 만들어주면, 생존본능에 힘을 덜 쓰게 하면, 자연히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늘어날 거라는 말씀.


이 아름다운 말씀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둘째에 대한 미련이 가시지 않으니, 난 역시 바보인가. 셈에 느린 건가. 충동적이고 무책임한 건가, 그런 자괴감이 들기도 해. 하지만 영상을 보면서 느꼈던 또 다른 점은, 내가 둘째를 생각하는 이유를 '그저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 했던 부분이 '본능'이었다는 걸 깨달아서야. 아이를 낳지 않아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납득이 되면서도 마음이 쉽게 접히지 않는 이유. 


https://brunch.co.kr/@nanan0207/28


연우와 4년을, 뱃속 세월까지 5년을 함께 하면서 깨달은 점은 '육아는 힘든데 행복하다'는 거야. '행복한데 힘든 건지, 힘든 데 행복한 건지' 가끔 헷갈릴 때도 있지만(무슨 차이?), 몸이 지치고 마음이 지쳐서 나도 모르는 내 안의 괴물이 툭툭 튀어나올 때도 있지만, 그러다가 아이의 배시시 웃음에 마음이 싹 녹아내리는 신비를 경험하면서 사는 데 적응이 되더라고. 


정말 그랬어. 육아를 몰라서, 아이 마음을 몰라서, 유튜브를 찾아서 보고, 오은영 박사님의 책과 강연을 듣고, 불안과 걱정으로 공부를 하고 마음수련을 하면서, 힘들었는데 그만큼 성장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더라고. 하나씩 적용해보는 육아 스킬이 아이에게 잘 먹히고, 연우와 함께 하는 일상이 고달픔보다 행복이 더 많아지면서, '이렇게 육아 만랩이 되어가는 건가...' 오만방자를 떨다가도, 아이가 커가면서 또다시 새로운 과제가 주어지고, 난 또 그 과제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하고, 그냥 그렇게 살아지는 거더라고. 


아마 둘째를 낳든, 셋째를 낳든(셋째는 절대 생각이 없지만)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사실 한 번 해봐서인지, 신생아 육아도 '그냥 해볼 만하다'는 생각도 있어. 괴롭지만, 그 순간이 언젠가는 지나간다는 걸, 잘 아니까.


누군가는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걸 좋아하고, 

누군가는 맛있는 음식이 주는 설렘과 행복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돈을 불려 가는 재미를 좋아하듯이,


여행, 음식, 돈보다 아이와 나의 성장을 몸소 겪어내는 소소한 일상이 내가 꿈꾸는 행복인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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