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계현 Nov 16. 2021

폐경까지 끝나지 않을 고민, 둘째

- 결국 흙수저는 무자식이 상팔자인가

"여보, 나 소원이 있어."

설거지를 마친 남편의 두 손을 꼭 붙들어서 코앞에 끌어다 앉혔다.


"뭔데? 그러지 마~ 무서워."

"둘째 가지면 어때?"

"그 얘기 끝났잖아. 또야?"


그렇다. 1년 전 우린 합의를 봤다. 세 식구로 살자고. 이제 다시는 부모의 인간다움을 포기해야 하는 '신생아기'를 겪지 말자고. 연우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셋이서 여기저기 여행 다니면서 마음 편히 살자고.


그런데 어쩌겠는가. 잊을만하면 둘째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데. 남편과 합의를 했을 때는 애써 마음을 다스렸다. 둘째가 생기면 몸은 불어날 것이고, 허리디스크, 탈모, 아프다 못해 쓰라린 가슴 마사지, 기차가 밟고 지나가는 것만 같은 출산의 고통까지. 마흔 살 몸뚱이는 여기저기 비명을 지를 것이고, 예민함은 극도로 치달아 피부 골짜기를 후벼 파면서 주름이 늘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모유수유 때문에 커피, 김치, 맥주를 못 마시니 사는 맛도 없고, 축 처진 가슴이 배꼽까지 닿는 건 아닐까 무리한 상상을 해대고, 아이의 생존을 위해 도구화되어가는 몸뚱이를 보면서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사실 출산과 육아는 인생에 해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둘째 생각이 나는 건, 내 머리가 나빠서다. 임신을 한 여자는 직장에서 우대받는 척하면서 버려지고, 전철에서 자리를 양보받는 척 하지만 눈총을 받는다는 걸 잊었다. 추잉껌 하나 입에 넣을 때도 성분표를 확인해야 하고, 롯데월드에서 아틀란티스도 못 타고, 감기에 걸릴까 초가을부터 꽁꽁 싸매고 다녀야 한다는 걸 벌써 까맣게 잊어버렸다. (글을 쓰다 보니 이제야 스멀스멀 기억이 난다.)


아이가 생기면서 원하는 지역에서 살지 못했고('마포'에 살다가 친정집이 있는 '강북'으로 이사를 했다. 출퇴근 시간은 두 배로 늘었다.), 꿈꿨던 일을 할 기회를 놓쳤다('커리어 성장'보다는 '육아 지원'이 있는 곳으로 이직했다). 아이가 한 명 더 생기면 기회는 줄어들고, 희생은 많아지고, 체력은 떨어지고, 목소리는 커질 것이다. 그걸 머리로는 아는데 왜 마음을 접지 못하는가. 지금은 시간이 지나 고통에서 벗어났다고, 다시 또 수렁에 빠질 준비를 하는 걸 보니, 머리가 보통 나쁜 게 아니다.


사실 1년 전에는 첫째 아이가 심심할까 봐 둘째를 생각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니 그러면 안 되는 거더라. 둘째 아이의 탄생을 '어떤 목적을 위한 도구'로 써서는 안 되는 거다. 첫째는 단 몇 년이라도 부모의 온전한 사랑을 받지만,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형제 속에서 커야 하니 부모의 유일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숙명. 그럴진대 첫아이의 놀이 상대로 둘째를 낳아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래서 마음을 접기가 쉬웠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가 그냥 좋다. 돈도 없고, 40대라는 늦은 나이지만, 아이가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가족의 수만큼이나 몇 곱절의 행복이 찾아올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그래도, 느낌만으로 낳을 수는 없잖아...



남편의 논리는 옳다. 열일곱에 집안의 가장이 된 남편은 집안이 어떻게 망해가는지, 부부 사이가 무엇 때문에 틀어지는지, 사람이 어떻게 피폐해지는지를 몸소 겪은 당사자다. 소금밥을 먹으면서 굶주림을 겪었고, 사채업자에게 시달려보기도 했다. 남편처럼 사람 좋고 호탕한 시아버지는 돈 때문에 가족을 버렸다. 남겨진 가족은 하루살이처럼 먹고사는 일에 매달리다가 건강을 잃었다. 당뇨, 고혈압, 통풍, 지방간 등 스트레스로 유발할 수 있는 질병은 사이좋게 다 나눠가졌다.


남편은 자신을 위해 살고 싶어 했다. 고된 청춘을 보낸 자신에게 늘 미안해했다. 서른이 되면서 매해 해외여행을 다니고, 매달 제주도로 내려가서 이곳저곳을 누볐다. 십만 원이 넘는 꽃게찜을 '먹고 싶어서'라는 이유로 시키고, 몇십만 원 하는 스카이다이빙도 '하고 싶어서'라는 이유로 한다. 신발 한 켤레, 셔츠 몇 벌로 한 계절을 지내는 소박한 사람이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면 정말 크게 화를 낸다. 그 화에는 한이 서려있어 무섭다. 신혼 때 함께 장을 보다가, 10개에 1만 2천 원 하는 거창 딸기를 못 사게 했다는 이유로 자다가 버럭 소리를 지른 남편이다.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면 미쳐 버린다.


그런 남편에게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못 살게 하는 방해꾼'이었다. 거창 딸기 대신에 6천 원짜리 알사탕만 한 딸기를 먹어야 하고, 매달 제주여행도 접어야 하고, 월 30만 원짜리 스쿼시장 대신에 월 6만 원짜리 스쿼시장을 선택해야 하는 거였다. 역시 돈 문제다.


아이가 또 태어나면 3년 정도는 돈을 못 벌 텐데,
내년에 아파트 입주하면 매달 대출금만 2백이 넘어.
그거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래?
돈에 찌들다 보면 부부끼리 싸우는 일도 늘어난다고. 안 그래?



집 대출이 있으면 아이는 더 못 낳는다는 결론. 경제 개념으로 접근하면 할 말이 없다. 다 맞는 말이니까. 정부 지원금이 월 50만 원으로 늘었다지만, 그걸로 살림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곱절의 돈이 더 들 걸 안다. 결국 흙수저 집안은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둘의 대화는 끝난다.


남편의 생각을 존중한다. 아이 때문에 짊어지는 희생이 부담스러운 남편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좋아하는 걸 못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걸 꼭 해야 하는 상황이 더 싫을 수 있다. 좋아하는 걸 못하면 '안달'이 나지만, 싫어하는 걸 꼭 해야 한다면 '구역질'이 난다. 남편이 끝까지 반대하면 난 아마 '안달하는 마음'을 다른 걸로 대체하려고 애를 쓰겠지.


어쩌면 남편이 걱정하는 '집안의 경제력'이 나아지면, 입양을 생각할 수도 있다. 입양도 가족을 만드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니까. 어쩌면 남편의 더 큰 반대가 예상되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