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많은 토끼, 호랑이에게 덤비기 시작하다
예순다섯, 이정아 여사는 화가 많습니다.
"엄마, 밥 먹었어?"
"그럼 먹지, 안 먹냐!"
"아빠는 언제 온대?"
"때 되면 오겄지, 뭐!"
별것 아닌 질문에도 화난 사람처럼 툭툭 쏘아댑니다. 전라도 특유의 무뚝뚝함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요즘 들어 부쩍 살벌한 말투입니다. 한두 번은 그렇다 치는데, 말끝마다 그러면 어느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아요. 욱해서 소리칩니다. "아근데, 왜 그렇게 짜증이야!" 버럭 하고는 엄마 눈치를 봅니다. 헹여 속상하시진 않을까, 엄마가 따라서 화를 내진 않을까.
엄마는 자신처럼 눈을 부라리는 나이 든 딸을 보며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합니다. "갱년기 되면 다 그려~ 넌 안 그럴 것 같냐!" 근데 말이죠, 이게 정말 갱년기 때문이라면 더 큰 일입니다. 언젠가 나도 저 몹쓸 상태가 된다니.
호르몬 치료, 비타민, 하루 만보 걷기, 주 2회 등산, 플라잉 요가, 이정아 여사는 늘 바쁩니다. 갱년기 극복을 위해 애쓰는 거죠. 제 눈에는 갱년기 치료에 도움된다는 방법은 거의 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별로 나아지지 않는 걸 보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거겠죠.
이정아 여사는 '엄마'일 때보다 '아빠의 아내'일 때 더 화가 많습니다. 일상에서 서로 안부를 주고받을 때도 아빠 얘기가 나오면 거기부터 예민 모드입니다. 아빠가 귀가하는 시점에 맞춰서 '만보 걷기' 운동을 하러 가고, 아빠가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약속을 잡고 밖으로 사라집니다. 마주치는 걸 싫어하는 눈치. 어쩌다 가족이 모여서 밥을 먹을 때면, 별 것 아닌 일로 타박을 합니다.
"밥 차리는 거 보면, 알아서 좀 들고 가!"
"알았어, 갈게~"
"느려 터져 갔고는, 빨리 좀 움직여!"
올해 일흔 하나인 아빠는 최대한 빨리 움직이는 건데도, 엄마는 괜히 트집을 잡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엄마의 잔소리는 끝나지 않습니다. 모두 아빠를 향한 거지요. 반찬을 왜 깨작거리느냐,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먹어야지 왜 들고 마시느냐, 골고루 먹어야지 고기만 먹으면 어떡하냐, 그럴 때마다 아빠는 고개만 살짝 까딱거리고는 묵묵부답으로 밥만 먹습니다. 보다 못해 욱해서 제가 대신 한마디 합니다.
"엄마 말투가 왜 그래? 밥 먹다 체하겠어!"
"화가 많아서 그런다, 왜?!"
"뭔 화가 그렇게 많냐고!"
"다 네 아빠 때문이지, 그걸 말해야 아냐?"
슬금 아빠 눈치를 봅니다. 여기서 아빠가 맞받아치면 2차 대전 발발이니까요. 다행히 아빠는 얌전히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먹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도 이상합니다. 제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는 아빠가 더 화가 많았거든요. 이쯤 되면 아빠가 눈을 부라리면서 "어디서 지랄이야!"를 외쳐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아빠도 이상합니다. 나이가 들어선 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었어요.
그래서 토끼가 호랑이한테 덤비는 형국입니다. 귀여운 외모 탓에 순해 보이지만 토끼는 꽤나 예민하고 스트레스를 잘 받는 성질 더러운 동물이지요. 어릴 때 토끼 두 마리를 키웠는데, 우리 안에 가둬두었더니 한 마리가 다른 한 마리를 잡아먹더라고요. 그때 처음 알았지요. 토끼 이빨은 풀만 먹는 게 아니라는 걸.
엄마는 토끼였습니다. 지금은 호랑이 무는 토끼가 되었죠.
키 150cm가 안 되는 엄마는 여전히 작고 귀여운 느낌이지만, 눈에 쌍심지를 켜고 이빨 빠진 호랑이를 겁박하는 무시무시한 종으로 진화했습니다. 그런 엄마의 변화를 바라보는 게, 무섭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해요.
엄마는 평생 아빠한테 무시를 당했습니다. '돈도 못 벌고, 집에서 살림만 한다는' 이유로요. 전라도 산골 9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열 살 무렵부터 식구들 밥을 짓던 엄마는 살림에는 도가 텄지만, 서울살이에서 돈을 버는 일에는 두려움이 많았어요. 정확하게는 사람을 대하는 게 약삭빠르지 못했다고 할까요.
양재일을 배워서 옷 수선 가게, 소매점 등을 냈지만, 번번이 보증금을 날리고 가게를 접어야 했거든요.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떼쓰는 손님에게는 수선비 안 받고, 애교 부리는 손님에게 공짜로 해주고, 가게에 와서 죽치고 노는 동네 아줌마들을 쫓아내지 못했지요. 남들에게 모진 소리를 못하는 토끼 같은 엄마는 자기 잇속에 능한 사람들에게 늘 자기 살을 내주었습니다. 그래서 밀림에서 살아남지 못했죠.
아빠는 택시 일을 하면서 돈 한 푼에 시달렸기에, 그런 엄마가 한심했을 겁니다. 그래서 '돈 못 버는' 아내를 무시했고, 폭력을 휘둘렀죠. '네가 뭘 알아?', '세상 돌아가는 사정에 관심이 있기나 해?', '무식해가지곤...' 이런 언어폭력은 다반사, 시장에서 콩나물 이천 원어치를 사면 '콩나물 천 원이면 됐지, 그렇게 많이 사서 뭐할래? 이렇게 돈 막 쓸 거야?' 하면서 경제적 압박도 부지기수로 퍼부었죠. 상황이 이럴진대 신체적 폭력은 없었을까요?
아빠가 밥상을 엎으면서 유리컵이 깨져서 엄마 정강이가 찢어진 날을 기억합니다. 엄마는 피가 나는 정강이를 붙들고 '어엉~ 엉~' 어린애처럼 울면서 저를 바라봤어요. 너무 아픈지 정확하게 말도 못 하고, '아으아으 우 버버~' 하면서 손짓으로 약상자를 갖다 달라고 했어요. 피 흘리는 엄마의 정강이와 '어버버'하던 엄마의 입을 기억합니다. 어느 늦은 밤, 불 꺼진 놀이터에 쭈그려 앉아 흐느껴 우는 여인네가 울 엄마인 걸 알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던 날을 기억합니다. 속으로 '참 처량하다. 쯧.'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엄마일 줄은. "엄마~"라고 부르지 못하고 나무 뒤에 숨어서 엄마가 다 울 때까지 바라보던 나를 기억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엄마를 조금은 이해해요. 갱년기 때문에 얼굴에 열이 오를 때마다 평생 묻어둔 한이 용솟음치고 있는 엄마. 호랑이한테 으름장 놓는 겁 없는 토끼가 되어버린 엄마. 그럴 때마다 주름살이 늘어나는 엄마.
그래서 미안하고, 슬픕니다. 화를 내면 시원해야 하는데, 화를 내는 엄마는 전혀 후련해 보이지 않거든요. 미간에 주름만 늘어갈 뿐이죠. 사람이 화가 나면 얼굴 근육이 모두 경직돼서 더 늙어요. 그래선지, 엄만 화를 낼 때마다 열 살은 더 늙어 보입니다. 늙어 보이더라도, 이렇게 화를 툭툭 내는 게 엄마에게 작은 복수는 되는 걸까요? '작은 복수'를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마음의 응어리가 풀릴까요? 글쎄요. 상담자로 살지만, 정작 엄마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합니다. 꽃처럼 고왔던 이정아 여사의 주름살이 점점 늘어가는 것 같아 슬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