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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계현 Aug 01. 2024

영화 '퍼펙트 데이즈' 리뷰

영화 <퍼펙트 데이즈>,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들었다. 돈, 성공, 명예보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으로 삶을 채워가는 이야기가 나오리라 예상했다. 실제 영화를 보니 예상과 비슷한 맥락이긴 하나,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 




주인공 히라야마는 자신의 루틴대로 산다. 창너머에서 들려오는 빗질소리에 잠에서 깨고, 이불을 두 번 접어서 한편에 포개놓는다. 전날밤에 읽다만 책의 페이지를 접어서 표시해 두고, 삐걱대는 계단으로 1층으로 내려가 좁은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한다. 분무기로 식물에 수분을 공급해 주고, 작업복을 입고 소지품을 순서대로 챙긴다. 모든 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오랜 반복으로 몸에 밴 습관, 일상의 규칙. 


문을 열고 나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미리 챙긴 동전으로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들고, 작업 도구가 가득한 차에 올라타서 그날의 카세트테이프를 골라서 튼다. 차 안을 가득 채운 음악과 아침햇살을 가르며 달리는 도쿄 거리, 잠깐씩 채워지는 낭만. 


히라야마는 도쿄 시부야거리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노동자다. '어차피 더러워질' 공중화장실을 꼼꼼하게 닦고 소독한다. 잘 보이지 않는 변기 밑면도 거울로 비춰가면서 깨끗하게 닦는다. 결벽증이 있는 사람처럼 공중화장실을 청소한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라며 동료가 묻는다. 그러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변기뚜껑을 분해해서 안쪽 노즐까지 닦아내는 장면을 보면서, '이건 이 사람의 세계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세계


반복되는 일상. 잔잔한 반복에서 찾아오는 변주를 슬며시 웃으며 받아들이는 히라야마, 현재 그는 행복해 보인다. 일상이 평온하다. 다음 상황이 충분히 예측되고, 약간의 예외가 생겨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나만의 세계에서의 규칙은 내가 만들어둔 것이니까. 


과거는 어땠을까. 영화에서는 히라야마의 과거를 직접 설명하지 않지만 추측되는 장면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히라야마의 조카(여동생의 딸), 느닷없이 찾아온 조카에게 히라야마는 별 말이 없다. 조카가 집을 나온 정황을 이해한다는 듯이. 그리고 며칠 동안, 공중화장실 청소를 하고 공원 벤치에 앉아서 점심을 먹고, 필름카메라로 일상을 담아내는 일상을 조카와 함께 한다. 여동생이 와서 가출한 조카를 데리고 가는 장면에서, 히라야마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흐느껴 운다. 


조카의 가출과 여동생과의 만남으로 인해, 히라야마는 과거를 만난 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히라야마는 과거에 다른 세계에 살았을지도. 돈을 벌고 성공해야 사람 구실을 하고, 경쟁에서 뒤처지면 쓰레기가 되어 버리는 냉혹한 세계를 경험했을지도. 자신은 그 세계가 버거워서 도망쳤기에, 그 세계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조카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을지도. 그 세계에서 나와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애썼을지도. 


서로 다른 세계에 산다는 건


서로 다른 세계에 산다는 건, 소통하기 어렵다는 의미일 게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어쩌면 이 세상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세계에 살면서 히라야마는 외롭고 고독하지 않았을까. 히라야마가 만들어낸 현재는 일상에서 찾아낸 소소한 즐거움과 만족감이 있지만, 그 세계를 혼자 누린다는 건 외롭고 고독한 일. 


공중화장실에서 익명의 누군가와 빙고게임을 하고, 공원 벤치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자주 마주치는 사람과 눈인사를 하려 하고, 화장실에서 울고 있는 꼬마아이를 달래주면서, 히라야마는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익명의 누군가와 나눈 빙고게임이 언젠가 끝이 나고, 공원 벤치에서 매번 마주치는 사람은 눈인사를 피하고 싶어 하고, 화장실에서 울던 꼬마아이를 보호자에게 데려다주었더니 '감사 인사'는커녕 모멸감을 받았다면, 그렇게 관계 단절을 경험하면서 히라야마는 어땠을까. '나는 나만의 세계에서만 안전해'라는 느낌을 더욱 강하게 받지 않았을까. 


회한이 담긴 미소, 혹은 해학이 담긴 눈물


마지막 장면, 히라야마는 여느 때처럼 차를 타고 출근을 하는데, 표정이 묘하다. 우는 듯, 웃는 듯. 회한이 담긴 미소, 혹은 해학이 담긴 눈물. 뜨는 해인지 지는 해인지, 지평선에 걸쳐진 태양을 비추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이 마지막 장면 때문에 여운이 오래간다. 저마다의 의미를 담아내도록 여지를 남겨준 듯싶다. 


세상 잣대에 맞춰서 살자니 '뒤쳐질까 불안해서' 괴롭고, 

그 세계에서 벗어나 '나만의 세계'에서 살자니 괴롭지는 않지만 외롭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존재로서의' 쓸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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