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이것이 버릇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것이다.
1년 동안 문자와 전화를 주고받은 적 없는 사람은 12월의 마지막 날
쿨하게 전화번호를 지워버린다.
집 정리는 제대로 해본 적이 없으면서, 핸드폰 전화번호는 매년 정리를 제대로 한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카페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번호를 보니 모르는 번호이다.
1년마다 전화번호를 지우다 보니 모르는 번호는 일단 다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30초가 지나도 전화가 계속 울린다. 나를 아는 사람인가 보다.
"여보세요?"
누군지 모르니 굉장히 친절하게 받는다.
내가 아닌 것처럼.
"쌤!"
나를 정확히 아는가 보다. 졸업생인가? 그런가 보다.
"오냐~! 어쩐 일이야?"
"쌤! 나 누군지 몰라?"
뭐지? 학생이 아닌가 보다. 뭐라고 하지? 이런.
"사실 내가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번호가 없어서요."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상황을 모면해본다.
"아! 그렇구나. 나 000이야."
초임 발령지에서 1년을 함께 근무했던 나보다 한 살 어린 선생님이다.
거의 4~5년 만의 통화이다.
"우와~! 000이야? 반가워!"
"진짜 오랜만이지? 요즘 코로나 때문에 선생님 힘들 것 같아서 힘을 주려고 전화했어요."
초임지에서 나는 외로웠다. 생활해 오던 고향집에서 160km가 떨어진 곳으로 발령이 났기 때문에 난생처음으로 나 혼자 산다의 삶을 시작했다. 아는 사람도 없었던 낯선 곳의 생활이 시작됐다.
외롭게 1년을 보내고,
그 이듬해에 나와 동년배로 보이는 사람이 군 제대를 하고 근무 복귀를 했다.
낯선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 철칙이었던 나에게 먼저 말을 건네며 인사를 했던 000 선생님이 전화를 한 것이다.
그 시절 우리는 30살, 31살이었는데
벌써 5살 난 아이의 아빠가 되고, 9살 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코로나가 난리라서 보건 선생님들이 고생을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전화 한번 해봤어요."
"뭐야, 진짜? 아이고 고마워. 눈물 날 것 같다."
나 진짜 인생 잘 살았나 보다. 나 걱정돼서 10년 전에 근무하던 사람이 전화를 해주고.
"그런데 말이지. 내가 요즘 휴직 중이야. 헤헤..."
"진짜요? 우와 선생님은 진짜 점쟁인가봐. 어떻게 이 난리 통속을 비껴간 거야?"
그러게 말이다. 나는 뜻하지 않게 코로나를 학교 밖에서 경험 중이다.
코로나가 무서워서 그런 것은 아니고, 작년 3월부터 나는 내년에 무조건 휴직이다!를 외쳐댔고 결국
그렇게 된 것인데.... 동료들은 땀 흘리며 고생하고 있어서 참 마음이 좋지 않다.
"아이는 몇 살이지?"
"딸내미 다섯 살이요. 아들은 학교 다녀요?"
"그럼. 지난주부터 다니고 있지. 쌤도 학교에서 애쓰겠네."
"진짜 이놈의 코로나 때문에 정신이 없어요. 쌤 부럽다."
이런저런 근황을 전하며 반가워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예전에 같이 근무할 때 재미있었는데. 그때 정말 고마웠어요."
"내가 고마웠어? 진짜?"
그 당시 나만 외로웠던 게 아니었나 보다. 제대하고 복귀하여 군대와 학교의 경계선이 모호한 상황에서 근무를 시작했던 그 선생님도 외롭고 생경했나 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건네던 대화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나 보다. 그게 고마워서 몇 년이 지나도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나 보다.
서로의 안부와 서로의 둘째(아이)를 빌어주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다 생각했다.
나는 왜 전화번호를 1년마다 지우는 걸까?
나의 모습들을 복기해봤다.
먼저 만나자고 권하지 않는다.
약속 장소와 시간을 항상 상대방에게 정하라고 내준다.
먼저 전화하지 않고, 전화 오는 것만 받는다.
갑작스레 약속을 옮기자고 말하는 상대에게 괜찮다며 다음에 보자고 한다.
항상 나와 누군가와의 사이에 선을 그어 놓는다.
이만큼까지만 가까워지면
먼저 연락하지 않고, 연락 오는 것만 받아야지라고 생각해왔다.
쿨한 척! 내가 마음을 더 많이 주지 않으려고 조절해왔다.
왜 그랬을까?
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수동적이었다.
먼저 다가가는 법도, 먼저 연락하는 법도 없었다.
오랜만에 연락하면 반갑게 받아줄 것 같지 않아서,
나를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에 그래 왔다.
오늘 4~5년 만에 000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굉장히 기뻤다. 고마웠다.
나는 왜 먼저 전화를 걸어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어주고, 힘이 되어줄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저 받기만 하려고 했을까?
전화 한 통은, 나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내 머리 속을 분해하고, 조각조각 나뉘다...
반성하고, 후회했다.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멀찌감치 서서 나에게 다가오기만을 바라는
사랑을 나눌 줄 모르는 어린아이 같은 나와 마주하게 됐다.
아주 오랜 시간을 마주했다.
나의 이런 모습들을 나 스스로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냥 그런가 보다로 넘겨왔다.
나는 왜 그럴까? 어쩌면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자존감의 고리와
연결된 문제인 것 같다. 아이고, 골치야.
그리고는 핸드폰을 빤히 쳐다봤다.
조심스레 2년 전에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당연히 전화번호는 지워져 있었다.
문자를 주고받은 것이 기억나서 검색어에 몇 단어를 넣어
찾아낸 귀하디 귀한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우와 민희 쌤~!"
상대방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통화를 잠깐 했지만 얼마나 반가웠으면 전화를 끊고 나서도
반가웠다고 건강하라고 문자를 보내줬다.
뜻하지 않게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연습을 했다.
나를 잊을 리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내가 먼저 마음을 표현하자고, 남들이 주는 만큼이 아닌
내가 주고 싶은 만큼 듬뿍 전해보자고 마음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