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마흔을 바라보는 나는,
요즘 부쩍 건강을 생각하게 되었다.
<움직임의 힘>이라는 책을 읽게 되면서 운동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나름의 실천 독서를 표방하고 있는 나로서는
책을 읽고 있으니 움직임을 경험해보자는 마음으로
새벽 운동을 시작했다.
새벽 운동은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는 것부터 시작이다.
생각보다 움직임이 많다. 윗옷, 아랫도리, 양말, 거기다 행여나
쓰러질까 초코파이 하나를 입에 물고 나가기 까지가
귀찮았다. 딱 하루만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기어코 나갔다. 다행히 5분 거리에 천변을 두고 있어 걷기에는 최적화된
곳에 살고 있음을 이제야 알았다.
새벽 5시의 거리는 새롭다.
아침 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물가에는 새들이 날아와 앉아있다.
여름을 향해 달려가는 6월의 아침은,
무성하게 자라는 잡초와 야생화들이 생명력 강한 푸른빛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나보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꼼꼼히 마스크를 끼고 천변을 걷고 있다.
첫날은 3km, 4000보, 이틀이 지난 후 5km, 6000보!
새벽 걷기를 시작하고 오늘까지 걸어온 거리는 80km이다.
걷기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되고,
나는 밀린 숙제를 해치운다는 마음으로 건강검진을 하러 갔다.
2년 전 건강검진 결과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좋지 않았다. 마른 편인 나는 내장 비만형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건강검진을 준비하고자 시작한 운동이기도 했다.
살이 빠지면 좋으련만 살은 1도 빠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1시간을 걸었다는 사실이 검사 결과를 기대하게 한다.
지난 토요일,
집 근처 가까운 병원을 갔다. 준종합병원 수준으로 내과, 정형외과, 신경과 등
각종 과들을 갖추고 있고, 응급실도 있는 제법 규모가 되는 병원이다.
최근에는 리모델링을 해서 더욱 깨끗해지고 이용하기 편해진 곳이기도 했다.
기다림을 싫어하는 나는
아침 8시 반에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에서 짧게 근무를 해보기도 했지만
병원은 재미난 곳이다. 사람 구경하기 딱 좋은 곳!
사람들의 표정, 업무를 위해 치열하게 입씨름을 펼치는 사람들,
행복한 하루 되라고는 하나 본인 스스로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 직원들,
몸이 불편함을 표정에 담아내는 사람들..
8시 반쯤 도착하여 건강검진 문진표를 작성했다.
술을 얼마나 하는가, 담배를 피우는가, 운동을 하는가.
운동을 하는가 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예'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하루 50분을 써냈다. 한 달간 걷기 운동을 해놓고서는 마치 10년 동안은
아침운동을 해 온 것 마냥 자신 있게 동그라미를 힘주어 그렸다.
잠깐 기다려야 한다고 안내하길래 사람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건강검진을 하러 온 사람들은 큰 질병을 떠안은 사람들이 아니니
표정이 심각하지도 않다. 오히려 빨리 끝내고 가고 싶다는 조급함과 지루함이
묻어 있을 뿐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 나를 이끌고 있는데
스피커에서 방송이 나온다.
"오늘 하루도 환자분들께 희망을 줄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라는 멘트가 울리자 앉아 있던 직원들이 하나둘씩 일어서서
옷매무새를 만지며 단정하게 한다.
그러더니 공손히 손을 모으고 멘트를 따라 한다.
"친절하게 모시겠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반사적으로 일어나 거리낌 없이 복창하는 모습들이 신기하고 거북하기도 했다.
저런다고 친절함이 생기는 것은 아닐 텐데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러고 있는데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반백의 남성이 나타났다.
흰 가운을 입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나타나 내 앞을 스윽 지나간다.
아마도 병원의 원장인가 보다.
직원들이 잘 따라 하고 있는지 확인을 하는 것 같았다.
멘트가 끝나기 전에 모든 곳을 돌아보겠다는 듯
이곳저곳을 바삐 걸어 다녔다.
멘트 덕분인지 원래 천성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나는 직원마다 친절하고 상냥했다.
흉부 X-ray를 찍고, 소변 검사를 하고, 피를 뽑고(제발, 콜레스테롤 정상이길.)
구강검사를 하고,
비교적 빠른 속도로 검사 하나하나를 정복하듯이
병원을 돌아다닌 후
마지막으로 의사와 만나는 시간이 되었다.
아직 젊기도 하고, 앓고 있는 질병도 없고, 알레르기도 없으니
간단히 끝날 거라 예상했다.
의사와의 면담을 위해 기다리다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바삐 걸어 다녔던 반백의 남성이 앉아 있었다.
원장 000의 명찰!
친절 멘트에 직원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병원의 장'인 리더는 얼마나 친절할까 기대심리가 생겼다.
"약 먹는 거 있어요?"
오잉, 아무리 내가 동안이라고는 해도 말투가 왜 저런 것이냐.
"아니요."
- 면담 끝-
놀랍게도 저 질문 하나만으로 나의 면담은 끝이 나버렸다.
들어간 지 10초 만에 끝!
궁금한 게 있느냐는 질문도 없이 내쫓기듯 나와야 했다.
병원 밖으로 나서는 길에,
참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면담을 한 그 의사는 자신의 모습을 알고 있을런지,
친절 멘트를 틀어놓고 병원을 휘젓듯 다니던 그는
왜 친절 멘트를 따라 하지 않은 것일까?
반복된 하루를 살아가는 타성에 젖은 모습의 한 인간을 본 것만 같다.
리더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철학을 스스로 바로 세울 수 있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다음 검진 때에는 몇 가지 더 질문을 해 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