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과 글을 쓰는 사람은 다르다 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마치 이것은,
브런치에 입문하고 싶어 하며, 브런치 안에만 들어가면 1일 1 글쓰기를 하겠다고 다짐하던 내가,
비교적 쉽게 브런치 안으로 들어와서는 1주일 1 글쓰기도 힘들다 라는 사실을 느끼는 것과 같다.
일을 쉬고 있는 나에게는 글감이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햇볕을 받으며 고요히 흐르는 강물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글감은 서평 밖에 없다. 그러나 서평을 써본 사람은 알겠지만,
서평은 정말 뼈를 깎는 고통과 같다. 3~400 페이지의 글을 읽고 자기의 것으로 소화시킨 후
나만의 언어로 옮긴다는 것이.... 싫다.
글쓰기를 놓을 수는 없어서 오늘은 서평이 아닌 일상의 이야기를 풀어놓을까 한다.
글감을 위한 여행은 아니었으나 다행히도 글감이 될만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이라고 쓰는 것도 누군가의 눈치를 보게 하는 요즘인데, 겁 없이 여행을 다녀왔으니.
지난 5월 끝무렵쯤,
신랑과 나는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잔머리가 1도 없는 신랑과
일평생 잔머리로 살아온 나는, 머리를 맞대고 여름휴가를 언제, 어디로 갈 것인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원래대로 가면 안돼. 코로나 때문에 어딜 가도 사람이 많을 테니까."
"그런가?"
"우리는 7월 첫 주에 가버리자.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그때를 노리는 거야."
"그거 좋다."
"그리고 우리는 남들이 가지 않을 만한 곳, 아니면 펜션을 단독으로 쓸 수 있는 곳"
"그래. 네가 알아볼 거지?"
대화만 봐도 누가 나이고, 누가 신랑인지 알 수 있을 듯하다.
결국 우리는 7월 5~7일, 담양에 있는 00 펜션으로 정했다.
단독으로 수영장을 갖고 있고,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곳이라
판단하고 덜컥 예약을 했다.
예약을 한 이후로,
신랑과 아이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냈다.
하루를 쏜살같이 보내야 기대하는 날이 빨리 돌아온다는 부푼 희망을 안고,
아이는 실컷 놀고 아이 아빠는 열심히 설계를 하고, 나는 나름 열심히 집안을 돌보며
한 주, 한 주를 흘러 보냈다.
그러다 6월 마지막을 향해 달릴 즈음,
생각지 못한 변수가 생겼다.
망할 놈의, 아니 꼭 망해야 하는 코로나가 전남 특히, 광주 지역을 휩쓸고 있다는 소식.
생각지도 못한 변수이다.
물론 담양이 직격탄을 맞은 것은 아니나 전남에 속한다는 사실이 공포로 느껴졌다.
전남이라는 글자가 있는 곳의 고속도로만 달려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뒤쫓아 올 것만 같은 공포감.
펜션 비용을 포기하고 여행을 포기할 것인가, 그냥 마스크를 피부처럼 쓰고 다니며 여행을
다녀올 것인가를 두고 고민했다.
전파 지역이 담양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단독 펜션으로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
숙소 밖을 나가지 않으면 될 것이라는 점을 들어
결국 여행은 다녀오기로 했다.
숙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코로나 바이러스에 옭아매진 나는
악몽을 꿨다.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바람에
시름시름 앓다가 열이 나던 나는 결국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나의 신상정보가 노출이 되고, 내가 다녔던 곳곳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송되며, 사람들의 모든 비난을 감수하고, 나는 집안에 갇혀 살게 되는
내용의 꿈을 꿨다.
세상에!
꿈에서 깨어나자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커졌다.
무서웠다. 병에 걸리는 것도 무섭지만
내 신상이 노출되는 것이 더욱 무서웠다.
여행길은 불안과 공포를 체험하러 가는 길이 되었다.
정말 조심하자 라는 각오를 하며,
음식점과 카페의 이용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을 생각했다.
끼니는 구운 계란과 김밥으로,
간식은 미리 준비했고,
커피는 마시지 않고,
어디를 나가든 마스크를 표피처럼 쓰고 다니기로 했다.
막상 도착하니
우리만 지낼 수 있는 단독 건물이라
한시름 놓았다.
작지만 우리 가족만 쓸 수 있는 수영장도 마련되어 있고,
안쪽으로는 히노끼탕도 있어
냉탕과 온탕을 즐길 수 있었다.
아이는 도착하자마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서는
수영장으로 직행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고,
불안감도 없으니
아이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놀았다.
튜브를 띄워놓고 달려가서 착지하기,
잠수하기, 이것저것을 하며 놀았다.
아이를 보고 있자니
안도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단독으로 된 건물이었고,
들어와서는 문을 잠궈 놓고 있으니
코로나 바이러스는 문밖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혹시 모를 걱정으로
3~4시간마다 체온을 측정했다.
행여나 열이 날까 걱정되어 아이 온도는 더 꼼꼼히 재고, 적어놓았다.
여행 가는 길 점심은 김밥을 먹고,
도착 당일 저녁은 직접 사 온 고기를 먹었다.
다음날 아침은 숙소에서 준비를 해주신 빵을 먹었고,
점심은 미리 준비해둔 컵라면을 먹었으며,
저녁은 준비해온 갈비탕 팩을 먹었다.
마지막 날 아침은 숙소에서 준비해주신 빵을 또 먹었고,
점심은 구운 계란과 김밥을 먹었다.
예전 같았으면 여행지의 맛집, 별미를 찾아다니며 먹었을 테지만
우리는 식당 방문을 일절 하지 않았다.
행여나 우리가 바이러스의 온상이 될까 봐서.
숙소만 있기는 답답하여
둘째 날에는 가까운 산책로를 걷기로 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쯤 나가기로 했다.
비가 내리면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릴때즘,
사람들은 다들 비를 피할 때,
우리 셋은 우산을 받고 슬슬 기어나간다.
추월산 용마루길을 걸었다.
날이 좋으면 사람이 많았을 곳이지만
비가 오니 우리 셋 뿐이다.
걷는다. 우리만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단지 우산이 거추장스러웠지만
비가 오지 않았다면 바이러스 덩어리들이 뭉쳐있을 것만 같은 상상이 이어졌다.
휴~
사람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안도감이 몰려온다.
간단히 산책한 후 다시 숙소를 향한다.
안전한 곳을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차창을 보다 문득,
이렇게 불안에 떨거면 왜 여행을 왔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편히, 일상을 벗어나서 해방감을 찾아 떠나는 것이 여행인 것을,
지금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노출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개학이 연기되었을 때도
물론, 충격이었다. 유리창 안에 있는 바이러스를 밖에서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3월이 가고, 4월에 들어섰을 때도,
설마 내가 걸리겠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마스크는 쓰는 것이지!
제삼자의 입장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가 길어지고 있자
5월에는 여행을 계획했다. 다들 여행 다니는 데 뭘,
조심하면 되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막상 여행을 와보니 '가. 시. 방. 석'에 앉아있는 것만 같다. 이렇게 해도 불안
저렇게 해도 불안했다. 바이러스가 꿈틀대는 유리창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요리조리 피하고는 있지만 걸릴 것이라는 불안감이 넘실댔다.
여행이, 고행길이 되고 보니
코로나가 없던 삶이 더욱 갈급해진다.
언제쯤 자유롭게 여행지의 맛집을 찾아가 맘 편히, 배 부르게 맛 볼 수 있을까?
언제쯤 마음에 쏙 드는 카페에 가서 차를 마셔 볼 수 있을까?
이곳저곳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모습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며,
사람이 붐비는 곳이 유명한 곳임을 인증하며 활보할 수 있을까?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만 보더라도 왜 저러나 싶은 비난의 화살이
활시위에 놓이는 요즈음.
여행을 다녀와서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 아니라
무사히 집에 와서 집 밖을 나가지 않게 되어 행복하고 다행스럽다.
이러다 코로나놈이 오기 전의 일상은 영영 오지 않는 것 아닐까?
마스크 없이는 이제 버스도 탈 수 없는데,
언제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것인지 아무도 답해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