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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민 Jul 10. 2020

자기를 표현한다는 것

<관계를 읽는 시간> 서평

"누군가의 스쳐 지나가는 말 한마디와 의미 없는 행동 하나에도

우리의 마음은 깊게 베이거나 구겨지곤 한다.(33쪽)"



   책을 펼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를 위로하는 문장을 발견했을 때

책에 대한 애착이 생겨난다. 내가 속이 좁아서 쉬이 상처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된다. 나도 보통의 사람이라는 사실임을 확인받은 기분이랄까?



<관계를 읽는 시간>은 정신과 의사 문요한 작가의 책이다. 정신과 의사로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주고, 그들에게 공감을 했을까.

문장 하나하나, 분석 하나하나마다 내공이 느껴진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누군가와 친해지고, 가까워지고 싶어 한다.

서로 친밀해지면서 힘과 즐거움을 얻게 된다. 하지만 친밀하다는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연결감'으로 나에게 편안함을 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소유욕'의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우리는 연결감을 느끼고, 상대는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기 위해

'바운더리'의 개념이 머릿속에 자리 잡혀야 한다. '바운더리'라는 개념은, 자신을 보호할 만큼

튼튼하기도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친밀하게 교류할 수 있는 유연함을 지닌 것이다.

개념으로만 정리하자면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바운더가 희미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보다 상대의 의견에 이끌려가기 쉽다.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기능이 허물어진 상태이다.

바운더리가 경직된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는 기능이 단단한 형태이지만 과하게 단단하여

상대와의 교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상대와의 친밀도에 따라 조절이

가능하면 좋으련만 바운더리의 형태는 어릴 적 애착과 깊이 연결되어 있어 순식간에 뚝딱

고쳐낼 수 없다.


   어릴 적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존중받아보지 못한 아이는 희미한 바운더리를 갖게 된다.

자신의 생각은 언제나 잘못되어 있으니 상대방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을

지닌 채, 자신은 낮은 자존감과 흐릿한 바운더리로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마치 나의 모습인 것만

같아 마음이 쓰리다. 이 아이는 평생 이렇게 지내야 하는 것일까?

다행스럽게 바운더리는 재건이 가능하다. 책장을 넘기듯 쉽게 바꿀 수는 없지만 그래도 건강한 바운더리로

고쳐질 수 있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공감을 해주면 된다. 공감! 어쩌면 요즘의 시대는

공감을 요구하는 시대일지 모를 만큼 여기저기 자주 등장하는 용어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공감은 쉽지 않다. 우리가 흔히 하는 공감은 '정서적 공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다른 사람의 표정, 말투, 자세를 모방하고, 상대의 감정에 전염되는 상태이다. 이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정서적 공감이 넘쳐흘러 상대보다 자신이 더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다. 오버하지 않도록 조절해야 한다. 그리고 '인지적 공감'의 방향으로 흘러가야 한다. 생소한가?

인지적 공감이란, 상대의 마음을 자신의 입장에서 쉽게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의 감정을 넘어서서

현재 필요한 것을 생각해내고 다시 상대에게 흘려보내는 것이다.



"상대가 내 마음에 관심을 가져주고,

상대의 마음으로 흘러들어 간 내 마음이

상대의 마음과 섞여 다시 내게 흘러 들어오는 것,

이것이 바로 공감이다.(211쪽)"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물을 묻는다면, '공감'에 대한 감이 명확해졌다는 것이다.

사회적 존재으로써 인간에게 공감은 필히 장착하고 있어야 할 도구와 같다.



   공감하고, 안정된 형태로 자아가 분화되었다면 무리 없이 튼튼하고 유연한 바운더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공감은 위에서 살펴보았고, 그렇다면 자아 분화는 무엇일까?

나와 가 우리로 연결된 채로 나뉜 것을 안정된 자아 분화로 설명한다. 그렇다면 불안정한 자아 분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는 부정을 알면 긍정을 정확히 깨닫는 습성이 있다.

불안정한 자아 분화는 '과분화된 자아 분화'와 '미분화된 자아 분화'로 나뉠 수 있다.

먼저 분화 된 자아는 자신의 주위로 성벽을 둘러싼 것과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두는 방어형이 있고, 상대를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려는 지배형이 있다. 이들은 상호관계의 어려움을 느끼고,

심리적으로 단절되어 있다. 타인과의 연결이 어려우면, 자신에게만 몰두한다. 정서적 공감능력은 제로의 상태이고, 자기 성찰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이들은 어릴 적 양육자에게 냉담한 반응을 지속적으로 겪어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미분화된 자아는 자신의 모습은 희미한 점선의 형태를 이루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상대에게 무조건 맞춰주려는 순응형과 상대가 원하는 것을 다 해줘야 한다는 책임에 휩싸인 돌봄 형이 있다. 이들은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상대의 생각과 감정, 욕구가 곧 자신의 것이 된다. 갈등을 두려워하여 상대에게 무조건 맞추려고 한다. 어릴 적 양육자에게 극도의 불안을 느껴, 양육자에게 매달리는 형태의 유아기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작가는 상담을 하면서 내담자의 유형을 파악하게 되었고, 인간관계의 어려움과 심리적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은 순응형, 돌봄형, 방어형, 지배형 중 한 가지에 속하거나 두 가지 유형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어릴 적 부모가 이혼하였고, 어느 누구도 아이를 맡지 않으려 했던 상황을 겪어야 했던 내담자가 있다. 그녀는 할머니와 지내다가 결국 엄마와 지내게 된다. 자신은 버림받았고, 자기편은 없다고 생각해온 그녀는 4가지 유형 중 방어형이 되었다. 누군가 다가오면 철저히 막아버리고, 사람에게 정을 주지 않는다. 애정 결핍으로 누군가의 사을 받고 싶으나 반동 형성으로 철저히 독립적인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누구 하나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맞는 가보다. 책을 읽다 보니 남들과는 다른 행동이나 생각을 하는 그들이 어느 유형에 속할까 헤아려보게 되었다. 나는 어느 유형에 해당하는지 살펴본다. 나도 건강한 바운더리를 지닌 한 인간이고 싶다. 가능할까? 도대체 건강한 바운더리를 지닌 사람은 어떤 특징을 지닌 사람인가?


다섯 가지의 능력으로 설명하고 있다.


   대상과의 친밀도에 따라 관계를 조절할 수 있는 '관계 조절력'을 지니고 있다. 분별 있는 이타주의자라고 표현한다. 삶의 양면을 바라보면서 통합하거나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력일 지닌 것이다. 눈치 보지 않고 휘둘리지 않고 관계를 자신의 입장에서 들여다보고 조절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만 중심이 되지 않는다. 자신도 존중하면서 상대도 존중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사람이고,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지닌 점을 '상호존중'한다.


   너는 너, 나는 나를 넘어서서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이 있다. "그때 마음이 어땠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상대의 마음에 관심을 갖는다. 공감의 시작, 상대의 마음이 궁금한 것부터이다.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지닌 사람들이 모였다면 갈등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적 사고를 할 수 있다. 갈등이 있고 없고 보다 갈등을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는 '갈등회복력'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서로의 감정과 욕구를 이야기하고 소통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갈등 회복을 위해 첫마디가 중요할 것이다. 자동 반응으로 나올 수 있는 문장들을 몇 가지 외워 놓는다면, 쉽게 상생의 대화 과정으로 발을 들여놓을 듯하다. "밥은 먹었어?" "그때 마음이 어땠어?" "그랬구나" "노력할게" 불리 상황을 전환하고자 미안하다고 말하며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다.


   관계가 좋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 솔직하게 '자기표현'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건강한 바운더리의 핵심이다. 자기표현은 자신을 보호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나처럼 타인에 민감한 유형은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또 타인에 둔감한 유형은 자신을 거칠게 표현한다. 나의 마음이 중심에 서는 것과 부드럽게 표현하는 것이 잘 어우러지는 것이 자기표현의 완성이다.


   건강한 바운더리를 이루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알게 되었다 한들, 변화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는 이 부분을 집고 넘어간다. 자신의 반복되는 문제를 알게 되었고 변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러나 변화하려는 행동과 말들이 익숙하지 않고, 어색하다. 견디지 못하고 제자리로 돌아온다. 혹은 내가 변화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라는 절망적인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패하더라도 도전하는 것이 더 가치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 순간 변화가 시작된다.(254쪽)"


   변화를 위해 몸부림치다 작가와 상담하게 된 내담자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에게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두고 있다. 아버지에게 그만하라는 말조차 해본 적 없던 그녀는 어머니의 불행이 마음에 걸려 상담을 받게 된다. 폭력을 멈추라고 해도 멈추지 않을 텐데 그 말을 해야 하는가로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아버지에게 그만하라고, 그의 폭력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말하게 된다.

"상대를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259쪽)"

여러 권의 심리책을 읽어본 나로서, 위의 문장은 드디어 찾아낸 해답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누군가의 행동을, 생각을 바꾸려 했기 때문에 시도조차 어려웠다. 어차피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발목이 붙잡혔다. 그러나 '내 안의 진실'이라면 상황은 바뀐다. 내 안의 짐을 꺼내놓는 것이라면 해볼 만하다. 극적으로 상황이 바뀌지 않을 수 있지만 결국 폭력을 일삼던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지 않게 되었고, 딸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건강한 바운더리의 핵심은 '자신'이었다. 자신의 조절력, 자신의 생각, 자신을 표현하는 것. 자신을 제대로 표현해본 적 없는 이들은 훈련이 필요하다. 어렵지 않다.


  습관적으로 보이던 반응을 '멈춤'으로 시작한다. 대화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더 이끌어 내어 질문을 해가며 자신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 욕구, 책임을 '자각'해본다. 감정을 세심하게 들여다 봄으로써 숨겨진 욕구를 파악하는 것이다.

   자신의 상태나 상황을 파악하고, 한계를 '조절'한다. 상대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며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멈추고 자각해서 조절하기로 했다면 이제 '표현'한다.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다. 상호주의적으로 나는 이렇고, 너는 이렇다. 상대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상대의 행동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이야기한다.

정중하고 부드러운 자기표현은 자신과 상대와의 관계에서 중심으로 두어야 한다. 자기표현을 위해 따로 연습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아니오'연습이다. 거절에 죄의식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뜨끔했다. 내가 그렇기 때문이다. 바운더리가 건강한 사람은 해야 하는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거절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막연하다. 일상에서 자주 훈련해봐야 필요할 때 제대로 해낼 수 있다. 거절은 상대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상대의 요청을 거절하는 것이다. 시간을 두고 생각해본 후 거절한다. 나의 상황에 초점을 맞춰 이유를 설명한다. 짤막하고,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화를 걸어 보험판매를 하는 사람에게 조차 거절하지 못하는 나는, 설명을 다 듣고 나서야 어렵게 관심 없다고 말해왔다. "저는 관심 없습니다."라는 간단명료한 말로 전화를 끝낼 수 있었는데 나는 왜 거절하지 못했는가.



<관계를 읽는 시간>은 바운더리의 개념, 건강한 바운더리로 재건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능력, 자기표현 훈련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바운더리는 나아가서 자기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스스로의 선택으로 경험하고, 반성의 시간을 거치면서 자기 결정 능력 향된다. 자신의 욕구와 재능, 가치관을 알아가며, 자기 이해에 도달한다. 관심이 가는 것들에 공통된 특성이 있고, 방향성을 갖게 된다. 결국 자기 세계가 만들어짐으로써 자신의 모습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오랜만의 서평이다. 쓰기까지의 과정이 나에게는 굉장히 험난하다.

책을 읽는 것, 쉽다. 이미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책을 읽으며 기록하는 것도 쉽다. 필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읽고 기록한 것을 서평으로 완성한다는 것은 참 쉽지 않다.

말이 되어야 하고, 이해한 티가 나야 하고, 내 느낌이 나는 언어로 바꿔야 하고,

이렇게 힘듦을 겪으면 놀랍게 책 속의 내용이 정리가 된다.

서평을 멋지게 쓰지 않더라도 고민하며 글로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책에 봐온 문장들이 뇌에 찰떡 같이 붙는 느낌이다.

그래서 써야 한다. 써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늘 쓸까 말까를 고민하는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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