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올라가야 한다.

<움직임의 힘> 서평

by 민민

5~6년 전 공고에서 근무를 한 적이 있다. 공고. 공업고등학교, 요즘은 특성화고등학교라고 한다. 중심가에서 먼 곳일수록 공고에 입학한 아이들은 성적이 좋지 않다. 기술을 배워 취업을 해보겠다는 큰 포부를 안고 희망을 가지고 들어 오는 아이들이 드문 곳이다. 수업을 해도 흥미가 없고, 핸드폰과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던 아이들이 많았다. 그런 아이들이 모여 있는 학교 교육과정에는 중요한 체험활동이 잡혀 있다. 중요도를 피부로 느끼게끔 전달하자면, 인문계 고등학교의 대학 입시 정도급이다. 바로, '지. 리. 산. 극. 기. 체. 험.'


발령받고 근무를 시작한 지 몇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긴급회의를 해야 한다며 교사들을 불러 모았다. 지리산 극기체험을 위해 대피소 예약을 해야 한다는 것이 회의의 주요 안건이었다. 10대 아이들이 가장 가기 싫어하는 곳, 산을 간다고 하면 그 누가 좋다고 따라갈까. 의문이었다. 도대체 왜 산을 못 올라서 안달인지 나를 포함한 아이들의 가장 큰 불만이었다. 산을 가야 하니 보건교사는 꼭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 학교 방침이다. 결국 2015년에는 지리산 대신 한라산을 다녀왔고, 2016년은 지리산, 2017년은 남덕유산, 2018년 지리산, 2019년 지리산을 다녀왔다. 말을 잘 듣지 않는 고1, 2,3 아이들을 모시고 다녀왔다.

지리산에 처음 발을 디딜 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산을 오다니, 150명의 남학생들과 산을 올라야 하다니. 누가 코스를 짠 것인지 모르겠으나 아이들의 정신력을 기르기 위해 그랬다고는 한다지만 처음부터 오르막이다. 아이들은 욕을 내뱉는다. 나도 조용히 속으로 욕을 했다. 오르기 시작한 지 30분, 아이고 되다. 닦아내는 족족 다시 땀이 난다. 아이들 등판은 축축이 젖었다. 아이들은 입을 닫았다. 누군가 음악을 켜고 간다. 몇몇은 노래를 따라 부르며 간다.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랩을 이어 부른다. 산을 오르내리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잠깐 쉬는 동안 아이들은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선생님들의 짐을 짊어 메겠다며 나눠 갖는다. 점심으로 나눠준 김밥 두 줄은 게눈 감추듯 금세 사라진다. 아이들은 다시 걷는다. 오른다. 잠깐 내려간다. 오랜만에 보이는 평지다. 그러기를 서너 시간쯤 되면 천왕봉을 오를 사람과 오르지 않을 사람을 정한다. 천왕봉을 가겠다며 나서는 아이들이 없을 것 같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천왕봉으로 향한다. 가파르기 때문에 아이들은 네발로 기어올라간다. 그리고 하룻밤을 대피소에서 보낸다. 조별로 밥을 지어먹는다. 웃음이 끊이지 않고, 사진을 찍고,..

졸업을 한 아이들이 학교를 찾아올 때면 어김없이 학창 시절 지리산에 다녀온 이야기를 한다. 그때는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그래도 산에 올랐던 것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기특하기도 하고, 산이 주는 힘이 전해졌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함께 걸어 올라간다는 것, 산을 올랐던 경험은 아이들의 의지와 투지, 견딤에 발판이 되는 것 같았다.



<움직임의 힘>을 읽는 내내 아이들과 산을 오르던 때가 생각났다. 나에게도 지리산의 추억이, 기분 좋은 추억이다. 이제 이유를 알았다. 졸업하고 오는 아이들마다 산을 오른 기억들을 꺼내 놓는 이유 말이다.






#1. 음악


종종 천변을 걸으러 갈 때마다 음악을 들으며 걷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스피커로 크게 듣고 가는 사람들, 이어폰을 끼고 듣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음악을 들으면 뇌 속에 있는 운동회로가 활성화된다. 움직여 보자는 회로가 자극을 받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아는 음악이 나오면 고개를 까딱거리거나 발로 박자를 맞추는 것이 다 이유가 있었다. 음악을 들으면 근육의 힘과 크기, 능력을 높여줄 수 있는 에르제 고닉 효과가 나타난다. 중간 강도로 운동을 할 때는 음악 덕분에 인지된 노력이 줄어들어 더 즐겁게 운동할 수 있고, 높은 강도의 운동은 육체적 힘듦, 불편감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여러모로 음악을 들으며 움직인다는 것은 움직임을 지속시키고 견디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2. 마음의 병


운동을 한다는 것은 1차적으로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정신과 의사들은 '햇빛을 받으면서 하루 30분간 걷기'라는 처방을 내린다. 약물을 덜 쓰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진짜 효과가 있는 것일까? 항상 의문이었다.

신체활동은 endocannabinoids 분비에 영향을 미친다. 엔도 카나비노이드는 뇌의 보상체계에서 도파민을 증가시켜,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이것이 부족할수록 우울감과 불안감을 느끼기 쉽다. 이 책을 쓴 작가도 불안감에 휩싸여 지내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불안감을 극복하게 되었다. 주 3회, 6주간 규칙적으로 운동하면 불안감을 다스리는 뇌 부위에서 신경 연결이 늘어난다. 덕분에 침착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3. 친밀감


얼마 전까지 탁구를 배웠다. 탁구장을 가면 기존에 다니던 회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탁구를 친다.

비오듯 땀을 흘리면서도 쉬지 않는다. 도대체 뭐가 그리 좋아서 매일 탁구를 칠까? 탁구장에서 나서면 그들은 집으로 가지 않는다. 탁구를 치던 사람들과 차를 마시러 가거나 맥주를 마시러 간다. 거기에 가서도 탁구에 대해 논한다.

함께 운동을 하게 되면 전력을 다해 힘을 쏟게 된다. 전력을 다해 운동을 하면 엔도 카나비노이드가 분비되면서 행복감을 느낀다. 미소를 띠게 되고, 자주 웃고, 표정이 밝아진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게 된다. 가깝게 되고, 친밀감, 동료애, 소속감, 유대감을 느낀다. 어느 곳에서 만난 사람들보다 더욱 친한 사이가 되고, 어려움을 나누게 된다.



#4. 집단적 즐거움


원주민의 의식에 참여하며 함께 춤을 춘다. 자신도 모르게 흥이 나고, 춤을 따라 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춤을 추다 보니 원주민들에게 빠져든다. 에너지와 기분이 한껏 고양된다. 계속되는 춤추는 행위 때문에 자신의 힘과 가치가 커졌다는 착각이 든다. 옆에 있는 원주민이 고맙고, 정겹다. 애정이 생긴다. 신뢰가 간다.

원주민들과 가장 빠르게 친해지는 방법은 그들이 하는 것을 의심 없이 함께 즐기며 따라 하는 것이다. 함께 춤을 추면서 '집단적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자아와 타아의 융합으로 표현할 수 있다.

"당신이 보는 다른 사람의 움직임이 당신이 느끼는 움직임과 연결되면서, 다른 사람들의 몸을 당신의 연장된 몸으로 해석하는 것이다.(105쪽)"

집단적 즐거움을 느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회적 결속을 강화시킬 수 있는 협력의 자세로 나아간다. 즐거움을 경험하면서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엔도르핀은 개체들끼리의 결속을 강화시키는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집단적 힘, 희망, 긍정적 생각을 품을 수 있을 만큼 발전한다. 원주민들이 추는 춤이 어렵지 않은 이유는 단순한 동작이 반복될수록 '몰아'의 즐거움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녹색운동


주말만 되면 숲으로 간다. 험한 산이 아니지만 하늘, 나무, 물을 보고 들으며 거닐 수 있는 숲이 좋다. 나는 '녹색운동'을 즐기고 있었다. 자연 속에서 이뤄지는 신체활동을 '녹색운동'이라고 한다. 문제를 떠안고 숲을 가면 금세 잊는다. 어쨌든 잘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힌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감정에 뒤섞여 바라보던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자연 속에서 거닐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작가는 '바이오필리아'라고 불리는 생명애를 소개한다. 자연 속에서의 움직임은 바이오필리아에 사로 잡히게 됨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 성장하려는 욕구, 투지를 불태우게 된다. 분노가 들끓을 때, 삶에 지쳤을 때, 내 마음과 머릿속을 어지럽힐 때 숲을 찾아가 느리게 걷는 것만으로 평온을 찾을 수 있다.




#6. 난관


<움직임의 힘>에서는 견디는 힘을 다루는 챕터가 두 분야로 나뉘어 있다. '장애물 극복하기'와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같은 맥락의 내용을 두 챕터로 다룬 것은 의미가 있다. 운동, 움직임을 유지 해야 하는 이유가 명확히 제시되어 있다.

"진흙탕 웅덩이에 뛰어들든, 물구나무서는 법을 배우든, 생각지도 못했던 무게를 들어 올리든 간에 육체적 성과는 당신 자신과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생각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172쪽)"

정신은 본래 육체적 행동에서 의미를 찾는다. 난관을 이겨내기 위해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향하기 위한 경로를 짜 놓고,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은 운동에만 접목되는 내용이 아니다. 운동에서 확대되어 우리의 인생에도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다.

터프 머더와 울트라 마라톤과 같은 한계에 부딪히는 운동에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통을 잘 견디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탐구하려는 것이다. 그들의 경험은 가장 어두운 시기에 인간이 어떻게 희망과 추진력을 유지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243쪽)"

고통과 자기 의심과 극도의 피로에 그들은 어떻게 대처할까?

"선수들은 오로지 현재에 집중했다. 너무 멀리 내다보면 오히려 압도당할 뿐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끝날지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기 때문에, 그들은 그저 한 랩만 더, 1마일만 더, 혹은 한 발짝 씩만 더 나아가는 데 전념한다고 한다.(249쪽)"

육체적 어려움을 견뎌내는 것은 결국 정신력을 기르는 수단이 된다. 달리기가 결승점이 있듯 굉장히 힘들고 괴롭지만, 고통은 결국 끝난다는 것을 실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다들 극한 체험과 운동에 도전하는가 보다.





<움직임의 힘>을 읽고 있으니 나도 한번 움직여보자 라는 결심이 꿈틀댔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아침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가볍게 걷기를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 같다. 아침 5시 20분쯤 밖을 나갔다. 며칠은 천변을 걸었다. 약 3km 걷는 데 40분이 걸리고, 걸음수는 4000보. 자주 가는 학교 운동장이 눈에 들어와 어느 날은 아침에 운동장을 걷기 시작했다. 약 5km, 55분, 걸음수 6000보. 걸으면 조금씩 땀이 났다. 끈적거림이 나쁘지 않다. 기분이 상쾌하다. 걸으며 음악을 들어 보았다. 책에서는 음악이 운동신경회로를 자극한다고 설명했다. 그것도 다 그런 것은 아닌가 보다. 음악을 들으며 걷기는 나와 맞지 않았다. 음악을 끄고 묵묵히 걸었다. '나는 할 수 있다. 5km 걸을 수 있다.'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계속 되뇌었다. 5km를 다 걷고 나서 집으로 향한다. 기분이 좋다. 엔도 카나비노이드가 분비되는 것인가 싶다.

작가는 운동을 시작하라 라고 제목을 짓지 않았다. 그저 움직임이라고 표현했다. 작은 덩어리로 보이게 해서 쉽게 접근시키려는 센스가 돋보인다. 작가는 알고 있었다. 조금 움직여보면, 스스로 알아서 규칙적으로 움직이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책을 읽었다고 내가 철인 3종에 도전하는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정말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움직임이 나의 삶에 의욕을 불 붙일 것이다. 지리산을 다녀온 아이들이 왜 그렇게 다들 지리산 추억을 이야기했는지 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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