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봐야 하는데,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자동차 구입기
이제 슬슬 복직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올해가 가기 전 준비해야 할 것으로 '차(Car)'를 사야 했다. 벌어들인 돈은 '0'원이나 그래도 필요하기에 몇 군데의 영업점을 방문했다. 11년 된 차를 중고차 시장에 판 후 뚜벅뚜벅 걸어 다녔던 1년. 걸어 다니면서도 세로토닌이 넘친 이유는 새 차를 살 날이 다가온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국산차며, 외제차며, 내 머릿속을 안 거쳐간 차가 없을 정도로 매일매일 어떤 차를 사볼까 행복한 고민을 했다. 물론 통장 잔고를 보며, 대출 이자 계산기를 두드려대 보다가 금세 현실로 나와야 했지만 말이다.
극 현실주의자 신랑과 이상과 현실에 걸쳐있는 나는 후보 차량을 선정했다. 일단 차가 작을 것, 그러나 경차를 제외한다. 환경을 생각하여 하이브리드 또는 가솔린으로 한다. 해치백이나 소형 SUV로 한다. 몇 가지의 선정 기준을 정하고 보니 후보 차량은 2~3가지로 결정되었다. 이제 현대, 기아, 쌍용, 쉐보레를 돌며 실물을 보면 끝이다. 내 머릿속을 나왔다 들어간 차들만 족히 스무 대는 되는 것 같은데 이게 현실인가 보다.
"차를 보려고 왔는데요."
무슨 옷을 보러 온 것 마냥 쓰윽 들어갔다. 분명 우리는 후보군으로 선정된 차량이 있는데, 크고 좋은 차들이 눈앞에 나타나자 좀 혼란스러웠다. 이럴 때 혼란스러움을 잠재우는 좋은 방법이 있다. 저 큰 차를 몰고 다니다 주차 때문에 애를 먹는 나 자신을 잠깐 상상하면 금세 구매욕이 사라진다. 나와 상관없는 차를 구경하는 찰나 나이가 드신 직원 한 분이 우리를 맞이해주셨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분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묻는다.
"어떤 차를 골라오셨을까요?"
우리가 골라온 차를 듣더니 상담을 준비하셨다. 가족이 세 식구이고, 캠핑을 즐겨하지 않는다고 하자 우리가 고른 차량이 잘 맞을 거라고 설명했다. 자동차를 산다고 해서 차종만 고르면 된다 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차 별로 등급에 따른 옵션 기능들을 알아보고 적합한 등급을 선택해야 한다. 이렇게 머리 쓰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내. 돈. 내. 산을 허투루 하지 않기 위해 꼼꼼히 물어본다. 들어도 잘 이해되지 않으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데, 죄송하지만 다시 설명해주시겠어요?"
라고 되물으며 옵션을 신중하게 선택했다.
"차 옵션은 참 어려워요. 저도 제 차 살 때 꼼꼼히 따져보았네요. 제대로 고르려면 잘 알아야 하니 궁금하신 것은 다시 물어보셔요."
대리점 직원은 우리 부부에게 말했다. 한결 마음이 편하다. 자꾸 되묻는 나 자신이, 뭔가 못난이처럼 보일까 봐 걱정했는데 자신도 그랬다고 하니 이 얼마나 마음을 가볍게 하는가. 차를 보아야 하는데 직원분의 말 한마디에 이 차를 선택해야겠다고 잠정적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다른 차도 궁금하고, 다른 대리점 직원도 궁금하니 결정을 보류하고 다른 회사 대리점을 향했다.
다른 회사의 대리점에 도착했다. 회사가 다르다 보니 직원의 태도나 말과 행동에 따라 회사 이미지가 결정되기 딱 좋은 상황이다. 자칫 차를 보기 전에 사람을 보고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차를 보러 왔습니다."
우리 부부보다 나이가 많은 직원이 우리를 맞이했다. 차종을 실물로 살펴본 후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이 시작되면서 나는 당황했다.
"000차 괜찮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것을 확인한 후 뒷 말을 잘라먹기 시작했다. 반말. 딸과 아들 같은가. 본 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설명을 듣다 필요 없는 옵션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느낌을 받자 나도 모르게,
"이 옵션은 필요 없다고 계속 말씀드렸는데 말이죠."
라고 내뱉었다. 순간 정적....! 좀 참을 것을 그랬나. 아니 필요도 없는데 왜 자꾸 필요 있다고 말하는 건가.
"아니, 뭐 제가 팔아먹으려고 그러는 것은 아닌데..."
라고 응수하며 직원이 말한다.
무엇보다 카드 할인 혜택 설명을 듣는데 당최 이해가 안 간다. 벌어들인 돈이 없는 우리에게는 할인 혜택 부분은 너무나 중요해서 그냥 스쳐버릴 수 없었기에 나는 되물었다. 이해가 잘 되지 않으니 다시 한번 설명해달라고 말했다.
"차를 오랜만에 사서 그런가 봐요."
라는 답변을 해왔다. 젠장. 직원이 맘에 안 들고, 그가 하는 모든 말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차는 마음에 들었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다음 날, 우리 부부는 두 차종을 오전 9시, 오후 3시에 시승을 하게 되었다. 드라이빙 센터는 오전 9시 30분 오픈인데 우리 부부의 일정 때문에 좀 일찍 문을 열게 되었다. 시승 센터에 들어가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는데,
"아니, 영업직원이 말 안 해요? 드라이빙 센터는 9시 반부터 시작인데."
-_- 이게 나한테 할 말인가? 내가 예약을 잡은 것 아니고, 영업직원과 센터 직원이 시간을 잡은 것인데 어쩌면 고객이 될지도 모르는 나한테 따지는 것인가? 나는 그냥 대답을 하지 않았다. 딱히 할 말이 없었기도 했다. 시승을 하려고 보조석을 향하는 데 영업 직원이 뒷 문을 열어준다. 보조석에는 자신이 타야 한다나 어쩐다나. 결국 신랑이 운전하고 나는 뒷 좌석을 앉아서 시승을 하게 되었다. 뭐 이런 된장 같은 경우가.
시승을 해 본 후 우리 부부는 별 고민 없이 차를 바로 선택했다. 주행을 시작하자마자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자꾸 물어보는 나에게 그럴 수 있다고 여유 있게 대답하던 직원의 차로 선택했다. 시승을 마치고 바로 계약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다행이다. 쉽게 결정 나서."
"직원 분이 마음에 들었는데 차도 마음에 들어서 진짜 다행이야."
차 구입 기는 며칠이 지나도 내 머릿속에 자리 잡혀 있다. 많은 생각거리를 준 일이다. 두 영업 직원의 모습. 20년은 족히 했을 그 일에 대한 모습이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압박감을 주지 않으면서 대화할 줄 아는 모습이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을까? 그 직원의 가방이 인상 깊다. 서류 가방인데 얼마나 오랜 시간 들고 다녔으면 손잡이가 다 헤졌다. 자신이 모르는 부분은 확인하고 설명해주겠다며 모르는 부분을 드러낸 모습. 그런 모습을 닮아야겠다.
"다른 회사 차도 충분히 보시고, 시승도 해보시고 결정하세요. 저희 차를 사면 좋겠지만 고객님이 10년은 타야 할 차니까 신중히 선택하는 게 좋겠지요."
상담을 받고 돌아서는 우리에게 건넨 이 한 마디가 오히려 구입을 부추긴 한 마디가 되었다. 여유 있게, 고객의 입장에서 좋은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말하는 그의 말은 일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말의 힘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이런 말 한마디 건넬 수 있는 여유를 지니고 싶다.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