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빡독 x전주로 인연이 닿은 빡독러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 <하루 15분 인문학 지혜 독서법>. 하브루타 교육 방식으로 유명한 심정섭 작가의 인문 고전 독서 안내서이다. 책 속에 소개된 방법을 활용해서 아이와 함께 글을 읽는다면 우리 아이 공부 잘하게 된다는 건가?라는 다분히 sky 캐슬적인, 현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엄마의 마음으로 연필 들고 각 잡고 읽기 시작했다.
지혜 독서란, 정해진 시간에 같은 텍스트를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는 것이다. 텍스트에서 기억에 남는 문장과 단어를 고르고, 고른 이유를 주고받는 나눔이라고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지혜 독서를 위한 텍스트는 인문고전으로, 성경, 논어, 반야심경, 명심보감, 채근담 등 다양하다. 인문고전을 한 번 쓱 읽는 다고 내용이 파악될 만큼 쉽지 않기 때문에 지혜 독서를 이끌어 가는 부모는 유튜브나 책을 활용해서 사전 지식을 쌓는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이 정도까지 지혜 독서를 남편에게 설명하자,
"엄마, 아빠가 미리 공부해야 하는 거야?"
라는 예상에 빗나가지 않는 반응이 딸려 나온다. 물론 부모가 사전 준비해서 공부해야 한다는 내용들이 걸리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작가는,
"나는 누구고, 왜 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 지를 알아가는..(10쪽)"
어른이 된 우리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고민하지 않았던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 될 것이라고, 지혜 독서를 소개한다. 혹! 한다.
나의 소망이라면, 가정 안에서의 빡독(빡세게 독서하자)을 꿈꾸는 엄마이자 아내로서, 지혜 독서는 아주 탁월한 방법으로 여겨졌다. 작년 한 해동안 홀로 성경을 읽어가면서, 왜 이제야 성경을 읽었던가, 어릴 적부터 읽어왔다면 나의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이 후회는 아이의 신앙교육으로 뻗쳤고, 함께 성경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찰나에 이 책을 만났으니 운명이 아니겠는가.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 지혜 독서를 국한시키려고 하는 그때,
"현대 교육 과정에서 잘 따라가지 못하고 뒤처진 아이들이 있다면 더더욱 이 아이들에게 수많은 과목을 가르치기보다 제대로 된 지혜 독서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34쪽)"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고민 중 하나를 자극하는 문장과 마주했다. 몇 해전, 나는 특성화고등학교(실업계)에서 근무를 했다. 도시 외곽 지역으로 소위 문제아라 불리는 아이들 다수가 모인 학교였다.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박힌 채 들어온 아이들에게는 고등학교의 필요성은 미미했다. 다녀도 그만, 안 다녀도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5월만 되면 자퇴를 하고 싶다며 담임교사를 졸라대는 일도 자주 있었다. 아이들과 몇 마디 주고받다 보면,
"저는 수학 하나도 몰라요. 공부 진짜 못했어요."
영어, 수학을 못하는 자신이 무엇이든 잘 할리 없다 라고 철석같이 믿어 온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막상 부대끼며 몇 년을 지내다 보니 체육대회 준비를 착, 착, 진행시키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지게차며, 포크레인을 기가 막히게 잘 몰고 다니는 아이도 있고, 자동차 정비를 배우며 엔진 오일을 교체하고, 타이어 압력을 맞출 수 있는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공부가 아닌 것을 잘하는 것은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다, 라는 사고가 깊게 뿌리 박혀 있었다. 어떻게 하면 저 깊게 박힌 못난 뿌리를 속 시원하게 캐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지니고 있었다. 머릿속 한편에 이런 고민을 지닌 채 지내오다 답을 얻을 것 같았다. 결국 독서였구나. 지식과 정보를 다루는 공부 그릇이 작은 아이들도 어릴 적부터 지혜 독서로 가정교육을 해온다면 자신의 그릇에 감사하며, 자신감을 지닌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제 마흔이 된 나도 어릴 적부터 공부가 세상에 전부인 것처럼 생각되었으나 사회에 던져지고 보니 지식 공부만으로 마주하려니, 세상 참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부모의 인생을 돌아봐도 그렇다. 인생이 근심 걱정 없이 언제나 행복하던가? 대학을 가고 취직을 하고, 목표한 바를 이뤄도 생각지도 않은 어려움이 찾아온다. (중략)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지혜의 말씀을 들은 아이들은 이런 삶의 위기에서 오히려 '아하, 그때 엄마, 아빠가 말한 게 이것이었구나!' 하며 깨달음을 얻게 된다. (81쪽)"
내 아이가 세상에 던져졌을 때 잘 헤쳐나갈 힘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공교육과 입시 중심의 학원에서는 바랄 수 없는 진짜 알맹이를 배웠으면 하는 바람. 아이를 학원으로 내몰며 부모가 가르쳐야 할 것들까지 외주화 시킨 세상 풍토에 맞서 가정교육이 살아나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우리 가족의 문화로 지혜 독서를 실천하고 싶은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작가는 친절하게도 지혜 독서에 바로 돌입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 활용 가능한 인문고전 텍스트를 실어놓았다. 평소에 나였다면 이것저것 따지다 시간이 지나 불 타오르던 마음이 사라져 실전에 써먹어보지도 못했을 테지만, 2021년 실천하는 삶을 계획했으므로 내친김에 당장 해보자, 라는 적극성이 활개 쳤다.
결국 우리 가족은 지혜 독서를 실천하게 되었다. 책에 실려 있던 주제별 잠언서를 활용해보기로 했다. 깨달음을 주기 위한 톡 쏘는 격언이라 불리는 잠언서는 아이와 함께 읽기에 좋은 텍스트이다. 지혜 독서를 해보자고 아이와 남편에게 제안하자, 까짓것 해보지 뭐, 라는 반응에 힘입어 토요일 오전 대망의 첫 지혜 독서가 시작되었다. [진정한 부와 돈에 대한 올바른 태도]라는 주제로 잠언에 있는 성경 일곱 구절을 준비했다
① 일곱 구절을 아이 - 엄마 - 아빠 순으로 낭독한다.
② 잠깐 시간을 주고 인상 깊은 구절에 밑줄을 친다.
③ 선택한 이유를 이야기한다.
④ 인상 깊은 구절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을 하나씩 제시한다.
⑤ 한 주간 실천해보기로 한다.
⑥ 지혜 독서 첫 시간에 대한 소감을 나눈다.
책 제목처럼 15분 정도만 해보자,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진행 하긴 했지만 진지한 대화를 나눠보지 않아 어색하면 어쩌지, 딱히 할 말이 없거나 서로를 비판하는 상황이 와서 갈등이 생기면 어쩌지, 아이가 집중하지 못하면 어쩌지 라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지혜 독서의 소감이 어땠는지는 남편의 소감으로 대신해야겠다.
"어색할 거라 생각했는데, 서로 무엇을 실천할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경험이 아주 좋은 것 같아. 아빠가 맨날 잔소리만 했는데,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것 같아."
지혜 독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남편도 이렇게 이야기했으니 해볼 만한 것 아니겠는가.
우리 아이 비슷한 또래들을 보면 참 바쁘다. 온라인 수업에, 수학, 영어 학원에, 논술에... 여유를 가져보자 하면서도 엄마는 불안하다. 내 아이만 뒤쳐지는 것 아닐까 라는 걱정. 이 책을 만나고 가장 좋았던 것은, "아이의 속도에 맞게"라는 글귀를 만난 것이다. 남의 아이를 기준으로 끌어다 놓고 괜히 복잡했던 머릿속이 내 아이가 기준이 되고 보니 이렇게 편안할 수 없다.
채소만 먹을지라도 사랑이 있는 곳이 고기를 먹더라도 미움이 가득한 곳보다 낫다(잠언 15장 17절)
첫 지혜 독서 시간에 공통으로 고른 인상 깊은 구절이다. 키워드는 사랑! 셋이서 이 구절을 함께 골랐다는 사실이 더욱 돈독하게 한다. 강퍅한 세상, 무한경쟁 시대, 심지어 인공지능과도 경쟁해야 하는 이 시대에서 정확한 길도 모른 체 분주했던 내 마음에, 이 책 한 권이 어디를 향해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지침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