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편견 속에 살고 있는 우리

한스 로슬랭의 <팩트 풀니스> 서평

by 민민

사실 충실성이란?


인간의 뇌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속단하는 일들이 왕왕 있다. 과거에는 빠른 판단을 이용하여 생존할 수 있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빠른 판단이 생존에 도움이 될까? 나를 돌이켜보면 남의 이야기, 극적인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자극적인 내용만 다루는 뉴스를 유용한 정보라며 걸러내지 않고 받아들인다. 어제 하루 내가 검색한 기사는 무엇일까? "이태원 클럽 방문자", "코로나", "아이돌 클럽 방문"...! 남 이야기, 자극적인 이야기를 검색하며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분노했다. 과도하고 극적인 것들에 노출되면서 세상은 타락했다고 판단하고, 살기 힘든 곳 '헬조선'이라고 외쳐대며 스트레스를 만들어냈다. 결국 삶의 의욕을 짓밟고, 분노에 휩싸여 대안 없는 불평만 해댔다. 이런 모습들은 나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살아내는 사람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을 끊어내고 발전적인 자세로 살아가기 위해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작가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지금보다 더 객관적인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지니고 있어야 할 것으로 Factfulness를 제시한다.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정확한 시각으로 바라보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Factfulness(사실 충실성)는 작가 한스 로슬랭이 만들어낸 용어이다. 팩트(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태도와 관점을 말한다.





극적 본능의 종류


이 책에서 이해할 주요 단어는 앞에서 소개한 factfulness극적 본능이다. 극적 본능은 어떠한 사실을 접할 때 내 머릿속에 장착되어 있는 필터를 말한다. 이 필터는 사실을 왜곡할 수 있고, 한쪽만 부각하거나, 안일하게 예측하고, 사실보다 더 큰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이게 할 수 있다. 극적 본능의 작용으로 결국 사실을 정확히 바라보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세계를 알지 못하는 상태이나 본인 스스로는 세계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상태로 전락한다.

과거에 살던 사람들은 수렵과 채집을 위해 극적 본능을 이용하여 생존해냈다. 수천 년 전에는 유용했던 본능이 수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는 세계를 정확하게 보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극적 본능이 이끄는 대로 세계를 바라보면서 세상을 오해하고 왜곡해왔다. 그렇다면 극적 본능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가? 한스 로슬랭은 10가지의 본능을 제시한다. 작가 스스로도 본능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해온 적이 있고, 그 결과 무관한 사람들을 바다에 빠져 죽게 한 경우도 있었다. 극적 본능의 용어만 접했을 때 나와는 상관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세상을 그래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큰 착각 속에 빠져 있었다. 책을 읽어갈수록 내가 지닌 극적 본능과 만나게 되었고 자각하지 못한 채 내 판단을 얼마나 좌지우지 해왔는지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극적 본능 10가지



나는 뉴스 소비자이다


사실 충실성을 이해하면서 세계까지 바라보는 넓은 시야가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면서 편협한 사고와 편견으로 세계를 오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즉각적으로 비난 본능이 발동되어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었고, 언론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내가 뉴스를 소비하고 있다면 뉴스 생산자는 언론이다. 각 방송사 뉴스 헤드라인만 봐도 온통 자극적인 것들 뿐이다. 성착취, 코로나, 살인 등등. 언론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어야 하는 입장이다. 언론은 태생적으로 극적 상황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뉴스에서 접하는 사건만 가득할 뿐 나아질 기미가 없는 것일까? 언론을 공격하기로 마음먹은 나에게 작가는 말한다.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할 뿐 어디선가는 쉼 없이 성장하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놓치지 말아라!



무수히 많은 것이 개선되고 있지만, 결코 보도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오해는 말라. 부정적인 것과 이른바 균형을 이룰 사소하지만 긍정적인 뉴스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근본적 발전인데도 하나하나가 너무 느리거나, 너무 파편적이거나, 너무 작아서 뉴스거리가 되지 못하는 경우, 그러니까 은밀하고 조용하게 이루어지는 인류 발전의 기적을 말하는 것이다.(77쪽)




극적인 뉴스만 보도된다고 해서 우리에게 긍정적인 뉴스거리가 없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라. 인류는 더디지만 쉬지 않고 발전하고 있다.




뉴스는 현재 일어나는 나쁜 사건에 대해 끊임없이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99쪽)





과거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는 고통을 감시하는 능력이 개선되어, 부정적인 뉴스거리들을 매일 끊임없이 생산하게 되었다. 나빠지고만 있다고 느끼게 되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사회 분위기는 공격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비난 본능이 작동된다. 결국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

뉴스 소비자인 우리는 언론에만 의지해 세계를 바라보던 수동적인 자세에 변화를 줘야 한다. 언론에만 의지하는 것은 마치 누군가의 발 하나만 보고 그 사람을 파악하는 것과 같다.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사실 충실성을 이용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세계를 좀 더 정확하게 바라보는 뉴스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사실 충실성의 눈으로 내 주변 바라보기


삶에 적용하기 어려운 용어처럼 느껴지는 '사실 충실성'을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을까?

코로나의 기세가 꺾이지 않은 상태로 연휴를 맞이한 나는 사람 없는 곳을 찾아 등산을 하게 되었다. 등산로 입구에서 눈에 띄는 한 무리들을 보았다. 그 무리에는 외국인도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이다. 그들을 보자마자 자동적으로 개발도상국, 극빈층을 떠올렸다. 순간 그들이 불쌍하게 여겨졌고, 우리보다 못한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는 생각에 휩싸였다. 나도 모르게 극적 본능이 작동하면서 타고난 특성은 변하지 않고 지금 상태에서 절대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운명 본능에까지 생각이 뻗쳤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라면 다들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일 것이라는 일반화 본능도 더해졌다. 못 사는 나라에서 온 가난한 노동자이고, 돈을 벌어도 언제나 극빈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그들이 불쌍해 보였고, 동정 어린 시선으로 힐끔거렸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산을 오르던 중 어디선가 유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유쾌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를 보더니 자신의 친구처럼 반갑게 "Hi."를 외치며 인사를 했다.

"어디에서 일해요?"

"어떻게 산을 오를 생각을 했어요? 대단하네."

"장가도 가야겠네."

그는 경쾌한 말투로 외국인 노동자에게 망설임 없이 이야기를 건넸다. 그들을 친구처럼, 아들처럼 생각했다. 악수도 하고, 또 보자고 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그는 나와 달랐다. 극적 본능에 휘둘리지 않았다. 그는 길거리에 자주 만나는 젊은 청년으로 생각하며 대했다. 반면에 티 내지 않으면서도 힐끔 곁눈질하며 동정 어린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던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아차 싶었다. 극적 본능이 사람을 대하는 자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 충실성을 따져보지 않고, 그저 언론에서 비춰온 모습에 나의 운명 본능, 일반화 본능을 덧 씌워 그들을 바라보았다. 결국 그들을 나와 동등한 관계로 바라보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근거 없는 동정심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 책을 어떻게 소화시켜 볼까?


책을 맛보았으니 이제 '팩트 풀니스'라는 개념이 내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사실 충실성의 개념을 알게 되었고 극적 본능이 무엇이며, 그 본능들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간섭하는지 알게 되었다. 주유구에 확인되지 않은 기름을 부어 넣듯, 누군가가 넣어주는 잘못된 정보를 내 머리에 넣고 싶지 않다는 의식이 생겼다. 왜곡된 자세를 버리고 세계를 제대로 알아가기 위해 지금 서 있는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너머를 보기 위해 지식을 업데이트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자각해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사고의 흐름을 유연하고 객관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어제의 지식으로 오늘을 살아낼 수 없음을 알았으니 오늘의 지식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봐야 한다. 어떠한 사건이든 현상이든 도표와 그래프이든!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깊이 있게 하나하나 따져내지 않는다면 크게 보이는 중심의 것만 가지고 단일화 본능에 휩싸여 잘못된 판단과 해석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저 헤드라인 한 줄 읽는 것으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다양한 방송사와 신문기사를 접하면서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외국인을 차별 없이 대한다. 나도 모르게 외국인을 보면 간극 본능이 작동되어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였다. 영어를 가르치러 들어온 외국인과 공장에 일하러 온 외국인 노동자!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대하는 자세는 차이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등산을 하며 깨달음을 얻었으니 이제 외국인의 출신 국가가 어디이든, 어떤 일을 하든 그들을 차별 없이 존중하는 자세로 대하기 위해 내 안의 극적 본능을 벗어던져야 한다.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소시민의 생각과 시각으로 한계를 만들며 담을 쌓아가고 있는 나 자신과 마주했다. 나라 밖 소식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에나 잠시 관심을 두었을 뿐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 기근, 가뭄, 온난화 등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서양인들은 항상 우리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고, 아프리카는 서양인을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갇혀 살았다. 내 생각을 지배하던 운명 본능과 일반화 본능을 이제 털어내야 한다. 세계의 변화에 귀 기울이고, 시선을 넓혀야 한다.





마무리


이 책을 읽는 매 순간 깨닫게 된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는 해변에 있는 한 줌의 모래와 같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만 잘 알고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터득할 수 있다는 좁은 생각은 버리고, 세계로 시야를 넓혀나가야 한다. 기존에 갖고 있던 지식과 나의 극적 본능으로 세계를 오해했던 일들을 지금 멈춰야 한다. 이를 위해 사실 충실성이 필요하고, 이것은 단박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올림픽 대회를 출전하기 위해 훈련을 하는 운동선수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사실에 접근하기 위해 극적 본능을 억누르고 생각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차츰차츰 사실 충실성을 활용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세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필요한 지식을 나누는 사람이 더디지만 쉬지 않고 불어난다는 것이다. 사실충실성은 세계 곳곳의 조용하고 은밀한 인류 발전을 이끌어 내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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