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은 기대에 찬 겨울이었다. 재충전을 위해 잠시 일을 쉬기로 계획하고 있었다. 아이가 학교를 가면 차분한 분위기에서 햇살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다가 영어 공부를 하다가 요리도 배워 보고, 캘리 그라피도 써보고, 산책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년 겨울은 2020년을 계획하다 흩었다 다시 계획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1월이 되었다. 나의 보랏빛 찬란한 계획에 불안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우한 폐렴'이 등장했다. 우한 폐렴은 뭐지? 기사를 찾아보니 심각해 보인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상관없겠거니 생각했다. 내 생각과는 다르게 2월 말 '사상 초유의 등교 연기'를 경험하게 되었다. 세상에나. 등교를 늦추다니! 어리둥절하게 보내다 3월을 맞이했다. 사람들은 처음 겪어보는 '코로나' 공포에 휩싸여 집 밖을 나오지 않았다. 거리에도, 마트에도, 학교에도, 학원에도, 곳곳마다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나와 아이는 찰떡 같이 붙어 지내야 했다. 나는 뜻하지 않은 모습으로 휴식기를 맞이 했다.
3월은 아이와 부모 모두 우왕좌왕이었다.
등교 연기는 난생처음이고, 조만간 다시 등교할 거라는 기대 아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숙제도, 온라인 수업도 없었다. 이때부터 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우리 아이만 노는 것 아니야? 다른 애들은 집에서 엄마랑 뭘 하며 시간을 보내지? 책을 읽어주나? 수학 문제집을 풀리나? 영어 공부를 시키는 건가? 그럼 난 무얼 시킬까?
불과 며칠 전까지는 아이를 학교 보낸 후 모닝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내 시간을 즐기는 모습을 상상하고 기대했지만 이제는 철저히 학부모가 되어 아이에게 뭐 하나라도 더 시킬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렇게라도 하면 내 마음에 등장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잠잠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내 마음의 불안함 때문에 아이에게 수학 문제집을 펼쳐 선행 학습을 시켰다. 아이는 문제집을 풀고, 나는 채점을 하고, 틀린 문제를 설명하다 나도 모르게 모진 말을 쏟아냈다.
"이런 문제 틀리면 안 된다. 왜 이런 걸 이해 못하는 거야!"
코로나 파장이 거세지듯, 아이를 향한 모진 말도 거세졌다. 수학을 풀리고 난 후 레고를 맞추는 아이를 보자니 또 스멀스멀 그분이 찾아오신다. 불. 안. 감.! 레고를 다 맞추기도 전에 아이를 불러서는 다시 책상에 앉혔다. 받아쓰기를 시작했다.
"1번 창문을 닦아요. 2번 창문을 닫아요.... "
아이는 '닦'과 '닫'을 헷갈려했다. 차분히 설명해야지 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아이 머릿속에 '닦'과 '닫'을 쑤셔 넣을 기세로 설명했다. 아이는 풀이 죽었고,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속에서 천불이 났다. 그러다 아이의 풀 죽은 모습에 멍 해졌다. '나 뭐 하고 있는 거야? 애를 잡겠네.'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든 아이를 바라보니 미안함으로 마음이 뒤흔들렸다. 내일은 그러지 말자. 아이가 모르는 것을 이해하자. 함께 놀아보자고 다짐을 했다. 다음날 아침.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다시 나타났다. 놀고 있는 아이를 보자니 불안해지고, 그래서 가르치려 들고, 아이를 답답해하고, 그러다 모진 말로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나. 며칠을 지켜보던 아이 아빠는,
"왜 그렇게 화가 나 있어? 하루 종일."
"그렇게 스트레스받으면서 공부시키지 마. 아이들은 놀면서 크는 거지."
그러게 나는 왜 이렇게 매일 화가 나고, 아이를 답답해하는 걸까? 아이와의 관계만 나빠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 뜻과는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시키던 학습을 그만두었다.
학습을 억지로 시키는 대신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보드게임을 하고, 레고를 맞출 때 곁에 있어 주고, 종이접기를 하고, 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며 시간을 보냈다. 학습이 없어지니 나는 예전의 내가 되었다. 하루는 잠들기 전 아이가 할 말이 있다며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 이제 착한 엄마 됐네."
헉! 아이 한마디로 정신이 번쩍 났다. 지금까지 아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건가. 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아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미안해! 많이 속상했지. 이제 매일매일 착한 엄마 될게."
아이에게 많이 미안했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나니 답답했던 내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졌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정신 못 차리던 내가 이제야 정신이 든다.
나는 육아와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읽었다. 읽고 메모하고 좋은 글귀들은 이곳저곳에 붙여놓았다. 육아 지식을 자랑하며 아이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내가 불안감에 휘둘리자 아이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아이와의 관계만 멀어질 뻔했다.
여전히 아이와 나는 찰떡같이 붙어 지낸다. 등교는 여러 차례 연기되었고, 이제 등교하겠구나 싶었던 날이 또 미뤄졌다. 온라인 수업을 듣고, 종이접기를 하다, 아빠와 함께 문제집을 풀고 채점을 하고, 그러다가 보드게임을 하고, 레고를 맞추다가, 동화책 한 권을 읽고 잠이 든다. 나를 학부모의 욕심으로 가득 채워 흔들어 대던 불안감은 이제 없다.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