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딱 세명이다.
아이와 아이 아빠, 그리고 나.
퇴근 후 집에 모이면 식사를 하고,
아이는 블록을 맞추거나 태권도장에서 배워 온 품세 연습을 하고,
아이 아빠는 절친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나는 책을 읽거나 홈트를 한다.
어느 날은 퇴근 이후 시간이
무료하다고 느껴 온 내가,
"우리 운동이나 하러 갈까? 나가 보자!"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을 해보자며
둘을 이끌고 나갔다.
어둑어둑한 저녁에 산책을 하려니
흥이 나지 않아
집 주변을 배회하다가 '초. 보. 환. 영.'이 내걸린 탁구장을 보게 되었다.
탁구라면 아홉 살 난 아들도
흥미롭다고 느끼지 않을까 하며 들어가 본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많은 사람들이
열기를 뿜어내며 탁구공을 쳐내는 모습이다. 자리가 없다.
뭔가 오기가 생긴다.
우리는 다른 탁구장을 찾아간다.
마치 탁구를 치기 위해
계획하고 나온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또 다른 탁구장이 보인다.
000 탁구장! 초보 환영!
다들 왜 그리 초보를 환영하는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초보는 레슨 대상이 되고,
탁구장에서 가장 많은 돈을 내는 고객이다.
우리는 그냥 가벼운 산책을 위해 나왔다가
결국 탁구장에 입성하게 되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환영해 주시는
관장님을 만나게 된다.
나이 60은 훌쩍 넘은 듯한 깡마르시고,
밀가루처럼 허여멀건 남자분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어서 오세요" 하신다.
여기서 잠깐 말해두지만,
나의 가장 큰 약점은
처음 본 사람에게 쉽게 정을 주거나
홀랑 넘어가버리는 약점이 있다.
그러다 보니 쉽게 상처를 받게 된다.
어찌 보면 상처 받을 구멍을 먼저 파는 셈이다.
사람을 탐색하는 것은 모르고,
그저 나에게 잘해주거나 웃어주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겠구나 라는
단순함을 장착했다.
나는 관장님의 친절함과 나이 60이 넘으신 분의 꽃미소에 홀랑 넘어가
탁구 2개월 레슨을 결제했다.
초보인 우리를 상대로 코치를 해주시니
고맙기도 했고, 치다 보니 재미가 생겼다.
"우리도 이제 운동할 나이야. 탁구 괜찮지? 이거 배워보자."
이제 갓 40이 넘은 신랑의 약점은, 나의 말에 쉽게 넘어간다는 것이다.
아홉 살 난 아들내미는 물어보나 마나다.
가벼운 산책이, 2개월 탁구 레슨으로 이어지고
거금 60만 원을 쓰게 된 저녁.
다음 날부터 우리 셋은 하루가 멀다 하고
열심히 탁구를 치러 다니게 되었다. 초보다 보니
먼저 스윙 연습!
"아래팔을 기계적으로 만들어야 해요. 손목이 아니라 하완근을 움직이세요."
"탁구 채 끝은 콧날까지 오도록 스윙 연습을 하세요."
"공을 맞추려고 하지 말고, 스윙을 제대로 하려고 하세요."
관장님과 코치님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말을 끊임없이 하셨다.
셋 중에 가능성을 보이는 신랑과 아이.
내가 봐도 스윙 자세가 나와는 달랐다. 아이는 일단 잘하고 못하고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보니 기량이 날로 늘었다.
그러나 나는,
먼저 탁구를 쳐보자고 제안했던 나는,
나아짐이 없었다. 관장님도 같은 말을 반복하시니 지치셨다.
어느 날은 짜증을 내신다.
"계속 말하잖아요, 스윙을 끝까지 해야 한다고."
몸의 아둔함도 감동을 했는지
100번의 스윙 연습 이후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이제 신랑과는 핑퐁(주고받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탁구는 처음 시작할 때보다 주고받기가 될 때 더욱 재미를 느끼는 법이다.
그 재미가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퇴근하면 저녁밥도 대충 먹고
바로 탁구장을 오는 가보다.
기존에 다니던 사람들과도 인사를 하고,
어린아이가 다니니 눈길을 더 받게 되고,
아이는 홀랑 홀랑 간식도 얻어먹게 되었다.
남자 아이라 그런지 기량이 쭉쭉 늘어나는 것이 보인다.
퇴근하면 저녁 뚝딱 먹고, 바로 탁구장을 향하며 열심이다.
어느새 두 달이 다 되어갔다.
나는 고민했다.
'우리 셋이 레슨 받기에는 레슨비도 부담인데, 나는 받지 말까?'
아들과 아빠는 사춘기를 대비해 함께 운동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계속 배워봐야 돈 낭비인 느낌적인 느낌.
그러다 핑퐁을 생각하면 재미가 떠올라 아쉽기도 해서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다.
고민의 연속이던 어느 날, 아직 두 달이 되지 않았으니
며칠 더 고민해보자로 결론 내리고
탁구장을 갔다.
관장님은 나를, 코치님은 신랑을 레슨해 주셨다.
보통 15분 레슨 시간이라면
그날은 유난히 오래,
생각해보면 거의 30분 이상의 레슨을
받은 것 같다. 새로운 기술 '쇼트'를 배우게 되어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레슨을 마치자 나와 신랑은
나란히 관장님께 불려 갔다.
마치 교무실에 혼나러 온 학생 마냥
관장님 앞에 쪼르륵 앉았다.
'뭐지? 아직 2주나 남았는 데, 벌써 레슨비 얘기를 하시려나?'
나의 예감은 적중!
"두 분 다 운동신경이 아주 좋으세요. 앞으로의 생각이 어떤지 궁금하네요.
계속하실 거지 어쩔 건지, 제 생각 같아선 셋다 3개월 정도 레슨을 더 받아야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출 것 같은데요."
물론 관장님의 말이 맞았다.
그런데 나는 묘하게 반감이 생겼다.
그래서 한 말이,
"셋이 3개월을 받는 것은 부담이 될 것 같아요. 아직 2주 정도 남았으니 더 고민을..."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관장님은,
"2주 더 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어요. 2주간 뭔가를 하는 건 나아지는 것이 아니고,
아무튼 2주간은 의미 없지요.
3개월 정도 더 한다는 계획이 있어야
우리도 다음 기술을
가르치고 그러는 것이지."
헉,,
그 순간 탁구의 열정과
핑퐁의 재미는 모조리 사라졌다.
대충 대답을 미루고,
불쾌함을 느꼈다는 감정을 슬며시 풍기며
탁구장을 나왔다.
그 날 이후로,
탁구장은 정말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되었다.
관장님 입장에서는 충분히 하실 수 있는 말씀이었지만
말을 받는 입장에서는 레슨비만 생각하는 사람으로 비쳤다.
그 느낌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는지
신랑도 탁구장을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그만두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싶으나
끝인사를 하러 가는 것조차 내키지 않았다.
뭔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것 마냥,
다시 웃으며 인사하기까지가 어려웠다.
결국 우리 셋은 남은 2주를 다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계속 다닐지 결정 나지도 않았는데,
2주를 채운다는 게
남의 집에 2주간 허락 없이 머무르는 느낌일 것 같았다.
관장님의 말이 머릿속에 오랫동안 머무를 것 같다.
나도 내 입장만 생각하면서,
조급해하면서 상대에게 말을 건넨 적이 없을까?
분명 있을 텐데,
내가 했던 말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탁구공이 넘겨지고, 넘어올 때는 적당한 힘과
정확한 방향으로 꽂아 줘야 한다. 상대가 받을 수 있도록
눈치껏 파악하면서 말이다.
남들에게 듣는 말도, 내가 하는 말도
서로를 생각하며 주고받기가 되어야 함을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