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20일
몇 년이 지나면 뜻깊게 기억될 오늘! 아주 역사적인 날이다.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이 등교하는 날이다. 학교를 싫어하던 아이들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학교를 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다들 학교를 가고 싶다고 교실 책상에 앉아보고 싶다고 말해왔다. 그리고 오늘 2020년 첫 등교의 날이다. 얼마나 설렐까. 또 얼마나 불안할까. 행여나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는 것 아닌가라는 마음까지 짊어지고 학교를 향했을 것이다. 나는 고3 학부모도 아니고,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직원도 아니지만 설렘과 눈물이 나올 것 같은 벅찬 감동 이런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고3 엄마가 아닌 평범한 초2 엄마는 오늘도 아침부터 학교에서 나눠준 '배움 꾸러미'를 챙겼다. 아이에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생각하고 적어보게 했다. 그리고 9시 30분. EBS를 틀어놓고 국어 수업을 받게 했다. 아이를 물끄러미 보며 돌이켜보니 학교는 참 좋은 곳이었다. 아이의 흉허물을 덜 볼 수 있게 해 줬고, 학교라는 곳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엄마의 불안감을 잠재웠으며, 외동아이에게는 친구와 함께 놀 수 있는 공간이 되었고, 아이들과 선의의 경쟁을 하며 실력이 나아질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엄마의 잔소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학급 전체 아이들과 신나게 피구를 할 수 있던 곳이 학교였다. 무엇보다 코로나 때문에 알게 된 가장 큰 깨달음은 학교는 따뜻한 밥에 고루 영양 갖춘 반찬을 주는 감사한 곳이었다. 요리에 대한 관심도 없고, 지식도 없던 나는 코로나 때문에 끼니와의 싸움을 벌여왔다. "오늘 뭐 먹어?"라는 말이 가장 무서웠다. 할 수 있는 요리, 요리라고도 할 수 없는 행위로 돌려막기를 하며 삼시 세 끼를 챙겨 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학교 예찬론자가 되었다. <린치핀>을 읽을 때만 해도 학교는 없어져야 할 존재로 판단하고, 창의와 재능을 꺾는 곳으로 치부했는데, 사람이 참 간사하다. 내가 힘들고 보니 학교는 참 좋은 곳이다. 이런저런 시답지 않은 생각 속에 머무르고 있는데 아이는 자전거를 타러 가자고 했다. 내가 산책을 가자고, 바깥 활동을 하자고 좀처럼 말해도 나가기 싫다더니 오늘은 먼저 나가자고 한다. 지금 이 시간은 체육활동 시간이다 생각하고 바로 나갈 채비를 한다. 마스크를 꼼꼼히 쓰고 출발.!
집 근처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어제 내린 비로 젖어있는 땅을 한바탕 말려 보겠다는 듯이 햇볕이 내리쬐는 운동장. 농구를 하는 남학생 둘, 그리고 자전거를 타러 온 우리 둘. 슬쩍 학교 현관을 보니 아이들 맞을 준비 중인가 보다. 손소독제를 챙겨놓고, 게시물을 붙이고, 몇몇은 학교 곳곳을 닦는 모양이다. 아이들도 오지 않는 운동장을 빌려 쓰려니 머쓱하다. 아이는 오랜만에 물 만나 고기처럼 운동장을 누비며 자전거를 탔다. 아이는 자전거를 타다 철봉을 하다 달리기를 하다. 이것저것 하며 알차게 논다. 팅- 팅- 농구공을 튕기며 남학생 둘은 농구를 한다. 제법 키가 큰 것을 보니 고등학교 2학년은 되어 보이는 학생들이다. 둘은 말없이 농구를 한다. 땀을 흘리면서 골대 밑 슛을 쏘다가 레이업 슛을 하다가 자유투, 3점 슛 라인에서도 슛을 쏜다. 이 시간에 농구를 하며 알아서 체육 시간을 꾸려가는가 보다.
자전거를 몇 바퀴 돌고 나니 땀이 나려고 한다. 내가 힘들면 체육활동은 끝나는 시간이다. 아이를 불러서 집에 가자고 타이르고 집으로 향한다. 워낙 자전거를 잘 타는 아이니까 놔두고 나는 먼저 앞지른다. 잘 뒤따르겠거니 했는데 난데없이 "아!" 하는 소리가 난다. 급히 멈추고 뒤돌아보니 아이가 넘어져있다. 자전거를 세우고 아이에게 가보려는데 농구를 하던 학생 둘이 아이를 향해 뛰어간다. 뛰어가는 속도로 보면 나보다 그들이 아이 엄마인 것 같다. 나는 아이가 앉아있는 상태를 보니 간단한 찰과상이겠거니 하며 가고 있었다. 농구하던 두 학생은,
"괜찮아? 손바닥이 쓸겼네. 아프겠다."
하며 살갑게 다독이며 자전거를 바로 세워놓는다. 피가 나올락 말락 할 정도인 것을 보더니 학생은,
"잠깐만요."
하고는 잽 빠르게 가서 가방에 있던 밴드를 가져온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그 학생들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엄마도 있으니 넘어졌어도 본체만체할 수 있었을 텐데 곧장 뛰어가서는 아이를 챙긴다는 것이 쉽지 않을 나이일 텐데 말이다. 선한 행동을 하려고 해도 남들 눈을 신경 쓰면서 모른 척할 시기에 밴드까지 챙겨가지고 다니는 세심함과 준비성에 놀랐다. 자전거를 타러 가자면서 덜렁덜렁 자전거만 이끌고 온 나와는 사뭇 다르다. 우리 아이도 저렇게 커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갈수록 너는 너, 나는 나 이런 생각으로 살아가는 이기심 가득한 나였는데, 농구 소년들 덕분에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커다랗게 퍼져 나간다. 그들은 코로나 때문에 강퍅했던 내 마음 밭에 따스하고 촉촉하게 스며드는 고마운 비가 되어 주었다.
농구 소년들도, 우리 아들내미도 어서 등교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