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이 감정을 결정한다.
책에서 이런 문장을 읽었습니다. '웃겨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웃는 것이다.' 뇌과학적 관점에서 접근한 이야기인데요. 뇌의 관점에서 봤을 때, 웃겨서 웃는다기보다는 웃음을 짓는 표정 때문에 웃긴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웃는 표정이 아니라면 웃기다는 감정이 들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웃겨서 웃음이 나는데 웃음을 참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까지 생각이 들었는데요. 제 생각으로는 '웃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웃는 얼굴'입니다. 눈꼬리와 입꼬리가 올라가고 광대뼈가 도드라지는 환한 웃음이요. 제 얼굴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의 웃는 얼굴이 머릿속에 선명한 이미지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하지요. 본능적으로 집단을 이루고 공동체 생활을 하는 생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쉽게 타인의 감정에 '전염'됩니다. 예를 들면, 누가 레몬을 먹고 너무 셔서 인상을 팍 쓰게 되면 그 모습을 보는 다른 사람도 같이 인상을 팍 쓰게 되는 겁니다. 그 사람과 똑같은 느낌을 느끼지는 않을 텐데, 마치 같이 레몬을 먹은 것처럼 인상을 쓰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을 공감이라고 합니다.
위와 같은 관점으로 보면, 웃음을 참는 경우도 이미 뇌는 '웃는 표정'을 인식했기 때문에 웃기다는 감정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이미 웃는 표정을 떠올렸고(혹은 보기만 해도 재미있는 모습, 장면 등)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는 웃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이미 웃고 있다는 말입니다. 생각한 대로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건강을 찾기 위해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 밤 산책을 자주 나가는 편입니다. 운동 겸해서 걷다 보면 정신도 맑아지고 생각도 정리되고,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걷기에만 온전히 집중하게 되고 여러 좋은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지난 일주일간 매일 산책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저녁, 밤늦게 나가다 보니 덥지 않고 시원해서 좋지만 햇볕을 쬐며 걷는 산책이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어제는 낮 12시에 산책을 나가보기로 했습니다. 순전히 햇볕을 쬐자는 목적으로요.
햇빛이 가장 강렬할 때에 나가서 그늘과 볕을 적절하게 섞어서 걸어 다니면 제가 원했던 산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다리 밑으로 걷는 적절한 코스도 있었고 해서 걱정은 없었습니다. 1시간가량 걸을 준비를 마치고 바로 나갔습니다. 예상대로 햇빛은 뜨거웠습니다. 그늘이 없는 길을 걸을 때면 위에서는 태양이, 아래서는 바닥이 저를 구워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또 그늘에 들어가면 방금 전까지 저를 통으로 구워내는 곳에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원합니다. 이를 반복하다 보니 정오에도 산책할 만하더군요.
한 30분 즈음 걸었을까요, 뙤약볕을 걷는데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생각보다 걸을만하네? 엄청 뜨겁지는 않은데? 이 정도면 따뜻하다고 할 수도 있겠어.' 집에서 나오고 10분까지는 '더워 죽겠는데. 이거 30분이나 걸을 수 있을까? 너무 뜨거워.' 이런 생각이었는데요. 햇빛이 강렬해지면 더 강렬해졌지 약해지진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때부터 뭔가 느낌이 달라지는 겁니다. 햇빛이 더 이상 뜨겁지 않고 지면에서 올라오는 열도 뜨겁지 않았습니다. 대신 좀 과하게 따뜻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뜨거움과 따뜻함 그 경계에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산책을 거의 마칠 때가 되어서는 햇빛을 더 받고 싶어서 땡볕 아래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5분간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늘 찾아다니기 바쁜데 저는 반대로 땡볕을 찾아다녔습니다. 누가 보면 '저 사람 왜 저러나.' 싶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웃겨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웃긴 감정이 든다는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됐습니다. 보이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A라는 사물을 놓고 어떤 사람은 B라는 감정을 느끼지만 다른 사람은 C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내가 그 상황이 어떤가를 인식하고 정의하면 그에 따라 내 감정이 이어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웃는 얼굴이라는 상황을 인식하고 웃긴 감정이 유발되는 것처럼요.
초여름의 땡볕을 따뜻하다 생각하고 걸을 수 있었던 방법은 제가 햇볕을 어떻게 인식했는가에 달려있었습니다. 신기한 일이죠? 저도 어떻게 이게 가능했는지 궁금합니다. 뇌, 감정에 대해 배우면 배울수록 평소 알고 있던 사실과 다르게 접근하는 관점이 많아서 재미있기도 하고 머리 아프기도 하고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