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몰랐던 내 모습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알아차리다.
자주 듣던 말이 있습니다. 10대부터 2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이 말을 참 자주 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말을 안 해?', '무슨 말이라도 해봐. 듣고만 있지 말고.'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딱히 부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저 스스로도 알고 있었거든요. 저는 말을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듣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말을 잘 못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말을 더듬는다거나, 어휘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려서 겪은 경험으로 먼저 말을 꺼내기가 무서웠다고 할까요. 내 말을 잘 들어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해서 내가 말을 할 이유가 있을까?로 연결되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말 하나 하는데 어린애가 뭐 그리 계산하는 게 많았나 싶기도 합니다. 용기를 좀 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는 '말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필요할 때 말하는 사람도 아닌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됐습니다.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는 의견을 밝힐 줄 안다면 후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내 권리가 묵살당해도 말을 하지 않습니다.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속으로 삼킬 뿐이죠. 그런 일이 반복되면 나중에는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늘 그렇지.' 하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해버립니다.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특정 상황에서 스스로 무기력 속으로 집어넣어 버리는 겁니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최근 어떤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생 그래프를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자리였습니다. 제 이야기가 끝나고 다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제 옆에 계신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최대리님은 말을 참 잘하시네요. 재미있게 잘하세요. 어떻게 그렇게 하시나 했더니 대학생 때 그런 경험이 있으셔서 그랬군요.'
대학생 때 이야기를 했는데,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을 도맡아서 했다. 발표 자체가 재미있었고, 프레젠테이션은 이래야 한다는 나만의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과거 이야기는 쏙 뺐습니다. 굳이 알릴 필요가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에요. 대학교에 입학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마주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소개, 과제 회의, 동아리 활동, 프레젠테이션 등 어쩔 수 없이 말을 해야 하는 강제적인 환경이 만들어지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말하는 재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때로는 이야기를 리드하기도 하고, 중간에서 들어주기도 하고 말로 다양한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것도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저 스스로 말을 잘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말을 하긴 하는데 두서없이 말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명확하고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보니 언제나 말을 해야 하는 자리에서 크게 긴장하고 떨었습니다. 들은 사람들도 별 이야기 안 했고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깨질 일이 없었던 것이죠.
모임에서 이런 말을 들으니 새로운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자신감이라 할까요, 말하는 것에 대해서 부담감이 많이 줄은 것입니다. 마음가짐이 바뀌었다고 할까요. 예전이라면 '꼭 내가 해야 하나, 어떻게 말해야 하지, 내가 전하려는 게 잘 전달될까, 이해하지 못해서 다시 물어보면 어떡하지?' 였다면 이후로는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날 보고 있으니 흥분된다, 물어본다면 난 다 대답할 수 있으니까 편하게 하자.'라고 바뀌었습니다.
이런 경험으로 보면 주변에서 말을 해주는 것이 사람의 관점을 한 번에 뒤집어버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 말을 잘 못한다고 생각했던 제가 말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담감이 많이 줄어든 것처럼요. 반대의 경우도 그렇겠습니다. 내가 뭘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서 그거 못한다고 이야기하면 가슴 아픈 것처럼 말입니다.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말을 잘하는 사람입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