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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에디터 Sep 12. 2020

프레임에 대해서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 것을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는 이유

저는 그게 당연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언론이나 미디어 매체에서 보도되는 일을 보면 자극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누가 누구를 죽였다, 경제가 폭락했다, 정치인이 범죄를 저질렀다, 연예인이 마약 했다 등 쉽게 흘려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주로 보도하곤 합니다. 어린 나이서부터 이런 뉴스들을 접하며 자랐는데, 자연스럽게 '세상은 무서운 곳'이라는 이미지가 생겼습니다.        


  

이런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길 가다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경계하게 되었습니다. 순수한 호의에 건네는 작은 도움의 손길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이 나한테 뭘 원해서 이러는 걸까? 나를 해코지하려고 이러는 것 아닐까?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않고 원하는 것이 있으므로 이렇게 접근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진실이었든 아니었든 말입니다.          



어린 나이에 형성된 이미지는 나이가 들어서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심화되었습니다. 중, 고등학생 때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친구가 아닌 경쟁자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옆 사람보다 우월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에 빠져버렸습니다. 정말로 경쟁자로 생각하기 싫었던 마음이 가는 몇몇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어디를 가던 제게 들리는 말은 '경쟁'에 대한 것뿐이었으니까요.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밟힌다. 그게 고등학생 때의 기억입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해도 나에 대한 평가는 점수로 매겨졌습니다. 사람을 점수가 아닌 사람 자체로 바라보는 방법을 배우기 전까지 제게 세상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저는 그게 당연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프레임     



프레임은 액자의 '틀'입니다. 틀 안쪽으로 그림이 들어가 있습니다. 틀의 존재로 그림을 보는 사람의 시야는 틀을 벗어나지 않고 온전히 그림에만 머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틀의 역할입니다. 보통 단어의 뜻이 그렇고, 이를 사회 현상을 나타내는 용어로 해석하면 역할은 동일하나 보는 대상이 달라집니다. 이 차원에서의 틀은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을 그림으로 담고 있습니다. 틀 밖의 세상을 볼 수 없도록 우리의 시선을 틀 안으로만 제한하는 것입니다.

위험하면서도 효율적입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기 싫은 것은 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틀 즉 프레임 속에 있는 것만 보면 되니까요. 언론매체에서 보도하는 사건은 언론매체가 만든 프레임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프레임 밖의 일은 알 수 없습니다. 보여주지 않을 뿐더러 프레임 밖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정보를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미디어를 접하는 사람이 프레임 밖을 보지 않길 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요.    


      

프레임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내가 스스로 프레임을 씌우거나, 주변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프레임을 만듭니다. 예를 들면 뉴스에서 'A는 절도라는 범죄를 저질렀으니 극악무도한 범죄자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A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정보임에도 단순하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뉴스니까 A는 나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앞, 뒤 정보를 생략하고 뉴스 속 말만 듣고 그렇게 평가합니다.    

 

오보라고 하지요. 사실과 다른 보도를 부르는 이름입니다. 오보로 인해 안타까운 일을 겪는 사람이 없지 않았습니다. 마녀사냥의 희생자라고도 합니다. 조사 결과 범죄와는 관련이 없는 청렴결백한 사람임에도 이미 '범죄자'라는 프레임을 씐 사람은 과거와 같은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범죄자의 이미지와 사회적으로 인식하는 범죄자의 이미지가 뒤섞여 만들어진 프레임을 거스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예시로 범죄를 들었기 때문에 자극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형성된 프레임은 우리 일상 곳곳에 존재합니다. 우리가 자의적으로 씌운 프레임도 있을 것이고 사회적으로 씌우는 프레임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학생은 단정해야 한다던가, 온라인 게임은 유해하다던가, 대기업에 취직해야 성공한 인생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당연한 것을 향한 도전     


물론 명확한 사실을 근거로 해서 형성되는 프레임은 반박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 자체로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경우는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과연 이 이야기가 사실을 근거로 하고 있는가, 보이지 않는 부분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가 등,  프레임을 벗어나기 위한 생각을 해야 합니다. 모르면 휘둘리는 게 세상사라고, 생각하고 분석하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유튜브에서 자동차 사고 관련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A라는 사고 피해자라 주장하는 사람이 올린 영상이었는데, 누가 봐도 명백하게 영상을 근거로 보면 피해자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며칠 뒤에 해당 영상에 반박하는 또 다른 사고 피해자라 주장하는 B라는 사람이 올린 영상을 봤는데, 이 영상에서는 이전 영상을 올린 A가 100% 잘못한 경우였습니다. 이렇듯 내가 불리한 상황에도 나에게 유리하게 조작하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피해자라는 프레임을 씌우도록' 만듭니다. 아마 반박 영상이 없었다면 그대로 피해자가 되었겠지요.     


이후로 어떤 일에 대해서 생각하고 판단할 경우가 있다면 내가 프레임에 갇혀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지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일에 대해서요. 뉴스를 보면서, 시사 관련 글을 보면서 이 배경에는 무슨 이야기가 있을까, 이 사람들이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읽게 되었습니다. 중립을 유지한다고 하지요. 무작정 의견을 따르는 것이 아닌 반대편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한다는 주의로 변한 것입니다.     


내게는 '어떤 프레임이 있는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는 게 어떨까 합니다. 생각하다 보면 어떤 분야에 있어서는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제게는 어렸을 적부터 이어져온 사람에 대한 평가가 점수에서 사람 그 자체로 바뀌었던 것처럼요. 생각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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