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안다고 다른 사람이 알까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던 중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보였는데, 이 아이도 눈 검사를 하기 위해 산동액을 맞아야 했나 봅니다.
산동액은 인공눈물처럼 눈에 직접적으로 약물을 떨어뜨립니다. 그 후 동공이 확장하길 기다려야 하는데요.
간호사가 하는 말이 아이에게는 너무 무서웠나 봅니다.
"이 약은 눈에 동공을 확장시키는 약이야.
맞은 후엔 눈 비비면 안 되고 눈이 많이 부실 수 있어. 몇 시간 지나면 다시 괜찮아지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동공이 확장되고 눈 간지러워도 비비면 안 되고 눈이 많이 부시다고 그러고..
산동액이 뭔지 아는 우리는, 그리고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은 어른들은 그런가 보다 하고 별 걱정 없이 약을 눈에 넣지요. 그런데 아이는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공이 확장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까요. 눈이 많이 부시다는데 많이 부시다는 건 얼마나 부신 걸까요.
게다가 눈에 알지도 못하는 약물을 넣는다니요. 산동액을 넣은 이후의 느낌을 모르는 아이라면, 약을 모르는 아이라면 공포에 질릴만합니다. 결국 울음을 터뜨립니다. 산동액 맞기 싫다고요.
간호사와 아이 어머니가 놀라고 당황합니다. 이게 그렇게 울 일인가 싶었나 봐요. '이 약 아픈 거 아니야.'라며 연신 아이를 달래 보지만.. 이미 공포에 질린 아이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어오지 않았겠지요.
아이 어머니는 크게 우는 아이를 진정시키고 달래 줄 생각이었는지 아이를 데리고 대기실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제 어머니께서 진료를 끝내고 나오실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궁금합니다. 진료를 잘 마칠 수 있었을까요?
안타까웠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당연히 상대도 알지 않을까 단정 짓곤 합니다. 그래서 소통에 문제가 생기곤 하지요. 예를 들면, 이런 경우입니다.
회사 베테랑 A가 신입 B에게 노트북을 분해하는 방법에 대해 교육하고 있습니다. A는 경력 10년 차의 베테랑입니다. A가 분해 순서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평소 A가 익숙하고 정답이라 생각하는 방법으로 알려줍니다. 어떤 순서로 하고 뭘 조심해야 하고 어떻게 분해, 조립해야 하는지 막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신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B의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이렇게 답합니다.
"그래서 저 공구 이름이 뭔가요?"
당황스럽지요. 잘 알고 있고 익숙한 게 오히려 함정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이해를 못합니다. 병원에서 만약 간호사가 아이의 입장에 서서 이렇게 얘기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을 하게 될 거야. 이건 눈에 뿌리는 약인데, 이걸 넣으면 세상이 눈부실 정도로 밝게 보인단다. 눈이 하나도 아프지 않은데 그렇게 보여. 신기하지? 그런데 조심해야 할 게 하나 있어. 너무 눈이 부시다고 눈을 손으로 비비면 안 돼. 눈을 비비면 더 눈부셔져서 눈이 아플 수도 있거든. 그것만 조심하면 몇 시간 동안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을 할 수 있단다."
약에 대한 선입견(아프다, 맛없다, 이상하다)을 재밌고 신기한 경험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약효가 있는 동안 눈을 비비면 안 되는 이유를 왜 하면 안 되는지 이유를 알려줌으로 아이가 이유를 납득하도록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프거나 불편한 일이 아닌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으로 인식하게 함으로 아이의 공포심을 훨씬 낮출 수 있지 않을까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만 현실에 적용시키기엔 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병원에서 근무하시는 간호사분들이 워낙 바쁘시고 정신없이 일하시다 보니 한 명 한 명에게 이렇게 챙겨주기가 어렵다는 걸 진료를 기다리는 2시간 동안 지켜봤기 때문입니다.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요.
진료가 끝나고 병원을 나오면서 이 이야기는 꼭 쓰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혹시 일상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고 계시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