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교육에서 시작된 ‘정량화’ 실험 feat. 중경삼림
키워드:
사랑의 유효기간, 정량화, 문제정의, 데이터 교육, 중경삼림, 관계 만족도, 감정 데이터, 데이터 리터러시
연인 간 사랑은 아래 문장으로 이별을 예감한다.
“예전 같지 않아.”
“마음이 식었어.”
“이제 아닌 것 같아.”
정확히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말하지 못하면서,
달라졌다는 감각만은 분명해서 위 문장들 주변을 맴돈다.
그럴 때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감정에 날짜가 적혀 있는 영화 한 장면을 떠올린다.
왕가위의 〈중경삼림〉
실연한 경찰 223은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 모은다.
그것도 유통기한이 ‘5월 1일’인 것만.
그날은 그가 헤어진 뒤 한 달이 되는 날이고,
그가 스스로 정해둔 “기다림의 마감일”이다.
영화는 이렇게 속삭인다.
“만약 기억이 통조림이라면, 유통기한이 없는 통조림이면 좋겠다. 하지만 날짜를 꼭 적어야 한다면… 1만 년으로 하고 싶다.”
"如果記憶係一個罐頭嘅話,我希望呢個罐頭唔會過期。如果一定要加一個日子嘅話,我希望係……一萬年。"
누군가는 이 장면을 낭만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유치하다 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그는 낭만을 붙잡는 게 아니라,
상처를 ‘관리’하고 있다.
끝나버린 사랑을 견디기 위해,
그는 사랑에 날짜를 붙인다.
그리고 그 순간,
감정은 아주 이상하게도 ‘다룰 수 있는 것’이 된다.
오늘 이 글은 그 질문에서 시작한다.
사랑도… 정량화할 수 있을까.
데이터 분석을 배울 때
가장 먼저 듣는 이야기는 비슷하다.
문제정의.
구체화.
정량화.
“매출이 떨어졌다”는 말은 “전년 동기 대비 15% 감소”가 될 때 비로소 논의가 가능해진다.
“고객 만족이 낮다”는 말도 “NPS가 25에서 15로 내려갔다”가 되면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수업 중 머릿속에서 조심스럽게 생각 하나가 떠오른다.
“모든 걸 정량화할 수 있나?
예를 들면… 사랑 같은 것도?”
그 질문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사랑은 숫자가 아닌데.
사랑은 합리적이지 않은데.
사랑은 측정하려는 순간
가장 중요한 걸 놓쳐버릴 것 같은데
그런데 〈중경삼림〉을 떠올리면,
어쩐지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사랑을 ‘측정’하려고 숫자를 붙이는 게 아니라,
사랑을 ‘견디기’ 위해 기준을 만든다.
‘유효기간’이라고 하면
우리는 자꾸 끝을 떠올린다.
언제까지.
몇 년까지.
어느 날 딱 끊기듯이.
하지만 사랑에서 유효기간은
어쩌면 끝나는 날짜라기보다,
형태가 바뀌는 순간에 더 가깝다.
설렘이 편안함으로 바뀌는 때,
기대가 현실로 바뀌는 때,
감정이 행동으로 번역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버리는 그 시간
정량화는 그 변화를 ‘단정’ 하기 위한 게 아니라,
그 변화를 ‘보이게’ 한다.
정량화는 감정을 깎아내리는 작업이 아니라
오히려 감정에 말할 수 있는 형태를 주는 일이다.
(1) 감정 강도(Intensity)는 임시 언어
아주 거칠게,
사랑을 0에서 10까지로 가정해 보자.
초기(0~1년)는 9~10점.
적응기(2~5년)는 6~8점.
재구성기(5년+)는 4~7점.
위에서 숫자들만 보일 수 있지만 숫자 그 크기의 의미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질문이 있다.
“9점과 4점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묻는 순간
(2) 감정은 애매하지만, 행동은 남는다
감정은 흔들리지만 행동은 기록된다.
연락의 빈도.
대화의 시간.
만나는 횟수.
애정 표현의 방식.
갈등의 빈도와 화해까지 걸리는 시간.
함께 결정을 내린 횟수.
사랑이란 결국
어떤 마음이 아니라
어떤 생활이기도 하니까.
“요즘 이상해”라는 문장을
“연락이 주 6회에서 주 2회로 줄었어”로 바꾸는 순간,
상대와 나는 같은 지도를 보게 된다.
정량화는 그 지도를 펼치는 일에 가깝다.
사랑을 한 순간의 점수로만 보면 자주 오해한다.
사랑은 늘 변한다.
문제는 변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변화를 어떻게 다루느냐이다.
처음 6개월은 급상승한다.
1~2년쯤 현실이 들어오며 흔들린다.
3~5년은 안정이 되기도, 권태가 되기도 한다.
5년 이후에는 대개 갈라진다.
재구성하거나, 소진되거나.
그러니까 유효기간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
“여기서 다시 선택”에 더 가깝다.
〈중경삼림〉의 통조림은
사랑의 은유이면서 동시에 기록이다.
헤어진 지 한 달.
그 한 달을 ‘5월 1일’로 고정해 버리는 행위.
그는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무한히는 못 한다.
그러니 여기까지다.
그 마감일이 잔인한 이유는,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현실성이 사람을 살린다.
끝을 정하지 못하면 감정은 끝없이 늘어진다.
끝을 정하는 순간 감정은 비로소 정리될 가능성을 얻는다.
정량화는 종종 그렇게 작동한다.
정답을 주는 게 아니라, 정리를 시작하게 한다.
정량화는 모든 걸 해결하지 않는다.
사랑을 숫자로 완벽히 설명할 수도 없다.
하지만 정량화가 없으면
우리는 늘 “느낌”으로만 싸운다.
너는 변했어.
아니, 네가 변했지.
그건 네 생각이야.
그건 내 마음이야.
정량화는 그 싸움을 멈추게 하진 못해도,
적어도 같은 질문을 하게 만든다.
무엇이 달라졌지?
언제부터였지?
어떤 행동이 바뀌었지?
그 변화를 우리는 받아들일 건지,
아니면 다시 만들 건지.
정리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정량화는 감정을 숫자로 축소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다룰 수 있는 형태’로 번역하는 작업이다.
1)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유효기간’은 언제인가?
(몇 달, 몇 년, 혹은 특정한 사건 이후)
2) 그 유효기간은 어떤 변화로 느껴졌나?
(연락, 대화, 만남, 표현, 갈등, 미래 이야기…)
3) 만약 당신의 기억에도 날짜를 적어야 한다면,
어떤 숫자를 적고 싶나?
혹시… 1만 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