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나스크 Dec 05. 2022

낮잠시간에 열리는 프랑스 자수 교실

나를 살린 취미

 남편의 유학이 결정되고 바로 생각난 것은 ‘무엇을 배워야 할까?’였다. 남편이 과제와 논문 등으로 바쁠 때 혼자 할 수 있는 그런 취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대일 운동은 비싸다고 하니 필라테스를 좀 더 배워볼까?'

  '가서 주눅 들지 않게 영어공부를 더 해야 하나?'

등등 실용적인 생각들이 많이 떠올랐지만 지금까지 해 본 적 없는 재미있는 뭔가를 찾아 이리저리 탐색하던 중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에도 최고의 아이콘인 이효리의 취미가 나의 눈에 띄었다. 당시 이효리는 이상순과 결혼한 지 얼마 안돼 제주도로 내려가 대중과는 멀어진 삶을 살고 있었다. 그녀는 종종 블로그로 자신의 일상을 올리며 소식을 전하곤 했는데 그때 그녀의 새로운 취미가 프랑스 자수였다. 볼드하고 과감한 스티치의 익살스러운 자수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내가 알고 있던 자수와 프랑스 자수는 달랐다. 다양하고 자유로웠다. 그려진 모든 것이 자수가 될 수 있었다.    


이효리의 프랑스 자수

 

  

 나는 다짜고짜 퇴근 후 들을 수 있는 자수 수업을 찾아내 신청했다. 가정 시간에 배웠던 박음질 같은 심심한 기법이 아닌 재미있는 여러 스티치를 배웠다. 같은 도안과 기법을 배워도 놓는 사람이 선택한 실의 가닥 수와 색깔, 그리고 각각의 손맛에 따라 전혀 다른 자수가 되었다. 간격이 균일한 꼼꼼한 스티치. 삐뚤빼뚤 해도 개성이 넘치는 스티치. 모노톤의 단조로운 색을 사용하는 사람. 알록달록 스티치마다 모두 다른 색의 실을 사용하는 사람.  프랑스 자수는 같지만 모두 달랐다. 6개월 동안 프랑스 자수를 배웠다. 계속 반복되는 스티치들은 제법 모양새가 났고 새로운 스티치를 배우는 손도 빨라졌다. 자수를 배우며 한국을 떠나기 전, 고마운 가족과 친구들에게 내가 직접 수를 놓은 물건들을 선물했다. 에코백, 파우치, 손수건 등등. 선물을 받는 사람을 생각하며 놓는 한 땀 한 땀이 즐거웠다.





 

 프랑스 자수는 유학생활 동안에도 나에게 재미난 소일거리가 되어주었다. 남편이 논문으로 정신없이 바쁠 때 식탁 가득 이런저런 천과 실을 어질러 놓고 자수를 놓았다. 아이를 임신하고 태교로 자수를 놓았고,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우리 집 대문에 걸을 작은 액자를 만들었다. 돌이 될 즈음에는 돌잡이에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가 어려워 또 자수를 놓았다. 이렇게 저렇게 배워 온 자수를 참 요긴하게 잘 써먹었다.  만든 자수는 종종 인스타에 그 과정이나 결과물을 피드로 올렸다. 하루는 친구 하나가 자수를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직접 자수를 배우고 싶다는 친구들을 모아 볼 테니 클래스를 열어달라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우리 집에서 아이의 낮잠 시간에 프랑스 자수 교실이 열렸다. 매달, 그달의 행사나 미국 문화에 맞는 주제로 자수를 놓았다. 할로윈, 땡스기빙, 크리스마스 등등. 내가 준비한 도안과 스티치를 알려주면 집에서 숙제로 자신만의 스티치 북을 만드는 것이 자수 교실의 프로젝트였다. 멕시코, 인도, 일본, 중국. 다른 나라에서 남편을 위해 먼 미국까지 날아온 유학생 아내들이 겪는 공통적인 어려움은 미국 생활의 지루함이었다. 자수 교실이 열리는 동안 우리는 각자의 모습으로 돌아가 반짝거릴 뿐이었다. 손으로는 수를 놓고 입으로는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지루할 틈도 없이 2시간은 번개처럼 흘러가 버렸다. 내가 자수를 알려주니 친구들은 그에 대한 답례로 직접 만든 디저트나 과일, 주전부리 등을 준비해 주었다. 친구들은 뭘 가지고 와서 함께 나누어 먹을까 고민하는 것도 즐거움이라고 했다. 자수를 놓는 동안은 집안일이나 육아같은 잡생각도 사라지고 온전히 집중 할 수 있는 힐링의 시간이었다.




친구들의 스티치북




 6개월을 만나 함께 자수를 놓고 2명의 친구들이 에반스톤을 떠나는 날이 정해졌다. 자수 교실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성공적인 자수 교실의 마무리를 축하하며 파티를 열었다. 서로의 스티치 북을 보며 놀라고 감탄하고 즐거워하며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나와 같이 아이를 위한 태교로 스티치 북을 만든 미키와 미미. 파스텔톤으로 우아한 스티치 북을 만든 아름. 운동과 살림을 병행하면서도 바쁘지만 끝까지 노력한 하나. 서로 다른 우리가 6개월 동안 의지하고 소통하며 만들어낸 작품들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뭉클한 무엇이었다. 추운 겨울비와 눈바람이 내리는 날에도 시간에 맞춰 우리 집에 방문해준 친구들. 혼자 육아를 하면서 지쳤던 마음도 친구들을 만나 자수를 놓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심심하지 말자고 배운 작은 취미 하나가 나와 친구들을 연대시켜주고 서로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만들어 준 것에 몹시 기뻤다.     







 나는 지금도 가끔 자수를 놓는다. 한 땀 한 땀 놓으며 옛날 추억에 빠지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모두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 살고 있다. 친구의 인스타에 올라온 사진 속에서 그때 만든 자수가 액자가 되어있는 걸 보았다. 그때 내가 그녀들과 만든 추억도 내 마음속 한 곳에 반짝이는 액자로 걸려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