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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스크 Dec 12. 2022

에반스톤? 헤븐스톤!

너는 천국에서 왔단다.

 남편이 열심히 미국 대학원 지원을 시작했을 때 일이다. 이곳저곳 남편이 갈 수 있는 곳은 샅샅이 찾아 열심히 지원 메일을 보냈더랬다.  그렇게 수 백통의 메일이 미국 전역에 퍼져나갔고 그중 몇몇 곳에서 긍정적인 사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칼자루는 이제 우리에게 쥐어진 셈이었다. 어디를 가야 할까?     

 

 남편이 원하는 학교의 간판과 연구실도 중요했지만 나의 일상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5년 또는 그 이상 지내야 할 곳인데 이름 모를 시골 한구석은 아무래도 '심심한 건 절대 싫어!!'를 달며 사는 나에겐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 될 테니까. 어디든 불러만 주는 곳이 있으면 쩌어기 산골짝에도 가겠노라 다짐했던 마음은 이미 온데간데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 이름 이쁘다.’

 ‘뭔데?’

 ‘에반스톤.’

 ‘거기로 가!’     



노스웨스턴 대학교 캠퍼스



 살게 될 도시의 이름이 이쁘다는 이유로 결정된 건 아니지만, 우린 정말 에반스톤에 가게 되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김칫국 마시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상했다. 듣자마자 끌렸다. 그곳에 살게 될 것 같았다. 남편에게는 말하지 않고 에반스톤이라는 도시에 대해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 치안은 좋은지, 맛집은 어디인지, 관광할 곳이 있는지, 교통은? 시키지 않아도 하나부터 열까지 열심히 공부했다. 나중에 남편이 최종 합격을 하고 내게 알려줬을 때 나는 에반스톤에 대해 낱낱이 브리핑할 수 있었다. 남편은 그저 웃었다.    



  



여름의 미시건 호수


“헤븐스톤”

 에반스톤에서 만난 친구들과 내가, 그리고 에반스톤에 살고 있는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부르는 말이다. 천국 같은 에반스톤. 내가 사랑하는 도시에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대도시인 시카고와 3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어 언제든 시카고를 탐닉할 수 있다. 대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도시라 전 세계에서 온 젊은이들이 넘치고 거리는 항상 활기로 가득하다. 미국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은퇴 후 살고 싶은 도시 10위 안에 들었다고 한다. 그 명성에 걸맞게 도시는 아늑하고 정감 있고 포근하다.      


 에반스톤에서 보낸 6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남편의 유학생활 뒷바라지와 끝이 보이지 않는 독박 육아의 덫에 사로잡혔을 때. 가끔은 막막하고 주체할 수 없는 화가 울컥 치밀어 오를 때도 나를 다독여준 건 에반스톤이었다. 그저 골목골목 여기저기를 활개 치며 걸어 다니면 매일 보는 상점도 매일 보는 바다보다 더 넓은 미시간 호수도 그저 나에게 '괜찮아. 이것도 다 지나가는 일이야.'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에반스톤 살면서 2번의 이사를 했고, 센트럴 에반스톤, 노스 에반스톤 그리고 사우스 에반스톤까지 모든 지역에서 살아봤다. 작은 도시이긴 하지만 동네마다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하루에 빠질 수 없는 일과로 아이와의 산책이 있었다. 봄이면 꽃구경. 여름이면 미시간 호수에서 수영.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물든 단풍구경. 겨울이면 눈이 와서 바깥 구경. 에반스톤의 모든 계절 구석구석에 나와 내 아이의 유모차가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에반스톤의 가을


 에반스톤은 노숙자와도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이곳에 처음 오고 방문한 어느 마트 앞에 자메이카 느낌이 물씬한 니트 모자를 쓰고 긴 레게머리를 늘어뜨린 할아버지가 계셨다.


‘It’s a lovely night. lady and gentleman. Have a wonderful night.‘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였다. 마트에 갈 때마다 할아버지를 만났고 나누는 인사가 꽤 익숙해질 무렵 언젠가부터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추운 늦겨울에 보이지 않아서 내심 걱정이 됐던 걸까? 에반스톤에 온 지 얼마 안 된 나도 할아버지의 부재를 알아챈 무렵, 마트에 간 또 다른 어느 날 다시 할아버지를 만났다.


‘Yo man!!!! Where have you been??????? I missed you!!!!!!!!’


 할아버지를 기다린 건 나만이 아니었나 보다. 격앙되고 반가운 목소리로 다가와 악수와 포옹을 나누는 한 아저씨가 있었다. 둘의 대화를 엿듣고 싶었지만 얼른 장을 봐야 했기에 미소만 머금은 채 마트 안으로 향했다.



     



에반스톤의 겨울


 미국을 다녀온 사람들은 동부 사람들은 쌀쌀맞다고 한다. 서부 사람들은 가식적이라고 한다. 나는 에반스톤 사람들을 다정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심히 지나치기보단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게 더 익숙하고, 아이와 나선 산책길에선 모두에게 환영받는 느낌이었던 에반스톤.     


 에반스톤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말하곤 한다. 네가 태어난 곳은 정말 따듯한 곳이었다고. 너는 천국에서 온 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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