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의 설렘과 두려움

마냥 좋고 마냥 싫은 건 없어

갑자기 다짐을 해본다. 오늘부터 100일. 혼자서 글쓰기를 해보자고. 이런저런 이유로 글 쓰기를 미뤄왔다.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시작'이란 것을 하지 않으면 이래저래 흐지부지 해질 것 같다. 누군가에게 "나 오늘부터 100일 동안 매일 글 쓸 거야!"라고 말하기엔 뻔뻔함이 제법 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말할 누군가도 없고, 남들은 나에게 큰 관심도 없다.

시작이라는 말에는 설렘과 두려움이 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내 시작이 비록 미미하나 끝은 창대할 것 같은 설렘이 있다. 그리고 두려움이 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100일 글쓰기로 내 인생이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두려움. 100일의 노력으로 인생이 바뀐다면 세상에 괴로운 인생이 어디 있을까? 있다면 환생보다 더한 치트키가 아닐까?

어쨌든 100일이라는 날짜는 세야겠으므로 카카오톡의 D-day 계산기를 켰다. 오늘부터 1일.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첫 번째 글. 100일의 다짐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나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어느 날 하루 피곤하다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글쓰기를 미루고 싶은 날이 또 문득 찾아오지는 않을까? 그랬을 때 내가 기만하는 대상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이 또 두렵다.

더 이상의 변명도 이유도 없다. 오늘 12시가 가기 전에 나는 글을 발행할 것이고, 100일 중에 첫 번째 약속을 지킨다. 글의 길이도, 목적도, 소재도 지금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글을 써야 할 이유. 쓰지 않아야 할 이유. 못 쓰는 이유. 이름을 붙이자면 키보드 위를 뚱땅거릴 내 손가락을 막을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쓰고 싶었으니까.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었서 열심히 써 내려갔던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 보자. 초심으로 돌아가자인가? 그래. 그때는 쓰고 싶었으니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쓸 이야기들이 있었으니까. 생각보다 긴 시간이 지나고 쓰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약간은 희미해진 것 같은 지금. 그래서 멈춰야 할까?

생각해 보면 누가 쓰라고 하지도 않았으니까 오히려 좋다. 부담이 없다.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욕할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의 비밀스러운 글쓰기 프로젝트라고 생각하니 스릴도 있다. 수많은 시작이 있었고 끝은 없었다. 허무맹랑한 시작과 김 빠지고 어정쩡한 중간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다. 이 찝찝함은 아마도 내가 글을 쓰지 않는 동안 계속해서 나를 추궁하고 내가 나를 미워할 거리를 줄 것 같다.

카카오톡 D-day 설정에 제목을 입력해야 했다. "Nike"라고 썼다. "그냥 해버리자"라는 마음을 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