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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부터 쑥버무리까지

봄이니까 누릴 수 있는

by 나나스크



봄을 느끼게 해주는 것들은 많다. 큰 온도차가 아니어도 확실히 봄바람과 겨울바람은 결이 다르다. 그러다 감기에 걸릴지언정 봄이 왔다는 생각이 들면 이상하게 겨울에 줄곧 입어왔던 외투가 특히 더 무겁게 느껴진다.

작년 이맘때는 이미 벚꽃이 지고 초록 순이 한창 나올 때였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 봄을 알려주는 꽃들이 하나 둘 피기 시작할 즈음부터 내 나름의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예쁜 꽃들은 언제 보아도 예쁘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만개했을 때 그 아름다움과 기쁨은 배가 된다. 겨우내 조용했던 사진첩이 이 꽃 저 꽃과 하늘 사진 초록초록 새잎 사진으로 한층 밝아진다.


그리고 또 나에게 봄을 알려주는 귀한 손님은 다름 아닌 쑥이다. 엄마와 함께 살 때만 해도 봄에 먹는 쑥이 이렇게나 귀한 줄 몰랐다. 늦봄이 되면 크기도 크기지만 질겨지기 때문에 야들야들한 새순만 골라서 어느 정도 먹을 만큼 따려면 엄마는 시골 동네 들판에서 한나절은 꼬박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귀한 쑥으로 만들어 주신 버무리며 쑥 개떡이며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쑥국은 나에게 봄을 알려주는 의식 같은 것이었다. 된장풀은 물에 쑥이 들어가면 쑥 특유의 향과 된장이 한데 어우러져 서로에게 최상의 맛을 일깨우는 것 같다. 냉이된장국의 향도 좋지만 나에게는 단연 쑥이 으뜸이다.

주부가 되어 매일 무얼 해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게 아주 큰 일이구나를 알게 되고 나서야 매번 봄이면 엄마가 해주시던 제철 음식들이 모두 다 엄마의 사랑이었구나 하고 실감한다. 사랑이라는 것이 꼭 입을 달싹이며 "사랑해"라고 말해야만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지금은 아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뽀뽀를 해대며 스스럼없이 사랑해라는 말을 하는 나도. 당연한 듯 자고 일어나면 제일 먼저 엄마 품들 찾는 너에게도.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그 말 한마디가 쉽게 떨어지지 않을 날이 올 수가 있으니.


그런 날이 온다면 나도 다른 다정한 방법으로 너에게 사랑을 전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면 제법 센티해지곤 한다. 하지만 괜찮다. 아이도 크고 나면 알게 될 테니까.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 놓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벚꽃길을 따라 걸었다. 1시간 30분. 꽤 여유로운 시간이라 쫓기지 않고, 네이버 지도를 켜지 않고 눈에 보이는 길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언제나 길을 잃는 내가 절대 길을 잃지 않는 법이다. 가려던 곳이 없으면 잃을 길도 없다. 내가 걷는 길이 내가 가는 곳이니까.


올해 봄에는 벚꽃이 좀 늦는가 싶었는데 언제 이렇게 피었는지 역시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조금 늑장을 부리면 이미 초록 새잎이 돋아나버리고 벚꽃 잎은 길바닥에서나 볼 수 있다. 같이 걷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았으련만 아쉽게도 혼자다. 그래도 씩씩하게 이길 따라 저길 따라 여기저기 걸었다. 이제 그만 돌아가 볼까 하면 또 다른 큰 나무들이 보이고 이만큼만 봐야지 하면 어김없이 더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30분 산책길이 1시간이 되는 게 이렇게나 쉽다.

즐거웠던 꽃놀이도 한 시간의 산책으로 발걸음이 조금씩 무거워질 때쯤, 어디선가 익숙한 이름의 간판이 눈에 띈다.


'대박쑥떡'


긴 산책으로 배도 고프고 내일 아침에 먹을 것도 마땅치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발걸음이 벌써 떡집을 향하고 있다. 문이 좀 뻑뻑해서 쉽게 열리지 않아 문이 닫힌 건가 싶었다가 한번 다시 힘을 주니 열린다. 다행이다. 나는 오늘 쑥떡을 먹을 운명이구나. 그런데 이게 웬일. 횡재다! 쑥떡만 바라보고 온 내 눈에 '쑥버무리'가 들어왔다. 요즘 식단을 하느라 저녁에 탄수화물은 자제하는 중인데 어쩔 수 없다.

매번 먹는 것도 아니고 오늘 하루 운 좋게 만난 쑥버무리니까! 언젠가 봄이 오기 전에 아이에게 쑥 버무리를 먹여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오늘에야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저녁은 봄에만 부릴 수 있는 사치를 부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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