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타코 부숑 새우부리또

이곳에서만큼은 따꼬보다 부리또

by 나나스크



외식을 해야 할 때마다 뭘 먹을까? 고민이 깊다. 저녁 시간이 되기 전까지 각자 외식메뉴를 골라보자고 한다. 예전에는 이런저런 후보군들이 제법 있었는데 날이 갈수록 메뉴 선택 하나가 참 버겁다. 그 맛이 그 맛이고, 그 집이 그 집인 듯하다. 그러다 문득 " 오! 오랜만에 OO 어때?" " 좋지!! 말해 뭐 해?" 더 이상 메뉴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어 좋고 그 맛을 떠올리며 총총 발걸음을 옮긴다.


아는 맛이라 무섭다. 그 맛을 알아서 자꾸 생각이 난다. 맛있게 먹고 잠시 잊고 살다가 종종 재방문하는 집들이 있다. 주기적으로 입에 넣어줘야 하는 맛이다. 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입에 넣어주고 싶은 맛이다. 어디에선가 먹어본 맛 같은데 막상 그 집이 아니면 뭔가 좀 아쉬운 그런 맛.


인스타그램 아카이브에서 3년 전 오늘의 사진을 보여준다. 잊고 있던 과거를 떠올리며 잠시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이게 벌써 3년 전이라니 놀라기도 한다. 오늘의 인스타그램이 불러일으킨 나의 주기적으로 먹어줘야 하는 맛은 '새우부리또'다.

나는 부리또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일단 양이 많고 먹기가 불편하다. 한 입에 쏙 들어오지 않는 크기에 먹을 때 결국 지저분해지고 여기저기 흘리기 쉽다. 먹다 보면 마지막 부분에는 수건처럼 접힌 토르티야만 남아 버리기도 먹어버리기도 애매하다. 먹기 힘든 건 매마찬가지이지만 나는 타코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즐겨 먹는 새우부리또. 같은 메뉴로 새우타코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부리또가 훨씬 맛있다. 타코에는 들어가지 않는 밥이 있어야 한다. 다른 부리또에 들어가는 재료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소스가 맛이 있다. 불맛 나게 구워진 새우와 뭔가 달큼하고 크리미 한 하얀 소스와 양상추 그리고 밥의 조화가 아름답다. 입안 크게 베어 물고 씹는 내내 어디선가 맛본 것 같은데 알 수가 없는 알쏭달쏭한 맛이 입안을 감돈다. 마요네즈는 아니다. 마요네즈 보다 훨씬 가볍다. 랜치 소스도 아닌 것 같다. 랜치의 상큼함과는 조금 다른 시원한 느낌도 있다.

부리또를 싸는 요령이 좋은 건지 소스를 넉넉히 발라서인지 또띠아만 남아 해치워 버린다는 생각 없이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다 먹고 나서도 느끼하지 않고 상큼함이 유지된다. 부리또의 크기가 꽤 크기 때문에 절반은 부리또 자체의 맛을 그대로 음미하고 나머지 반은 이 식당에서 주능 3가지 특제 소스를 응용해 여러 가지 맛으로 변주를 줘도 좋다.


대부분의 멕시코 음식점은 자기 가게만의 소스를 따로 통에 담아 제공하는데 각각의 소스가 맛이 다 다르고 모든 메뉴와 한데 잘 어우러진다. 어떤 날은 시작부터 이런저런 소스를 뿌려 먹어 다양한 맛의 시도를 했다가 마지막에는 새우부리또 본연의 맛을 느끼며 마무리를 하기도 한다.


이 집의 유일한 단점은 집에서 멀다는 것 하나였다. 편도로 30분 이상. 그날 트래픽 상황에 따라왔다 갔다 적어도 1시간 이상은 차에서 보내야 한다는 점이었다. 주변에 방문할 만한 다른 장소가도 없이 굉장히 엉뚱한? 곳에 위치한 느낌이었는데, 그 지역의 치안이 그렇게 좋지 않아 새우부리또가 먹고 싶다고 바로바로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래서 종종 새우부리또 먹는 날을 미리 정해 계획적인 방문을 하곤 했다.



새우부리또를 먹는 날은 하루 종일 든든했다. 더 이상 메뉴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얼른 그 맛을 맛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차가 막힐걸 우려해 일찍 남편을 픽업해 따꼬집까지 일사천리로 먹플랜을 실행한다. 우리가 먹어보지 못한 수많은 메뉴들이 있었고 그 메뉴들이 다 맛있을 거라는 위험부담이 있었지만 우리의 선택은 언제나 새우부리또 였다. 먹고 나면 다른 메뉴를 선택하지 않아서 생기게 될 기회비용 따위는 꽉 틀어막는 맛. 그래 역시 이 맛이야를 입 밖으로 내게 하는 맛.


늦은 밤 시간 몇 년 전 먹었던 새우부리또의 하얀 소스맛이 입가에 맴도는 것 같다. 종종 이 가게의 존재 유무를 구글 맵에 검색하여 지켜보곤 한다. 언젠가 엘레이에 돌아가는 날 반드시 다시 먹고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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