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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Sep 22. 2015

의외로 괜찮은

서른살이 뭐 어떠한가

2015년 9월 17일의 저녁


퇴근은 했지만 왠지 바로 집에 들어가기 싫은 날, 새 동네로 이사온 후 석달이 지나서야 늘 눈여겨보던 동네 서점에 첫발을 디뎠다.  그곳은 정말 의외로 괜찮았다. 홍대 앞에서나 있을 법한 책의 구성과 분위기, 혼자 찾아도 어색하지 않은 카페 공간, 이런 곳에서는 늘 신경쓰게 되는 배경음악까지.


모처럼 왔으니 나에게 선물을 주자는 핑계로 책을 골랐다. 늘 그렇듯이 갖고 싶은 건 참 많고, 지갑이 허락하는 선택의 폭은 너무 얄팍했기에 나는 몇 번이나 별로 크지도 않은 그 서점을 뱅뱅 돌며 책을 찾았다. 독서에 열중하시느라 눈도 안 마주쳤지만, 나중에는 주인 아저씨에게 왠지 머쓱해질 정도였다.


세 번쯤 서점을 돌고 나니 유독 눈에 띄는 책들이 있었다. 제목에 '서른살'이 들어 가는 것들이었다. 나 역시 20대가 석 달밖에 남지 않은 터라 절로 눈이 갔다. 하지만 그 서른살들의 앞에 붙은 형용사에는 왠지 조금 고개가 갸웃해지는 것이었다. 그 책들에 따르면, 서른살은 우울하고, 불안하고, 방황하며, 심지어 '잔치가 다 끝나 버린', 이른바 '불행해야만' 할 것 같은 나이였다.


글쎄, 어쩌면 세상의 관점에서 나는 그 '우울한 서른살'에 딱 맞는 조건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선망받는 직장이나 직업에 종사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결혼도 안 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정말로 우울하고 불행하냐고 묻는다면 별 고민 없이 아니라고 답할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돈을 아끼면 제법 괜찮은 취미생활을 할 수 있고, 생각과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동료와 친구들이 있으며, 무엇보다 수십 년이나 남은 내 인생에서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 지 늘 기대가 되기 때문이다.


하기야 요즘은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절망'을 이야기한다. 물론 이 많고 많은 절망의 원인은 딱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사려 깊은 고민이 필요한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날 서점에서 느꼈던 괴리감을 떠올려 보면, 어쩌면 우리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절망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젊어야 하고, 아름다워야 하고, 돈이 많아야만 모름지기 '행복할 자격'을 누릴 수 있다고 정해 놓은 암묵적인 '사회의 룰'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자격 미달'이라고 생각하며 미리 절망하는가.  


물론, 대다수의 내 또래는 미디어의 호들갑과는 무관하게 '아무렇지 않은' 서른살을 맞이하고 있다. 따라서 나와 같은 반응은 다소 유난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행불행을 함부로 재단하고 규정하는 것은 무례하다. 의외로 마음에 들었던 그 날의 서점에서 받았던 당혹감을 되새기며, 그런 '무례함'에 지지 않는, 나만의 방식으로 행복할 줄 아는 서른살과 마흔살을 맞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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