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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Sep 26. 2015

소확행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

9월 26일, 추석 연휴 첫 날의 아침식사


인정하기 싫지만 어른이 되는 것을 가장 실감하는 시점은 '세상 일이 마음대로, 심지어 노력한 만큼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때인 듯하다. 물론 이 말은 꿈을 갖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전혀 의미 없다는 뜻이 아니다. '팔자'를 알아보기 위해 사주나 점을 보러 다녀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열심히 꿈꾸고 노력한다고 해서 언제나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지는 않는다는 거다. 어릴 적부터 많은 책과 영화와 교과서와 어른들이 가르쳐왔던 것과는 달리 세상에는 개인의 의지와 노력 밖의 영역도 분명 있다.


최근 얼마간 주변 사람들이 지독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번번히 좌절되는 꿈 앞에 절망하는 모습들을 봤다. 나 역시 수년간에 걸쳐 무언가를 준비했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내 주변에서도 역시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노력했지만 허망하게 수포로 돌아가거나, 심지어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에 비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는데도 엉겁결에 '성공해버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니, 열심히 살았지만 보상은 못 받은 사람들에게는 더한 염장이 없었다.


물론, 고생 끝에 '대박'을 맞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대박은 말 그대로 대박인 만큼 모두에게 오는 기회는 아니다. 수많은 노력하는 사람 중에도 일부에게만 과실이 돌아가는 것이다. 사실 요즘 세상에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하지만 인생에서 정말 '큰 행운'은 드물다. 심지어는 처음 행운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막상 겪어 보니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달라서 불행이 돼 버리는 경우도 많다. 누군가 '삶은 고해'라고 말했듯이, 살아가는 것은 대체로 힘들고 외롭다.


그런데 문득 오늘 아침을 먹으려고 식빵에 치즈를 얹어 굽고, 물을 끓이고, 타닥타닥 계란을 부치고, 커피를 내리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란 거 별 게 아니구나.

우리의 삶을 그럭저럭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미래에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큰 행운'이 아니라, 역시 소소하지만,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이게 행복인지 아닌지도 모를, 그런 일상 속의 작은 행복들이 아닌가 싶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그래서 실질적으로 우리를 살게 만드는, 그런 행복들이다. 오늘 내가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적당히 단촐하게 만든, 좋아하는 것들로 꾸린 아침식사를 만들어 먹으면서 든 그런 종류의 행복감. 연휴를 앞두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고 계획하며 드는 설렘. 길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음악이 나왔을 때의 반가움. 매일 보던 길고양이가 내 손길을 받아주었을 때의 온기.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가 안부를 전해올 때의, 그런 행복들 말이다.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고, 어디다 자랑할만한 것도 아니며, 역사에 남을 것도 아니고, 엄청난 노력과 뼈를 깎는 인내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행복할 수 있는 순간들.


물론 '소확행'이 주는 단말마의 즐거움에만 젖어서 살아가는 것은, 자칫 현실의 문제를 그저 '도피'해 버리는 수동적인 삶의 방식이 될 수도 있다. 애초에 소확행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하루키 아저씨도 샐러리맨처럼 매일 규칙적으로 시간을 지켜 글을 쓰는, 누구보다 성실한 노력파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기도 하고(그의 '나른한' 글들만 보면 의외인 듯하지만, 생각해 보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꾸준한 노력 속에서 탄생했을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원래 '고해'일 수밖에 없는 삶에서 불확실한 큰 행운만을 바라고 사는 것보다는 지금 이 순간, 하루하루를 확실한 행복으로 채우며 삶의 중심을 '미래'가 아닌 '현재'에 맞추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그렇게 살다 보면 또 예상치 못한 좋은 날도 오게 마련이고. 어깨에 힘을 빡 준 사람보다는, 조금 느슨한 사람에게 행운도 더 부담없이 다가오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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