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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초 May 26. 2022

아이한테 늘 진심이지 않기로 했다

나는 생계형 맞벌이입니다 18


맞벌이로 허덕허덕, 그야말로 눈코뜰 새 없이 일과 육아를 반복하다보면 가장 어려운 것은 다름아닌 마인드 컨트롤이다. 특히, 이제 막 떼가 늘기 시작한 두세돌 아이를 보려니 아무리 심호흡을 해도 결국은 폭발을 해 화를 버럭버럭 내다가 아이를 재우고 눈물지으며 참회하기 일쑤였다.


나 역시 우리 세대 많은 어른들처럼, 자라면서 부모님의 조절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들을 접하느라 크고작은 상처를 받았다. 그때야 아이들의 정서에 대해 지금처럼 많은 관심이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물론 나 스스로도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누구보다 싫었다. 나도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너무 많은 고생과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내 신경을 건드릴때마다, 지친 회사일로 녹초가 돼 손가락 하나도 꼼짝할 기운이 없는데 끊임없이 뭔가를 하자고 할 때, 화를 내선 안 될 상황이지만 자꾸 화와 짜증이 날 때 나는 나만의 방법을 맹렬히 찾았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를 항상 '진심'으로 대하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이쯤에서 놀라시는 분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아니,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인 내새끼를 가식으로 대하라니? 이게 말이야 방구야? 그럼 아이와 엄마의 진심어린 소통과 교류를 하지 않는다는 게 아닌가?


물론 안다. 이것은 단지 차선일 뿐이다.

가장 좋은 건 엄마가 '진심'으로 육아를 행복하게 하고, 아이와 노는 것이 늘 신나고 즐겁고, 아이 웃는 얼굴만 봐도 온 몸에서 엔돌핀과 생힘이 팡팡 솟아나서 늘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행복한 웃음으로 아이를 대하는 것일테다.

근데, 정말 애석하게도 난, 육아가 즐겁지 않은 체질이다. 아이가 커가면서 조금씩 할만하다는 느낌은 들지만 일과 병행하면서는 여전히 힘에 부치고, 아이 울음이 달래지지 않거나 무리한 요구를 마구 할 땐, 시간에 쫓길 떈 그야말로 멘붕이 되고 이성을 잃는다.

이럴 때 내가 아이를 '진심'으로 대한다면? 보나마나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거나 성질을 있는대로 내서 안 그래도 '재접근기'를 맞아 혼란스러울 아이를 더욱 공포에 질리게 할 것이다. 애착과 정서에 안 좋을 것은 뻔하다.

부부 사이에서도 통념과 달리 모든 진심을 다 털어놓을 필요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라고 한다.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고 하나하나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단, 사소한 것은 그냥 사소하게 넘기고, 다소 가식(?)일지라도 애정표현을 꾸준히 하는 것이 건강한 부부관계에 더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차선을 택했다. 일단 아이 앞에선, 좋은 엄마를 '연기'라도 해 보는 것으로.


우리 엄마 역시 항상 '상냥한 엄마'이자 육아 체질은 아니었고, 사실 우리 세대가 접한 부모 세대는 대부분 아이들 정서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탓인지 아쉽게도 주변에서 롤모델로 삼을 만한 좋은 엄마는 딱히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택한 엄마로서의 '롤모델'은 바로 아이가 자주 보는 생활 동화책들에 나오는 엄마들이었다.

많지는 않지만 우리 집에도 아이가 보는 전집들이 몇 권 있다. 그곳에는 주로 우리 아이 또래(혹은 좀 더 큰)의 주인공과 아이의 엄마 아빠 그리고 형제, 동네 친구들이 나온다. 이들은 각각 다른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대체로 다정한 엄마와 자상한 아빠, 개구쟁이지만 귀엽고 착한 아이들이다.

그리고 나는 육아 스트레스로 멘붕과 혼란을 겪을 때마다 동화책에 나오는 다정하고 이성적인 엄마들을 떠올렸다.

동화책에 나오는 엄마들은 주인공이 말썽을 부리거나 떼를 쓰면 이성을 잃고 화를 내거나 매질하지 않는다. 대신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친다. 생각해보면 이 책들은 아이들한테도 교육적이지만 책을 읽어주는 부모에게도 상당히 훌륭한 육아서가 아닌가 싶다.


출처: pexels


나 역시 아이가 사소한 실수를 하거나, 집을 좀 어지르거나, 나를 좀 귀찮게 할 때는 최대한 밝게 웃으면서 함께 놀아주려고 한다. 정말 힘들어서 짜증이 막 단전에서 밀려올 땐, 그만큼 일부러 더 밝게 웃는다. 처음엔 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는데, 정말 신기한 것은 일단 웃는 얼굴을 하면 그만큼 짜증도 덜 난다는 것이었다. 임신 때 받았던 심리상담에서 "정신의 상태가 신체화가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신체의 상태가 정신을 컨트롤하기도 하므로 화가 날 땐 심호흡을 하거나 자신만의 스트레스 경감법을 찾아야 한다"는 상담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심호흡으론 잘 다스려지지 않았던 나의 스트레스는 웃거나, 일부러 밝게 텐션을 끌어올려 아이에게 호응해 주거나, 간단한 율동이나 노래를 하면 조금 나아졌다. 물론 그래도 정말 힘들 땐 차라리 잠시 자리를 피해 감정을 가라앉히고 다시 아이와 놀아준다.


이렇게 하다 보니 아무리 급박한 상황, 힘들 때에도 적어도 아이 앞에서 이성을 잃고 화를 버럭버럭 내거나 짜증을 내는 실수는 덜 하게 됐다. 부작용(?)이라면 내가 너무 텐션 높게 열심히 놀아주다 보니 아이가 계속 놀아달라고 하는 점 정도다. 하지만 애초에 평일엔 일을 하느라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짧고, 아쉽다보니 오히려 더 밀도높게 놀 수 있어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아기가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거나 심지어 남편과 언성이 높아지려는 상황에서도 아이와 눈이 마주치면 습관적으로 미소를 짓고 명랑하게 말을 걸었다. 그러다보면 부부싸움이 일어날 뻔한 상황에서도 잠시 진정이 되고, 아이도 불안감을 거두고 안정을 찾게 됐다. 비록 그 미소가 항상 100% 진심이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나중에 어린이집에 입소한 아이는 항상 참 잘 웃는 밝은 아이라는 선생님들의 코멘트를 들었다. 아이들은 주 양육자의 표정을 모방한다고 하는데 어쩌면 내가 '외로워도 슬퍼도' 아이 앞에서는 웃으려고 한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물론 기질이 가장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훈육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 세 돌이 되지 않아 조심스럽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말귀를 알아듣는 개월수가 되면 안 되는 것과 되는 것, 해야 하는 것과 하지 않아야 되는 건 어느정도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위험한 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할 땐 잠시 웃음기를 거두고 단호하게 "그러면 안 돼"라고 말한다. 어린 아이지만 그 정도는 알아듣는 눈치다.


물론, 이렇게 말하실 분들도 있다는 걸 안다. "엄마가 아무리 아이 앞에서 행복한 척 연기를 해 봤자, 아이는 엄마 마음 속에 있는 고통과 우울을 다 알아채고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고.    

하, 정말 이런 소리를 골백번도 더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질타해봤자, 그래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닐지 몰라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하나 뿐이다.

대체 나보고 뭘 더 어떻게 하라고? 이미 있는 애를 다시 뱃속으로 집어넣으란 말인가? 아님 내가 죽어서 다시 태어나야 당신들은 만족할 것인가?(아마 그러면 어떻게 애를 두고 그런 생각을 하냐고 욕할 것이다)

만약 본인들이 육아 체질이어서 육아가 항상 진심으로 즐겁고 아이랑 있는 시간이 늘 행복하기만 하다면, 그건 그거대로 축복받을 일이고 감사할 일이지 남을 손가락질할 근거는 되지 않는다.

애초에 나는 '비육아체질'로 태어났고, 아이를 낳기 전엔 나름대로 성격 좋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던 내가 이러리라곤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딩크를 택하지 못했던 것이고, 애 낳으면 일단 다 잘 할 것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꼬임(?)에 이미 넘어갔고, 이미 아이는 내 앞에 있다.

나는 내 나름대로의 최선을 찾았을 뿐이다.


물론 이런 전략은, 아이가 진심과 가식을 구분하게 되는 연령대가 되면 더 이상 통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때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제는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해진 아이와 함께 대화로 해결을 한다든지. 그 과제는 미래의 나에게 맡겨두겠다.

 

항상 최선일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항상 진심일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우리는 그냥 각자에게 가장 행복해지는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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