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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Dec 27. 2019

육아휴직의 기로에서-무조건 '아이 위주'가 답

눈치 보여도 쓸 수 있는 휴가를 다 끌어쓴 이유 


임신 중기인 16주 즈음에 들어서 직장에 임신 사실을 본격적으로 알렸다. 동료들은 "어머, 진짜? 축하해"라는 말과 함께 질문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얼마나 쉬고 올 거야?"

공무원이나 공공기관도 아니고, 대기업도 아닌 우리 회사의 유자녀 여자 선배 직원들을 보면 대체로 출산휴가 3개월과 육아휴직 6개월 이내를 내고 복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심지어 출산휴가 3개월만 쓰는 경우도 있었다. 그게 아니면 그냥 아예 퇴사하거나.

유례없는 저출산 속에 정부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이런저런 지원책을 마구 쏟아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신의 직장'이 아니고서야 일반 중소기업 직장인 입장에서는 실제 피부로 와닿는 혜택이 그리 충분하진 않아 보인다.

물론 장기 육아휴직을 떠나는 직원을 고운 눈으로만 볼 수도 없는 동료 직원들과 상사들의 입장도 일견 이해는 된다. 실제로 단순노동 수준이 아니고서야 대체인력을 뽑는다 해도 전임자만큼 능력을 발휘할 정도로 교육, 숙달시키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데다, 사실 단기간의 대체인력을 채용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업무도 많다. 자연히 휴직중인 직원의 업무량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어쨌거나 이런 상황에서 현 직장으로 이직한 지 3년도 채 되지 않은 내가 '출산휴가 3개월+육아휴직 1년'이라는 장기간의 휴직계를 내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했다. 괜히 위축됐던 나는 "다른 분들처럼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은 6개월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라고 소심하게 대답했지만 마음 한켠이 편치 않았다.

일단 몸이 약한 편인 내가 짧은 기간 내에 몸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됐고, 아직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이를 두고 직장에 복귀한다는 것이 계획대로 될 수 있을지 장담하기가 어려웠다.

부서장에게 육아휴직 6개월을 구두로 말하고 나서도 나의 고민은 계속됐다.


그리고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사실 그다지 커리어에 대한 열정이나 욕심이 없었다. 딱히 일에서 삶의 보람을 찾는 성격도 아니었다. 내 삶의 행복과 보람은 대부분 퇴근후나 주말의 개인 시간에서 얻는 편이다. 연차가 쌓이면서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역량 부족을 실감하고 있었다.

경쟁을 싫어해서 게임조차도 잘 하지 않는 내게 경쟁이 치열한 업계의 특성은 출근만으로도 기가 빨리는 일이었고, 일 자체를 즐겨서 저만치 앞서가는 동기들과 이제 슬슬 추월을 해 오는 후배들에 대한 압박감은 퇴사 충동을 부추겼다. 예전같지 않은 업황 속에서 역량이 되는 동료들은 아예 다른 업종으로 전직을 하는 경우도 많았고 남겨진 사람들도 항상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내가 정말 열정이 넘치고, 무엇보다 역량이 뛰어난 커리어우먼이었다면 임신출산으로 인한 휴직기간을 최대한 짧게 갖고 복직을 서두르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스스로 그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많은 워킹맘들처럼 동분서주하며 두 마리 토끼를 똑똑하게 잡을 자신도 나에게는 없었다. 자칫 이도저도 아닌 상태가 되는 것이 경력 단절보다 더 두려웠다. 다행히도 남편 역시 직장을 다니며 늘 퇴사를 고민하는 나를 보며 그렇게 힘들다면 언제든지 그만둬도 좋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주택대출과 노후대비가 되지 않은 양가 부모님들, 그냥저냥 먹고 살만할 뿐 딱히 고소득자라곤 할 수 없는 우리 부부의 경제상황은 결단을 계속 미루게 했다.


상담 회차가 중반쯤에 들었을 때, 회사에서는 내 후임자를 뽑았고 나는 인수인계를 위해 한창 바쁜 시기를 보냈다. 하루는 인수인계 때문에 상담시간에 늦은 날도 있었는데, 덕분에 자연스럽게 육아휴직 기간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게 됐다.

상담 선생님의 대답은, 내 기준에선 상당히 뜻밖이었다. "무조건 '아이를 위주로'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모두가 밖에서 일하는 여성의 가치를, 커리어를 가진 여성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시대에, 양성이 평등하기 때문에 임신과 출산과 육아는 여성의 경력에 어떠한 방해가 돼선 안 된다고 정부부터 기업까지 최소한 겉으로는 모두가 외치는 시대에 아이를 위주로 경력유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은 새롭게 들릴 정도였다.

"최소 생후 24개월까지는 주양육자가 양육에 완전히 몰두해야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고 안정적 관계를 형성합니다. 아이가 잘 때 잠도 같이 자고, 놀 때 같이 노는 식으로 생활 패턴도 아이 위주로 철저히 맞춰야 해요."

생후 24개월, 두 돌, 우리나라 나이로는 서너살 정도로 어린 나이지만 사실 주변을 보면 요즘 대부분 가정에서는 늦어도 돌을 넘기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부모는 복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듯하다. 좀 이른 경우에는 육아휴직을 아예 낼 수 없어 100일만 넘어도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산휴가 후 바로 복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현실을 생각해 보면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다.


"아이가 너무 어릴 때 엄마가 지나치게 커리어나 공부만에 집중하는 것은 아이의 자존감에 치명적인 영향을 줘요. 아이 입장에서 부모님이 '나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 내 곁을 떠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가치없는 사람으로 여기게 되고, 자라나서는 작은 시련에도 쉽게 좌절하는 아이가 되고 맙니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엄마가 나를 근처 외할머니 댁에 맡겨놓고 밤늦게 데리러 오면 그때까지 엄마를 기다리면서 외롭게 잠이 들었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난다. 채워지지 않는 엄마의 사랑을 나는 엄마 냄새가 밴 베개에 코를 박고 채웠던 기억도 있다. 

할머니는 나를 사랑으로 돌봤지만, 6살이 넘어 유치원을 다니면서 할머니와는 결국 떨어지게 됐고 그것 또한 어린 내게 새로운 혼란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래도 요즘은 다들 주변에서 아이 클수록 돈이 많이 든다고, 결국 돈이 애를 키운다고들 하던데 애들 어릴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지 않을까요?" 

"생후 24개월까지의 중요한 시기에 부모가 돈벌이에 치중해 아이와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뒤늦게 초등학교 입학 즈음에야 게임중독, 학교폭력 등 문제 행동이 심각해지고 나서야 상담소를 찾아 더 큰 돈을 쓰는 경우가 아주 많아요. 그리고 아이에 투자하는 것은 결국 '내 노후'에 투자하는 것이기도 해요. 아이가 바른 인성으로 잘 자라야 나 역시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지 않겠어요?"

그렇다. 생각해 보면 내가 훗날 늙고 병들었을 때 내 곁에 누가 있어줄까를 생각해 보면 지금 당장 내가 눈치를 보고 있는 직장 상사나 동료들이 아닌, 내 배우자와 앞으로 태어날 아이일 것이다. 

 

24개월, 혹은 더 나아가 생후 36개월까지는 주양육자 하에 가정보육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은 내가 받았던 상담 외에도 많은 책이나 강연에서 들을 수 있었다. 

임신사실을 알리자 주변에서 이런저런 육아서들을 추천받아서 틈 나는 대로 읽었는데, 애착이론을 다룬 육아서에서는 거의 약속이나 한 듯이 생후 36개월까지 엄마가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하고 있다. 물론 부득이한 경우에는 조부모나 베이비시터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지만, 절대로 지켜져야 할 원칙은 이 기간 동안 도중에 주양육자가 바뀌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주양육자가 누구인지가 중요하다기보다는 '일관된 양육자'가 일관된 태도로 사랑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한데, 실질적으로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일관되게 3년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일관된 애정을 주기 어렵기 때문에 부모가 그 역할을 맡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게 아닐까 한다. 

많이들 이야기하는 어린이집에서의 '사회성 형성'도 36개월 이전의 영유아에게는 의미가 없다고 한다. 36개월 이전 아기들의 사회성은 집단생활이 아니라 가정에서 부모와의 끈끈한 유대와 애정으로 형성된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상담을 마치고, 남편과 많은 대화를 나눈 끝에 결국 나는 출산휴가 3개월과 육아휴직 1년의 휴직계를 제출했다. 갑자기 휴직 기간을 훌쩍 늘려 내후년 복귀를 말하는 내게 부서장과 동료들은 그다지 달가운 눈초리는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연차 소진 기간까지 포함해 약 1년 4개월에 달하는 휴직기간이 끝나면 곧 이어서 공무원인 남편이 1년간의 육아휴직을 쓰기로 했다. 어린이집에는 최소한 두 돌이 지난 뒤 보낸다는 것이 현재 우리 부부의 목표다. 만약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더라도 아이가 기관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이상 행동을 보인다면 지체없이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케어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물론 막상 실전 육아에 들어서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상황은 어떻게 바뀔 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우리 아이를 위해 현재로서 할 수 있는 노력을 최대한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다. 


첨언하자면 요즘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도 여전히 '나'로서,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유지하는 것이 정답인 것처럼 말하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어쩌면 치열한 일터 대신 아이를 우선시하기로 한 나의 선택은 자칫 양성평등 시대에 역행하는 행동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나를 꼭 일터에서만 찾아야 할까. 사회생활 10여년간, 그리고 현재의 직업을 유지한 지 7년간 나는 회사를 위해 일하면서 '진짜 나'가 없어지는 듯한 느낌을 수없이 받았다. 오히려 내가 진짜 나다워지는 순간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그들을 행복하게 해 줄 때였다. 강요된 것이 아니라면, 일터에서 치열하게 남자들과 경쟁해 성과와 연봉을 올릴 때보다 남편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줄 수 있을 때 더 행복감과 보람을 느끼는 게, 나답지 못할 이유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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