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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Jan 21. 2020

떨리는 첫 데이트의 생선구이 백반

정답대로 하지 못해도


2016년의 어느 토요일, 10월이었지만 꽤나 쌀쌀했다. 그 날 만나기로 했던 소개팅남은 일산에 있는 우리 집에서 차로만 40분이 걸리는 남양주에 살고 있어서 첫날부터 차를 가지고 우리 동네로 오겠다고 했다. 중간 지점을 찾기도 애매해서였다. '카톡'을 서로 교환하고 약속을 잡을 때 근처에 맛집이 있냐고 하는 소개팅남에게 나는 마땅히 추천할 만한 식당이 선뜻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 문득 예전에 엄마와 함께 갔던 생선구이 집이 생각났다. 삼치구이와 고등어구이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났다. 안타깝게도 가게의 분위기는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한정식집 분위기로 기억했던 것 같다.


'여기 전에 가봤는데 맛있더라구요' 나는 아무렇지 않게 생선구이집으로 약속을 잡았다. 소개팅 첫데이트의 공식처럼 여겨지는 파스타집을 적당히 찾아서 알려 줬어도 됐을텐데 굳이 쌩뚱맞은 생선구이집을 찾은 이유는 소개팅에 대한 큰 기대가 없었던데다 털털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그 때 나는 30대에 접어들었지만 제대로 된 긴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고, 몇 번의 짧은 만남만 있었을 뿐 그나마도 소개팅으로 만나 잘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소개팅만 하면 전부 두 번 만나기 싫을 정도로 독특한 사람들만 나오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이상한' 사람이 나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냥 먹고 싶은 거라도 먹자는 마음으로 편하게 나갔다. 뭐,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지나치게 편한 마음이었던 것 같지만.


그리고 막상 지하철역 출구 앞에서 어색하게 만난 소개팅남은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훨씬 괜찮게 생겼고 우리는 역시 뻘쭘하게 생선구이 집을 찾아 들어갔다. 그런데 맙소사, 이 생선구이집은 내가 기억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였다. 밥을 먹으며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기는커녕 '얼른 먹고 일어나줘야' 될 것 같은 그냥 백반집 분위기였고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도 하필 많았다. 나는 대체 어느 가게 분위기랑 헛갈렸던건지. 중학교 때 이후로 연애를 쉰 적이 없는 자칭 '연애 베테랑'인 친구가 이 광경을 본다면 늘 그랬던 것처럼 "모쏠들이 그렇지 뭐"하며 크게 비웃을 것 같았다. 나는 눈에 띄게 당황했고 소개팅남도 애써 당황하지 않는 척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마음 속으로 내심 체념을 했고 오늘은 그냥 생선구이나 맛있게 먹고 집에 가야겠다 싶었다.



우리는 어색하게 앉아 삼치구이와 알탕을 주문했다. 한창 밥을 먹고 있는데 소개팅남이 삼치 쪼가리를 뜯어서 내 밥 위에 올렸다. 나름대로의 매너를 발휘한 것 같지만 그러기에는 생선 조각이 너무 작았다. 그 순간 나는 그도 나만큼이나 긴장하고 있다는 눈치를 챘다. 문득 주선자가 소개팅남에 대해 '(너처럼) 모솔'이라고 언급했던 게 기억났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나이찬 연애 무경험자로 살면서 새로운 이성을 만날 때는 암묵적으로 평가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늘 편치 않았다. 그래서 내 이상형은 나와 연애 경험치가 비슷한 사람이었다. 그나마 조금 편해진 나는 소개팅남과 '아무말 대잔치'를 벌였다. 심지어 학창시절 얘기까지 꺼내면서 인생 일대기를 다 나눈 것 같지만 어떤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날 먹은 것들은 분명 맛있는 음식들이었지만 식사가 끝난 뒤에도 식탁 위 밥과 반찬은 약 30%는 남아 있었다. 


우리는 2차로 카페로 옮겨 또 약간의 시간을 보내다 소개팅남의 제안으로 인근 공원을 조금 걷고 헤어졌다. 그래서 그 날 소개팅 결과는 어떻게 됐냐고? 서로 경험치가 적은 탓에 약간의 우왕좌왕은 있었지만 그 뒤로 소개팅남은 남자친구로 진화를 한 뒤 2년 반 뒤 남편으로 최종진화했다. 만난 지 1주년부터 매년 기념일마다 우리는 첫 소개팅날 갔던 생선구이 집에 다시 찾아간다. 이번에도 똑같은 삼치구이와 알탕을 시켜 나눠먹었다. 이미 많이 편해진 우린 이번에는 생선구이와 탕, 밥을 남김없이 싹싹 긁어먹었다. 참, 그날 남편이 생선구이를 너무 작게 찢어줬던 건 나를 만나 너무 긴장한 탓에 손이 떨렸던 게 아니라 원래 조금씩 찢어 먹는 습관 때문이었다. 지금도 쌈을 싸 먹을 때 남편은 왜 그렇게 밥을 '많이씩' 떠서 넣냐고 놀랄 정도다. 


살다보면 '공식'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들이 참 많다. 소개팅 첫 날엔 조용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찾아야 하며, 이십대 때 연애를 많이 해 봐야 결혼할 때 돼서도 '나쁜 사람'한테 낚이지 않고 괜찮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들 하며, 나이를 어느 정도 먹으면 연애 경험치도 그에 맞게 쌓여야 이상하게 보이지 않고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 등등이다. 생각해보면 나와 남편은 이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우린 남달라!'라는 오글거리는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감히 인생에 대해 정답처럼 논하는 여러 공식들이, 변화무쌍한 인생사 앞에 사실은 그리 절대적이진 않다는 말이다. 모든 것이 서툴렀던 20대에는 그러한 말들에 상처도 많이 받고 겁도 많이 먹었다. 남들은 다 멀쩡히 연애를 하는데, 남들은 세상살이가 다 능숙한 것 같은데 왜 나는 늘 이런 모습일까. 하지만 그들 역시 능숙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고 그냥 저마다 다른 삶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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