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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Jan 19. 2020

자취생의 자존감 수호자, 파스타

잘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는

2015년, 30대를 약 반 년 앞둔 어느 날 나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사유로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물론 그 전에도 고시원 등에서 일시적으로 자취를 하긴 했지만 갑자기 건강상태가 나빠지거나 이직을 하는 등으로 몇 달 가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만성적으로 불화했던 우리 가정은 나에게 그리 안식처가 되지 못했고, 결국 나는 월급 실수령액 137만원의 열악한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월세방을 얻어 자취방 세대주로 혼자 살게 됐다.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자취를 했다고 해서 엄마 밥이 갑자기 그리워지거나, 살림하는게 너무 귀찮아서 부모님의 손길이 절실해진다거나, 아무도 없는 적막 속으로 퇴근하는 게 무섭고 싫은 감정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매일같이 속을 끓이고 우울하게 만들었던 식구들의 아귀다툼에서 벗어나 적막하게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맘 편하기만 했다. 물론 엄마는 수시로 돌아오라고 했지만, 나는 '이 좋은 집을 두고 어디로 돌아가나' 싶었다. 내 쉴 곳은 내 작은 집 내 원룸 뿐이리.


자취 생활 초기에는 '집밥 백선생' 같은 프로그램을 유튜브로 돌려 보며 이것저것 야심차게 찌개도 끓이고 반찬도 만들어 먹었다. 다행히 각종 고수들의 레시피가 떠돌아다니는 시대라 요리 경험이 일천한 나도 그럴듯하게 식사를 만들어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도 잠시, 130여만원으로 월세 45만원을 내고 생계를 꾸리자니 매일같이 적자의 연속이었다. 마트에서 장을 봐도 가격표를 보고 한숨을 쉬며 돌아나올 때가 더 많았다. '먹고 싶은 것'은 사지 못하고 '살 수 있는 것'으로 먹어야만 했다. 예전에는 치를 떨며 싫어하던 회식이 이제는 은근히 기대가 될 정도였다. 내 돈 안 내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서였다.


생계 곤란에 쫓기던 나는 다행히도 약간 더 나은 조건의 직장으로 옮길 수 있었다. 문제는 이곳은 돈을 좀 더 주는 대신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도 함께 줬다. 직장 사수와 부서장은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았고, 나를 제외한 모든 부서원들이 아저씨들이었기 때문에 성희롱도 만연했다. 하지만 신입인 나는 그저 '네, 네'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오는 길 편의점에서 달고 기름진 음식들을 잔뜩 쟁여와 마구 입으로 집어넣는 것만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다.  


새벽같이 출근을 하느라 아침은 김밥 등을 대충 사먹고, 점심은 일을 하다가 밖에서 먹고, 그나마 야근이나 회식을 하지 않으면 저녁은 늦게나마 집에서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취 초기처럼 정성스레 요리를 해서 먹는 건 꿈도 꾸기 어려웠다. 다음날 일할 거리를 집에서도 고민하고 있어야 할 판인데다 침대에 누우면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만성 피로에 쩔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에서 요리는 여가생활과 기분전환의 수단이 되지만 심한 피로를 겪는 직장인에게 요리는 그냥 가사노동에 불과했다. 배달음식을 시켜먹거나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는 날이 늘어났고 회사에서 각종 폭언으로 지친 나는 몸과 마음이 점점 만신창이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를 상처 준 원가정에서 벗어나 독립을 하면 무조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내 손으로 생계를 꾸린다는 삶의 무게는 만만치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원가정이 그립진 않았지만, 당시 의지할 곳 하나 없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스스로를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나에게는 더 이상 '따뜻한 부모님의 손길'도, 지도편달해주는 선생님도 없었다. 20대에는 서로 푸념이라도 하며 의지했던 친구 관계는 30대에 들어서니 각자의 처지가 조금씩 벌어지며 은근한 경쟁과 견제가 스며들어 마음을 줄 데도 없었다. 그렇다고 사회적 성공과 경제적 안정은 아직도 너무 요원하기만 했으니, 내 스스로 나에게 '잘 살고 있다'는 확신을 주고 싶었다.



몸은 너무 힘들고 지쳤지만 나를 더 이상 방치하고 싶을 때, 나는 파스타를 끓였다. 비록 요리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으로 면을 10분간 끓이고 냉장고에 만약 양파나 새우, 치즈, 참치캔 등이 있다면 넣고 시판 소스를 부어 볶는 게 전부였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내 스스로를 대접하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가격대 역시 소스 3천원대, 면 천 원대(가끔 할인행사를 하면 소스에 면을 붙여 팔기도 한다)에 구입할 수 있어 가난한 사회 초년생도 부담없이 쟁여놓을 수 있다. 


직접 만든 파스타를 그릇에 담에 먹으면,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라면을 끓여 먹거나 냉동식품을 녹여 먹거나, 혹은 편의점 도시락을 뜯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요즘은 다양한 맛의 소스를 팔고 있어 질리면 다른 맛으로 볶아 먹으면 됐다. 토마토, 로제, 크림, 아주 가끔 오일 파스타를 볶으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잘 살고 있다'는 격려를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시간조차 이제는 추억이 되어 버린 지금도 나는 종종 혼자서 밥을 해 먹어야 할 때는 파스타를 끓인다. 아마 오늘 저녁도 파스타를 먹지 않을까 한다. 잘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은 언제나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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