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씨 Jan 19. 2020

태어나서 가장 맛있게 먹은 라면

남반구 낯선 휴양지에서 부정할 수 없던 '한국인 유전자'

개인적으로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요즘 많이들 열광하는 '엽떡'이나 '불닭면' 같은 것은 거의 입에도 대지 못하는 수준이고 매운 음식을 파는 곳에 가면 무조건 가장 순한 맛으로 주문하곤 한다. 이뿐 아니라 평상시 입맛도 한식을 그리 즐기지 않아 혼밥을 해야 할 때면 패스트푸드나 빵, 파스타 등으로 먹을 때가 많다. 좀 부끄럽지만 혼자 자취를 할 때는 1kg 쌀을 사서 일 년간 먹다가 버린 적도 있었다. 


이십 대 중반에 9개월 정도 호주에서 체류한 적이 있었다. 졸업 전 휴학을 하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나갔다가 문득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어져서 무작정 돌아오는 비행기를 취소하고 6개월을 더 머무른 덕분이었다. 육체노동 체질도 아닌데 갖가지 일을 가리지 않고 밤낮으로 한 덕택에 약간의 목돈을 모아서 한 달 정도는 대륙 반 바퀴를 혼자 여행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겸사겸사 영어공부도 하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인 일행도 없이, 한국 여행사도 끼지 않고 다짜고짜 동네 여행사 사무소를 찾아가서 한 달간 여행할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을 주문했다. 다행히도 일정액을 내면 단체로 버스를 타고 쭉 대륙을 타고 내려오며 각 도시와 주요 관광지에 들르고, 일부 식사와 숙박이 제공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는 그래도 한국 사람들이 제일 많은 해외 국가 중 하나인데 버스에 탄 사람 중 한국 사람이 한두명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아니, 최소 동양인이라도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어딜가나 한국인 투성이라는 한국 사람들의 불평과는 반대로 내가 탄 버스에는 동양인이 정말 하나도 없었다. 내 영어는 초보 수준이었지만 어차피 서로 막 '친목질'을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즐겁게 여행을 했다. 게다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남의 돈을 벌어먹어야 할 때와는 달리 돈을 쓰는 위치다 보니 서러운 일도, 인종차별도 딱히 당할 일이 없었다. 신기하게 돈을 벌때와는 달리 쓰는 입장이 되니 현지인들도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었다. 


내가 여행을 할 때는 호주에 온 지 6~7개월차가 될 때였다. 처음 한국에서 날아왔을 때 묵었던 어학원 기숙사는 한국인 학생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밥도 있고 김치도 있었지만 첫 숙소에서의 추억이 별로 좋지 않았던 탓에 나는 오다가다 우연히 친해진다면 모를까 한국인들과 일부러 친분을 맺진 않았다. 아르바이트도 시급을 많이 쳐 주는 곳을 찾다보니 한국인 보스보다는 현지인이 보스인 곳을 주로 다녔고 쉐어 하우스도 비한국인들과 생활했다. 그러다보니 첫 숙소 이후부터는 한국 음식을 한 번도 먹지 않았던 것이다.


보통은 일주일만 한식을 먹지 않아도 김치찌개가 그리워서 미칠 노릇이라는데, 나는 6개월이 지나도 그럭저럭 스테이크와 빵이 잘 넘어가니 어지간히 한국적이지 않은 식성인가보다 했다. 어차피 동양 음식 사 먹으려면 비싼데 가난한 신분에 잘됐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여행을 계속했고, 나는 어쩌다가 동양인이 단 한 명도 없는 호주의 어느 이름없는 바닷가 휴양지까지 오게 됐다. 지금도 구체적인 지명이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낯설고 작은 마을이었다. 나와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은 물론이고 숙소 전체, 아니 해변과 마을 어디를 둘러봐도 동양인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는 후미진 곳이었다. 바닷가에 왔으니 해산물 요리를 먹어보자며 무작정 '씨푸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그때 나름대로는 거금 20달러를 내고 해산물 스튜(?)를 시켰는데, 이건 니 맛도 내 맛도 아니었다. 휴양지에서 사전조사 없이 아무 음식점에나 들어가면 대부분 실패한다는 건 만국 공통인 것 같다.


어쨌거나 씨푸드 도전이 허무하게 끝나고, 나는 말동무도 없이 해변을 무작정 걸었다. 그런데 문득 알 수 없는 허기가 찾아왔다. 밥은 잘 먹고 다니니 배가 고픈 건 아니었다. 뭔가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뱃속을 따뜻하게 만드는 뭔가가 먹고 싶었다. 빵을 먹고 과자를 마구 먹어도 허기는 계속됐다. 그것은 익숙한 음식, 매콤하고 뜨끈하고 칼칼하고 진한 한국 음식이 먹고 싶은 것이었다. 


놀랍고 신기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한국 음식을 찾는구나 싶었다. 고백하자면 20대 당시의 나는 외국 나가서 한식만 찾는 사람들을 조금은 '촌스럽게' 여겼던 것 같다. 왜 굳이 비싼 돈 들여 외국까지 가면서 고추장 튜브니 컵라면 등을 바리바리 챙겨 가는지 사실 좀 구질하다고 생각했었다. 나라면 현지 입맛에 완전히 적응해 빵만 먹고도 잘 살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6개월간은 그럭저럭 잘 지내 왔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매운 찌개를 먹고 싶어지다니 그 때 나는 약간 스스로에게 진 듯한 느낌도 들었다. 


어쨌거나 한식을 먹으려면 일단 이 지긋지긋한 휴양지를 벗어나 한인마트와 한식집이 있는 대도시로 가야만 했다. 하지만 좀 더 큰 도시로 나가는 다음 버스를 타려면 아직 일정이 남았고, 이런 작은 휴양지에는 한식은 커녕 일식이나 중식도 없었다. 신선한 피쉬 앤 칩스나 좋아하던 '팀탐'은 도무지 당기지 않았다. 고기나 빵은 목구멍에 돌이 걸린 것처럼 아예 입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휴양지에 딱 하나 있던 슈퍼마켓에 무작정 들어갔다. 뭔가 매콤한 찌개 국물 비슷한 거라도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다. 별 기대 없이 낯선 언어들로 채워진 좌판을 지나치는데 문득 낯익은 것이 눈에 띄었다. 수출용 '신라면'이었다.


매운 맛을 좋아하지 않는 탓에 한국에서는 신라면을 내 돈 주고 사먹어 본 적이 없었다. 라면 자체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그나마 라면을 사야 할 때면 삼양라면이나 진라면, 도시락면 같은 다른 브랜드를 주로 샀다. 그러나 그날 내가 발견한 신라면은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 이상이었다. 나는 정신없이 신라면을 사서 숙소로 갔다. 게스트하우스 주방에서 양인들 사이에 끼어 매콤한 신라면을 끓여서 마구 입에 가져갔다. 생각해 보니 수출용이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날 먹은 신라면은 그리 맵지 않았던 것 같다. 아쉽게도 '김치'는 없었지만, 신라면 국물까지 마시고 나니 조금은 속이 풀려서 다른 음식도 먹게 됐다. 


출처:게티이미지


그렇게 신라면 한 그릇에 '고향의 맛'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 떨치고, 나는 우연히 같은 휴양지를 여행하던 일본인 여행객과 우연히 친해져서 한동안 같이 다니다가 나중에 시드니에서 다시 만나 한동안 SNS에서 교류하기도 했다. 그리고 휴양지를 벗어난 다음 행선지에서 나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국인 게스트하우스에서 쌀밥과 반찬을 먹으며 원기를 회복하고 오랜만에 한국말을 하며 지친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다행히도 첫 숙소의 악몽과는 달리 그곳의 한국인들은 모두 친절했고 열린 마음으로 여행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그곳을 떠난 뒤로부터는 나는 한국인과 비한국인을 가리지 않고 편견 없이 대할 수 있게 됐다. 영어공부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오랜만에 라면을 끓이다가 문득 그 날 차가운 게스트하우스 주방에서 혼자 끓여먹던 신라면이 생각났다. 이십대 초반의 나는 스스로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아집에 참 많이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한식을 좋아하지 않아, 한식만 찾는 남들과는 다른 사람이야, 나는 이런 유형의 사람과는 맞지 않아, 이런 행동을 하는 건 나답지 않아 등등... 하지만 그날 '타는 목마름으로' 신라면을 정신없이 섭취한 날,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내 안의 어떤 견고한 벽이 조금은 무너진 것 같았다. 나에게도 이런저런 면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무엇이 무엇보다 낫다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 내 '사춘기'도 조금씩 막을 내리지 않았나 싶다.


 

작가의 이전글 모래놀이치료-그 '아기'는 사실 나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