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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May 15. 2016

오늘은 몇 번, 불행을 나눴나요

한국식 '스몰 토크'의 불편함

서른이 가깝지만 취직하지 못한 조카는 "아직 좋은 소식 없니? 어디라도 들어가야 되지 않겠냐"는 훈계를 듣는다. 그 훈계를 한 마흔 살의 노총각 삼촌은 다른 친척으로부터 "그 나이 되도록 장가도 못 가고 어떻게 하냐"는 걱정을 듣는다. 그 말을 한 고모는 사촌 언니로부터 "여자가 자기관리도 못하고 살이 그렇게 찌면 안된다"는 비난을 받는다. 고모는? 자녀가 재수를 했지만 올해도 명문대에 가기 어려울 것 같다는 이유로 친지들에게 걱정어린 시선을 받는다. 


직장에서건, 친척 혹은 지인들과의 모임이건, 혹은 그저 우연히 만난 낯선 사람들과든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스몰 토크'를 한다. 특별한 주제나 목적 없이, 무언가를 주장하는 것도 아닌 그냥 침묵을 깨기 위한 정도의 가벼운 대화들.

문제는 이 대화의 주제가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 때다. 특히 한국에서의 스몰 토크는 너무 자주, 상대의 수준과 인생에 점수를 매기고 평가, 비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곤 한다. 스몰 토크는 이제 누가누가 더 불행한지 확인하며 그나마 내가 '쟤'보단 낫다는, 기괴한 '불행과 안도의 릴레이'가 된다.


"몇 살이고, 어디를 다니는지, 결혼은 했는지, 연애는 하는지(물론 여기서 '이성애자'외의 옵션은 없다), 연애 상대의 직업과 외모는 어떤지, 안 한다면 왜 안 하는지,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한 건 언제인지, 부모님은 뭘 하는지, 연봉은 얼마인지, 자녀들의 학교 성적은 어떻고 취업은 했는지"등 세세한 호구조사를 마치면 어김없이 훈계가 돌아온다. 훈계가 돌아오지 않더라도, 저런 사항을 묻고 답하는 것 자체가 불편함의 연속이다.


학교에 들어가고, 사회에 편입되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한국인들은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고 뒤떨어지는 부분이 행여나 있을지 조마조마하며 결점 메꾸기에 여념이 없다. 재산이나 학력 같은 '그나마' 노력으로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는 부분뿐 아니라 외모나 집안, 나이 같은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까지 냉정한 평가의 대상에 오른다. 


전세계인 모두를 만나보지 않아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생각에 이러한 외적인 부분에 대한 암묵적인 '평가'가 전혀 없는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세계 어딜 가도 못생겼고, 뚱뚱하고, 가난하고, 여하튼 사회적으로 '주류'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은근하게든 대놓고든 차별을 받게 된다. 그게 당연하다는 게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 하지만 한국에서 유독 남다른 부분은, 모든 잣대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지나치게 '높고', '획일화' 돼 있으며,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남에 대해서도 어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비난과 지적의 시선을 보내는 게 너무 공공연하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남을 너무 의식하는 게 문제'라고들 한다. 오죽하면 '미움받을 용기(저자는 일본인이지만 어쨌든 한국에서 베스트셀러니까)'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제 그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진짜 나 자신이 원하는 걸 찾고, 하고 싶은 대로 살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남에 대한 나의 시선'은? 우리가 아무리 각종 자기계발서와 '힐링 강연'같은 걸 찾아보고 진짜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아봤자, 주변 사람들의 '걱정어린 충고' 몇 마디만 들으면 왠만한 강철멘탈 아닌 이상 금새 '이게 아닌데'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만약에 그런 말들을 듣고도 꿋꿋이 '마이웨이'를 걸을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애초에 저런 자기계발서와는 무관하게 이미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을 것 같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남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그냥 둘 정도로 타인에게 무관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에 대한 불필요한 질문을 멈추자. 몸무게와 연애, 결혼 상태는 사생활의 영역이니 남이 그걸 알아야 할 어떤 이유도 명분도 없다. 외모와 나이와 집안 등에 대한 평가는 무조건 해서는 안 되는 거다. 설령 그게 칭찬이라도 하지 않는 게 되도록이면 바람직하다. 그럼, 이 주제들을 빼면 도대체 다른 사람들과 무슨 얘기를 해야 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호구조사밖에 할 말이 없다는 건, 당신이 그만큼 '재미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는 증거일수도 있다. 의무적으로 하는 일 외에 취미생활을 만들고, 주변 사람들을 '스펙' 외에 사람 그 자체로서 관심을 갖고(그러다 보면 좀더 나은 공통 관심사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끔씩 세상 돌아가는 일에도 좀 관심을 갖자.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공연도 보고 운동도 좀 하고 인생을 '경쟁하는 기계'처럼 살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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