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난 신혼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 로망의 끝이 그렇듯 그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신혼여행에 대한 내 로망은 다소 특이하다면 특이했다. 그동안 꼭 가 보고 싶었던 마다가스카르에서 2주가량 그곳 복지시설에서 필요한 집이 혹은 작은 건물을 짓는 봉사나, 아동복지시설에서 필요한 인원으로 봉사하는 걸 꿈꿨다.
신혼여행이 보장하는 쉼은 집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럭셔리 호텔? 굳이 안 가도 됐다.
오히려 나는 푹푹 찌는 더위에서 모기에 뜯기더라도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고 싶었다.
게다가 2주간 둘이 함께 온전히 쉴 수 있는 시간은 신혼여행뿐일 텐데, 그 시간을 의미 있게 활용하고 싶었다.
아무래도 내가 그러한 생각을 했던 이유는 내가 아프리카 가나에서 자랐기 때문인 것 같다. 다양한 봉사 활동과 굉장히 친숙하고, 빌리지(village; 오지에 있는 시골 마을로, 대부분 전기와 수도 시스템이 없음)에 가서 이틀 동안 학생끼리 합쳐서 콘크리트로 벽돌을 만들고, 하루 후에 벽돌이 마르고 나면 (가나 날씨 덕분에 시멘트가 빨리 말랐다) 팔이 빠질 것 같더라도 콘크리트 벽돌을 하나씩 날라, 집 벽을 세우고 미장까지 하는 일이 매우 익숙했다. 이때 30분 이상을 걸어야 나오는 단출한 펌프에서 물을 각자 양동이에 길러와서 샤워했다. 샤워하는 공간은 판자때기로 이뤄진, 몸만 들어가는 좁은 공간이었고 위를 보면 하늘에 뜬 은하수가 보였다. 당연히 전등이 없었기 때문에 그 별빛에 의존해서 머리를 감고 몸을 쓸어내렸다. 잘 때는 눈 바로 앞이 보이지 않는 방에 여러 명이 배정되었고, 콘크리트 바닥 위에 요가 매트를 깔고 잤다.
집을 짓는 일 외에도 봉사 거리가 많았다. 우리 학교에서는 아동복지시설, 미혼모 시설, 장애인복지시설 등을 방문하여 그곳의 필요한 업무를 돕는 게 초등학교 때부터 필수로 가야 하는 방과후 활동이었다. 주로 1~2주에 한 번은 갔다.
나는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스스로 봉사를 해야 하는 니즈(needs)를 엄청나게 느꼈다. 자라면서 당연히 지속해야 하는 일이라고 배웠는데,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서 이어가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보니 굉장히 답답한 상태에서 시간만 흘렀다. 그러다가 곧 결혼하게 되었는데, 이미 내 신혼여행에 대한 로망을 알고 있던 내 현재 남편은 나의 마다가스카르 계획이 싫다고 했다.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어쨌든 협의해야 하는 바이기 때문에, 그리고 싫다는 사람을 끌고 가서 봉사해 봤자 의미가 없으니 나는 내 계획을 포기했고 우리는 인도네시아 롬복으로 신혼여행을 갔다.
물론 그것도 재미있기는 했다.
당연히 롬복에서 잘 놀다 왔다.
하지만 난 가끔 꿈꾼다.
마다가스카르 같은 곳으로 긴 시간 동안 봉사하러 가는 것을.
지금은 우리 키키, 쿠파, 체다(고양이와 강아지)와 식물 60개 등이 있어서 현실적으로 집을 장시간 비우기가 어려워졌다. 역시 신혼여행 때가 아직 일군 것도 없고 딱이었는데…. 8년이 지난 지금, 갈수록 아쉽다.
그런데 난 왜 봉사에서 그렇게 성취감과 행복감을 느낄까?
사실 성취감이 든다기보다는 행복한 게 더 큰 것 같다.
누군가의 인생에 내가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다는 게 너무나도 감사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토록 선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외부 요인 때문에- 타인에게 ‘착한 사람’, ‘선한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싶어서 그런 걸까?
내가 2학년 때의 일이다.
매 학년 총 약 30명 중 열 명 정도는 전학생이었는데, 그 전학생 중에 ‘줄리아(Julia)’라는 아이가 있었다.
줄리아는 유럽 어딘가(프랑스였나… 기억이 안 난다)에서 온 친구였는데, 꼭 순정 만화 ‘캔디캔디’ 속 주인공 캔디의 여리여리한 외모부터 자연스럽게 웨이브 진 금빛 머리까지 똑 닮았었다.
그런데 당시의 줄리아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울지 않는다는 캔디처럼 아직 강하지는 못했나 보다.
예민하고 조용한 성격 덕에, 어린 내가 봐도 다른 친구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눈치였고, 아이들 간에 자주 있을 법한 유치하고 소소한 다툼에 마음을 크게 다치는 듯했다.
그때 나는 네덜란드에서 온 친구 ‘에바(Ebba)’와 학교에서 점심을 주로 같이 먹었다. 에바는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동글동글, 무던한 성격을 가진 데다가 누군가가 곤경에 빠져 있으면 꼭 도우려고 했다. 줄리아가 혼자 있는 것 같으면, 꼭 가서 말을 붙이며 놀았다. 그 덕에 나도 자연스럽게 줄리아와 함께 놀고 같이 챙기게 되었다.
아직 만 9세였던 나는 줄리아와 친해지면서 엄청난 성취감과 더불어서 줄리아가 힘들어하는 눈치일 때는 먼저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그래서 줄리아를 더욱 열심히 살피고 함께했다. 그저, 챙겨야 하는 친구니까- 나는 줄리아가 갈수록 좋으니까, 그래서 챙겼다.
2학년 마지막 날, 그러니까, 방학하던 날에 2학년 담임 선생님이셨던 ‘미스 파머(Ms. Palmer)’가 우리 이름을 알파벳 순서로 나열하고 수식하는 말을 각자 붙여서 만든 긴 시(詩)를 읽어주셨다.
훌륭한 예술가가 될 가은이,
스탠드업 코미디언 다정이,
떠드는 게 제일 재미있는 범준이,
공만 보면 차고 싶은 하윤이.
예를 들자면 이런 형식이었다.
나는 이름이 ‘Y’로 시작하기 때문에 거의 마지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선생님이 쓰신 시 앞쪽에서 ‘언제나 도울 준비가 되어 있는 에바’가 나왔고, 그걸 듣고는 나도 타인을 먼저 돌아보는 사람이라고 해주시겠지, 라는 희망을 품으며 다소 떨리는 마음으로 나에 대한 선생님의 평가(?)를 기다렸다.
내 이름이 드디어 나왔고, 선생님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책벌레 용재’라고 나를 지칭하셨다.
다소… 아니… 아주 많이 실망스러웠다. (결국 지금 출판사 대표이자 작가로 직업을 전환한 게 유머이지만….)
나에 대한 이미지가 그저 ‘책 좋아하는 애’라니.
실망했던 그때의 감정이 아직도 마음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그런데 나는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 본다.
만약 내가 선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면,
나는 과연 선해지려는 노력을 그칠 것인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내 경험상, 남몰래 누군가를 돕는 게 세상에서 가장 짜릿하고 보람되다.
반대로 외적이 요인이, 즉 타인의 평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선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 또한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선해지려는 의지가 있는 거니까.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위선도 선이다.
이유가 뭔들,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좋은 사람으로, 선하게 살면 됐지!
나는 보편적인 사람은 악하기보다는 선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
타인이 알아줬으면 해서 선한 행동을 하든, 여유가 많아서 여차저차 기부하는 것이든, 나에 대한 기준이 높아서 봉사하는 것이든, 역시 ‘선한 사람’이 되는 길은 여럿이라고 깨닫는다.
그 길을 개척해 내도 되고, 있는 길을 택해도 되지만, 결국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닐까?
어제보다 오늘을 더욱더 도덕적이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한다면, 그걸로 됐다.
그러므로 내가 오늘도 선한 사람으로 살기를,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으로 살기를.
스스로에게 기대를 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