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면 울고 즐거우면 웃는 게 당연한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슬픔이 마음 구석구석을 채울 때면 허탈한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이 순간을 잊고 싶지 않을 정도로 즐거울 때면 눈물이 나기도 하고.
사람을 좋아해서, 사람에게 늘 관심을 두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다면, 그건 사람마다 고유한 감정 표현 방식이 있다는 거다.
나는 너무 화가 날 때면, 부끄럽고 짜증이 나게도 눈물부터 왈칵 쏟아진다.
당황스러울 때는 눈썹을 살짝 올리면서 미소를 짓고,
행복할 때는 주변 소음의 어슷한 박자에 맞춰 볼품없는 춤을 춘다.
어이없게 웃길 때는 못 이긴 척 피식- 하며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슬플 때는 얼굴 근육은 사용하지 않은 채로 눈동자에만 힘을 준다. 무너지고 싶지 않아서일까.
역시 나도 웃긴다고 무조건 웃지 않는, 슬프다고 마냥 우는 사람은 아니다.
느껴지는 감정에 비해 다소 엉뚱한 표정이나 행동을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사람들은 ‘촉’이 좋다는 말을 많이 한다.
누군가가 행복한 일이 있으면 말하지 않아도 곧바로 알아차리는 편이다. 언급하지 않은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면, 이상하게도 상대방의 기분이 살갗으로 느껴진다. 심지어는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더라도 그 사람의 미세한 감정선이 눈에 선하게 보인다.
(참고로 나는 나 스스로 촉이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보편적인 사람보다 타인의 행동에 집중하는 편일뿐.)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아동의 치료 보조를 한 적이 있다. 아이마다 치료 내용이 다르지만, 고지능 자폐 스펙트럼 아동에게는 감정과 그에 들어맞는 표정을 학습시키는 경우가 있다.
이 치료 내용을 진행할 때마다 나는 인간이란 정말 감정적으로 복잡한 동물이구나, 라고 느꼈다.
주로 슬프면 우는 표정을, 그리고 행복하면 웃는, 직관적인 표정을 보여줬는데, 맥락에 따라 그 표정이 바뀐다는 건 알려줄 수가 없는 사회적 영역이었다.
당신은 감정을 어떻게 표출하는지 궁금해진다.
마음 아리도록 슬플 때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너무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를 때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나는 고2 때 일어났던 엄마와의 사건으로 사람이 느끼고 있는 것과 표출하는 감정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던 것 같다.
우리 엄마는 참으로, 정말, 해독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많은 한국 여성이 그렇듯) 속에 화가 많아서 그 어떠한 부정적 감정을 느끼더라도 모두 화로 표출되었다. 억울해도 화를 냈고, 짜증 나도, 실망해도, 죄책감이 느껴져도, 슬프더라도- 화난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사실은 화가 난 게 아니고, 전혀 다른 부정적 감정이거나 그들의 조합이었다.
그걸 어떻게 나는 구분할 수 있는지 당신은 궁금할 것이다.
일단, (막연한 말이지만) 촉, 그러니까 SQ(Social Quotient; 사회적 지능)와 EQ(Emotional Quotient; 감정적 지능)가 좋아야 한다. 그렇다, 엄청난 추정이지만 나는 나름 SQ와 EQ가 높은 사람인 것 같다.
IQ가 더 높았으면 좋았으련만….
두 번째로, 대상이 되는 그 사람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해야 한다. 이 사람은 어떤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근거가 그동안 많이 쌓여 있어야 하고, 내 머릿속에 데이터를 쌓으려면 언제나 그 사람을 자세히, 편견 없이 관찰하고 살펴야 한다.
나는 평소에 모든 사람을 이러한 방식으로 대하는데, 아마도 그래서 사람들이 내게 촉이 좋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내 남편은 나더러 너무 피곤한 인생을 산다고 했다….)
하여간, 우리 엄마의 섬세한 감정선을 구분하려면 엄청난 내공이 필요했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엄마도 자신이 화난 거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감정을 분별해 내기가 더 어려웠다.
고2 때 일어났던 사건은 이러하다.
엄마가 유방암에 걸려서 치료하러 남편(우리 아빠)과 두 딸을 아프리카 가나에 두고, 몇 개월 동안 혼자 한국에서 병원 생활을 견뎌야 했다. 가나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전 화를 읽어보시길 바란다.
나는 나대로 초등학생이었던 동생과 아빠를 챙기며, 알아서 학교생활을 이어갔었다.
우리 집에서 일하는 현지인이 음식을 비위생적으로 만들어서 한 달에 한 번꼴로 나와 동생이 식중독에 걸리는 등, 정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찌저찌 몇 개월을 서로 잘 버텨내고 엄마는 다시 가나로 돌아왔다.
다시금 서로의 존재에 적응하던 중, 내가 공부인지, 독서인지, 하여간 무언가를 내 방에서 하고 있던 와중에 엄마가 내 방으로 와서 서로 몇 마디가 오갔는데… 뭐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우리 엄마가 급작스럽게 감정이 북받쳤는지 오열하며 내게 언성을 높였다.
당황스럽게시리….
엄마가 말하는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엄마가 힘들게 혼자서 치료받고 온 거 모르냐, 가나에 자꾸 가려고만 한다고, 의사 선생님이 정신 차리라고 소리 지르기까지 했다, 그런데 네가 그러면 엄마가 뭐가 되냐, 너까지 왜 그러냐.
한 줄 요약을 하자면, 나를 약간 (사실 많이) 탓하는 거였다.
나는 엄마가 이렇게 엉엉 우는 건 처음 봤기 때문에 당황스러웠지만 티 내지 않고, 억울함에 눈을 부릅뜨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빠가 뒤에서 그만하라며 엄마를 불러서 엄마는 울면서 내 방을 나갔고, 나는 갑작스럽게 봉변당한 것 같아 황당하고 억울하고 속상할 뿐이었다.
그런데 다행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하면서 억울함이 조금씩 풀렸다.
결혼 전의 우리 엄마는 원래 다른 은행에서 스카우트를 할 정도로 잘 나갔던 은행원으로, 건설대기업에 다녔던 우리 아빠보다도 돈을 더 잘 벌었다.
그런데 결혼 후에 나를 낳고, 아빠를 따라서 가나로 이주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그때부터 평생 주부 생활을 하게 되었다.
가나에 엄마를 위한 건 아무것도 없었고, 시간, 정성과 마음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은 나뿐이었다.
5년 뒤에 내 동생이 태어났지만, 엄마가 자신의 삶을 포기한 이유는 여전히 나, 큰딸이었을 거다. 물론 무의식적인 생각이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엄마의 희생, 즉 삶의 가치는 오르락내리락했을 거고, 엄마가 유방암에 걸려서 힘들게 치료를 받아야 했던 상황도 어찌 보면 나, 그러니까 큰딸을 위해 그런 것으로 생각했을 거다.
그런데 큰딸이 기대를 살짝 저버리니, 14년 동안 쌓여 있었던 엄마의 억울함, 불안감과 분노가 ‘화’로 터져 나온 게 아니었을까.
이렇게 ‘화’ 뒤에 숨겨진 엄마의 더 복잡한 감정을 헤아리고 나서는 나도 마음이 풀렸었다.
이해가 되고, 공감이 갔다. 나 같아도 오열했을 것 같다.
이와 같이, 나는 평소에도 기분이 나쁠법한 일이 생기면 상대방의 표정 뒤에 숨어버린 의도나, 그 행동을 자아낸 복잡한 감정을 헤아리려고 노력한다. 그러고 나면 나도 개인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기도 할뿐더러, 알고 보면 그 사람이 꼭 나쁜 사람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물론 의도가 불순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타인에 대해 이렇게까지 생각한다고?-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돌아, 돌아, 나를 위한 일인 것 같다.
음… 내 이야기를 다 했으니, 이제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떠한가?
어떤 감정 표현이 익숙한가?
그리고 타인의 감정 표현을 어떠한 방식으로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가?
나와 지금껏 대화를 나눈 당신이 무척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