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죄가 없다, 그럼 누가 죄인인가

by 나나용

나는 아이가 없는 기혼 여성이기 때문에 아이와 양육에 관한 생각을 글로 적는다는 게 매우 조심스럽다.

“애 낳아 보면 다르다”라는 말 앞에서는 더 이상 나는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도 만약 입양하게 된다면 (낳을 생각은 없다) 나름 잘 키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 생각이 흐려진다.


나의 생각이 다소 거칠 수 있지만, 생각을 드러내야 다른 이의 사상도 알 수 있게 되고,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면 당신이 잡아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가 자란 아프리카 가나에서는, 음식점에서 주문하고 나면 음식이 나오기까지 약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했다. 음식이 왜 안 나오냐, 따져도 음식이 만들어지는 속도가 딱히 빨라지지 않을뿐더러 기분만 나빠지기 때문에 침착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닭을 잡아 오나 보다, 소고기를 사러 갔나 보다, 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가족 네 명이 음식점 테이블을 둘러앉아, 서로의 얼굴을 자의로든, 타의로든, 한 시간 넘게 바라보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그 시간이 참 중요하고 좋았다. 늘 책을 한 권 챙겨가서 엄마, 아빠와 동생이 이야기하는 걸 한 귀로 들으며 눈으로는 책을 읽었다. 대화에 끼어들고 싶을 때는 불쑥불쑥 한마디씩 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다 보면 음식을 든 종업원이 주인공처럼 주방에서 나타나곤 했다.

우리 아빠가 예전에 말하기를, 음식이 느리게 나오는 덕에 가족끼리 대화를 많이 하게 될 수밖에 없었단다.


며칠 전에 동네에 새로 생겼다는 돼지갈빗집을 방문했다.

오른쪽과 왼쪽, 양쪽에 테이블이 하나씩 더 있었고 앞쪽으로는 테이블이 4개 정도 더 있었다. 모두 가족 단위로, 어린아이가 있는 손님이었다.


돼지갈비를 굽고 먹는 동안 귀가 정신없이 시끄러웠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굴었다고 생각했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는 한두 명뿐.

오히려 아이를 조용하게 만들려고 틀어놓은 여러 대의 아이패드와 휴대전화의 전자음이, 술이 들어간 부모들의 목소리와 뒤섞여 돼지갈빗집을 빈틈없이 혼란스러운 곳으로 만들었다.


오른쪽 테이블에 앉은 아빠가 세 살 정도로 보이는 아기용 의자에 앉은 아이에게 “땡땡아, 맥주 하나 시켜봐!”라고 말하고, 아이는 또박또박, 미성숙한 목소리로 “맥주 하나 주세요오!!!”라고 당차게 소리 지른다. 아이의 부모와 일행은 깔깔 웃고, 아이는 칭찬받은 고래처럼 행복해하며 자신 앞에 놓인 휴대전화에 다시 집중한다.


왼쪽 테이블에 앉은 유아동 네 명 중 두 명은 한쪽에 놓인 아이패드 화면 속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시청하지 않고 어딘가 배고픈 얼굴로 아빠의 안색만 살핀다. 아빠는 가게 테이블 끝에 기종이 다른 휴대전화 3개를 가지런히 펼쳐놓고 같은 게임을 돌리고 있다. 자신만을 바라보던 어린 아들의 간절한 두 눈을 힐끗 보고는, “아빠 1분 남았어.”라고 말하고는 음식이 나왔는데도 휴대전화 세 개에 계속해서 집중한다. 네 아이의 엄마는 손으로 꽃받침을 만들고 그 위에 얼굴을 살포시 올린 채, 말없이 남편을 지긋이 쳐다본다. 그 엄마도 똑같이 배고파 보였다.


아마도 그 엄마가 네 명의 아이를 한 번에, 손쉽게 다스릴 방법은 아이패드뿐이었을 것 같다. 결국 이 굶주린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먹이- 그러니까, 관심을 주는 건, 역시 아이패드뿐이다.


평소에 나는 노키즈존(어린이 제한 구역; No Kids Zone)이 있으면 그곳으로 간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곳이 있으면 그곳은 살짝 피해 간다. 한때는 시끄러운 아이가 싫어서 그랬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돼지갈빗집을 얼른 빠져나오고 나서 방문한 식당에 있던, 소주 탓에 혀가 꼬부라진 배불뚝이 청년이 계속 말한 것처럼- 아이들은 죄가 없다.


아이들은 죄가 없고, 아이들은 죄가 없다.

(그렇다면 누가 죄인일까.)


죄 없는 아이가 왜 죗값을 치러야 하는 건가.

왜 노키즈존이 생겨야 했던 건가. 아이들도 전망 좋은 카페, 좋아한다. 고급 음식, 맛있는 빵, 신기하고 새로운 것도 모두 어른과 똑같이 좋아한다. 그런데 왜 풍부한 경험을 시켜줘야 하는 우리 사회의 새싹들이 오히려 ‘힙’하고 ‘고급진’ 경험일수록 더욱 배제당해야 하는 걸까.


노키즈존이 아니라, “노방치존”이 생겨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부모가 아이를 방치하면 안 되는 존”을 말하는 거다.


가르칠 게 있으면 정확하게 가르치고, 혼낼 게 있으면 따끔하게 혼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풍부한 사랑과 배려에 기반한 예절 교육은, 아이에게 부모만이 선물할 수 있는 사회적 날개를 등에 달아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은 아이는 규율을 충분히 설명해 주고 나면 잘 따른다. (임상심리학을 전공하며 아동을 다루는 실습을 많이 했던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식당에서 밥 먹는 동안 디지털 기기가 없더라도 조용히, 똑바로 앉아서 가족과 식사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


Screenshot 2025-10-15 at 10.30.39 AM.png 1995년, 36개월 때 이집트 나일강 위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는 모습. 아마 이때도 한 시간 넘게 기다렸을 거다.


조용히 해야 하는 카페에 대한 규율을 충분히 숙지시킨다면,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지 않고 보호자와 전망을 함께 구경할 수 있다. 그 능력을 키워 줘야 할 뿐이다. 부모가 아이의 자제력과 내면을 키워주려고 애쓰고, 아이가 키워지는 동안 주변 사람은 관대한 마음으로 기다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를 관심과 사랑에서, 대화에서, 배려에서, 경험에서, 그리고 교육에 있어서 너무 굶주리지도, 배를 불리지도 말자.


두 상태 모두 괴로우니까.

당신은 아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만약 아이를 키운다면, 무엇보다 대화하는 법을 가르쳐주기를 바란다. 물론 디지털 기기가 아닌, 부모와 하는 소통법 말이다. 생각하는 법, 스스로 해결하는 법, 그리고 홀로 서서 성장하는 법을 알려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만약 나와 같이 노키즈존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꼭 기억하길 바란다.


아이는 죄가 없다.

나를 거슬리게 하는 행동을 비록 아이가 하는 것일지언정-

아이는, 정말로 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