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게 약이… 맞겠지? 아닌가?

by 나나용

내가 자란 아프리카 가나에는 개미가 많아서 음식을 실온에 보관하지 못한다. 통에 들어 있어도 입구를 파고들고, 뜯지 않은 두꺼운 설탕 봉지도 개미가 날카로운 이로 뜯어 버린다. 그래서 간장, 마늘, 과자 등의 모든 식용품은 냉장하거나 냉동했었다.


30분만 식재료를 내놔도 개미가 냄새의 원천지를 향해 줄을 지었다.


가나에서 태어난 내 동생은 아기 때 늘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사실 식사라기보다는 촉감 놀이에 더 가까웠다.

식당에서 둘러보면 엄마들이 초등학생도 먹여주던데, 우리 엄마는 내 동생이 바닥을 요구르트로 색칠을 해도 놔두는 스타일이었다.


그 양육 방식에 의해 나는 만 세 살 때부터 스테이크를 혼자서 썰어 먹었다면, 내 동생은 네 살이 되도록 음식을 입에 조금 넣고, 바닥에 대부분을 쏟고, 나머지는 몸에 발랐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엄마는 참 대단한 멘탈을 가졌다.


내 동생이 돌 전까지는 플레인 요구르트에 푹 빠졌었다면, 만 두 살이 됐을 때는 프링글스 과자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다. 바스락 거리는 식감- 아니, 촉감, 그리고 자극적이게 짠 그 특유의 맛에 빠졌던 내 동생이 행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26년간 나 혼자 곱씹던 사건인데, 이 글을 읽을 내 동생이 나름의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7살이었던 나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별 얘기는 아니니까 너무 기대하지는 말길 바란다.)


사건은 이러하다. 방에서 프링글스 과자로 촉감 놀이 중인 내 동생과 놀아주고 있었다. 그날도 과자를 온 사방에 묻혀 놨고, 시간이 지나니까 역시 길이가 3mm 정도 되는 작은 개미가 하나둘씩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 말하는 걸 잊은 정보가 있다. 내 동생은 작은 벌레를 악착 같이 잡아 죽인다.. 큰 벌레는 무서우니까 도망가는데, 작은 벌레는 아기 때부터 매정하게 죽였다.


하여간…. 개미는 그저 맛있는 냄새가 나서 얼른 온 거였을 텐데… 안타깝게도 내 동생이 선착순으로 도착한 개미를 발견했다. 영미권 속담 중에 일찍 일어난 새가 지렁이(?)를 먼저 잡아먹을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일찍 일어난 지렁이가 먼저 잡아먹힌다는 말이 언제나 더 와닿았다.


내 동생은 동료들보다 훨씬 일찍이 도착한 부지런한 그 개미의 사정은 생각하지도 않고, 과자와 침이 잔뜩 묻은 손바닥으로 개미를 착- 쳐서 바닥과 조그마한 손 사이에 압사시켰다. 그러고는 손바닥에 묻은 과자(와 죽은 개미)를 맛있게 먹으며 웃었다…. 해명을 하자면 동생이 개미를 먹으려고 했던 건 아니고, 손바닥에 개미가 붙었다는 생각을 못 하고 과자를 먹은 거다. 아무래도 두 살짜리의 인지능력은 성장 중이니까…. 그런데 어우… 지금 생각해도 너무 속이 울렁 거린다. (내가 비위가 보기 드물게 약하다…….)


나는 손바닥에 묻은 과자(??)를 먹으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동생에게 억지웃음을 지어줬다. 그러고는 뒤로 돌아서 여러 번 헛구역질을 했다. 동생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헛구역질하는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뭔가 잘못 됐다는 것을 눈치챌 것이기 때문에 선의의 거짓말을 한 것이다.


동생아, 너는 개미도 먹어본 사람이다. 그것도 독하디 독한 아프리카 가나 출신의 개미를….
그러니 너는 앞으로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무서울 게 전혀 없다는 걸 잊지 말아라.
다시 말하지만, 너는 갓 죽은 개미도 먹었다.


문득, 이렇게 나만 알던 비밀을 폭로해도 되는가 싶다.

그렇지만 나만 아는 것은 내가 없어지면 같이 없어지는 것이니까, 말해주는 게 좋다는 나름의 핑계를 대본다.


이 일은 선의의 거짓말을 하길 잘했던 일화지만, 반대로 선의의 거짓말을 못해서 후회했던 일도 있었다.

배경 설명을 먼저 하자면, 내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쭉 다닌 학교에는 60개 이상의 국가에서 온 학생이 있었다. 학교 통계에 따르면, 학생들이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의 수는 70가지가 넘었다.


이러한 다양성과 국제성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 학교는 해마다 “International Festival”, 그러니까 국제 페스티벌을 했었다. 이 날에는 모든 학생이 자기 나라의 전통 옷을 입고 등교했고, 국가 이름의 알파벳 순으로 전교생이 줄을 지어 캠퍼스를 걸으며 퍼레이드를 했다. 퍼레이드가 끝나면 각 나라의 부모님이 합심해 준비한 음식을 각자 나라의 부스에서 맛볼 수 있었다. 음식 부스가 60개 정도였으니, 모든 음식을 다 먹어보기도 힘든 규모였다. 제일 맛있는 부스는 한국, 이탈리아, 프랑스, 레바논, 아프리카 쪽에서는 가나, 뭐… 예상 가능한 곳들이었고 제일 맛없는 곳은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이것도 쉽게 예상 가능하다.


한국 부스에는 주로 잡채, 김밥, 파전, 불고기 등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외국 친구들이 “Korean pancake”라고 부르며 환호를 하던 해물 파전은 엄마들이 바로바로 부쳐서 일회용 접시에 얹어 주었고, 김밥도 계속 싸가면서 바로 썰어서 접시 위에 몇 개씩 얹어 줬다. 김밥은 이미 K-pop, K-culture라는 단어가 있기 10년 전에도 우리 학교에서만큼은 폭발적으로 인기가 좋았기 때문에, 한국 음식 부스의 줄은 언제나 길게 서 있었다.


내가 중3 때의 일이다. 그 해에는 한국 부스에서 소고기 김밥을 준비했었다. 부스 뒤에 선 한국 엄마들은 분주했고 나는 어떤 이유였는지 생각나지는 않지만 한국 부스 앞을 할 일 없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지나가던 동남 아시아권의 어떤 학생 아버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자신의 일회용 접시 위에 있는 소고기 김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다소 격양된, 스리랑카 억양으로 추정되는 발음으로 내게 물었다.


“이거 너무 맛있다, 이 음식 이름이 뭐라고 했지?”

“이거요? 이건 ‘김밥’이에요!”

“와, 너무 맛있어…! 이게 중간에 어떤 재료가 들어간 거야?”

“음, 시금치, 당근, 소고기, 계-“

“소고기...!?”


학생 아버지가 눈을 뻐끔거리며 입을 작은 o자로 만들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아차- 싶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하며 급하게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그 아버지가 “헉- 나 이제 죽었다” 하는 표정으로 뒷걸음질 치며 도망치듯 인파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동남 아시아권인 데다가 발음도 스리랑카 쪽인 것을 조합해 보면, 소를 신성하게 여겨서 소고기를 먹는 게 금기되는 힌두교 신자였던 모양이다….


아니, 아저씨!!! 못 먹는 게 있으면 미리 물어보셨어야죠!


괜히 내가 죄책감 들게 말이야….


나중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엄마에게 말하니, 엄마는 아쉬움 반, 안타까움 반이 뒤섞인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그냥 돼지고기라고 하지 그랬어~”


아니- 근데 내가 그 사람이 힌두교일 줄 알았나!!
난 몰랐으니까 아무 생각 없이 솔직하게 말했지!!!!


하지만 왜 죄책감은 내 몫인가….

그 아저씨의 헉- 하며 살짝 뒷걸음질 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여튼 이 두 사건- 내 동생이 개미를 먹은 일과 힌두교 아저씨에게 소고기를 드신 거라고 친절하게 일러준 일이 내게 나름의 충격을 안겨줬다. 가끔 내 머릿속에서 소환해 사건의 전말을 굴려볼 정도로 아직 내게 생경한 일들이다.


모르는 게 약일까? 아님 아는 게 힘일까?

말을 할지, 말지 정하는 입장이라면 그 판단이 늘 너무 어렵다.

그래도 나는 개인적으로 모르는 것보다는 알고 싶어 하는 편이다. 알게 된 사실이 나를 괴롭게 할지언정, 모르는 게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는 불안 요소이다.


당신은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차라리 모르고 사는 게 속 편하다고 생각하는가?

그 힌두교 아저씨한테 돼지고기라고 말해줬으면 어땠을까…? 뭐가 달라졌을까?

아마 그 소고기 김밥이 맛있다며 엄청나게 리필해서 더 많이 먹지 않았을까….


참…. 이 또한 결국 딱 떨어지는 답이 없는 문제인 것 같다.

나도 이런 애매한 결론은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렇게 글을 끝낸다.


“그때그때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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