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 거야~

by 나나용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이것만으로도 머릿속에 윤도현의 시원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면, 당신은 내 또래인 게 분명하다.


만약 이 노래를 모른다면……

음… 아마 나보다 일찍 태어났거나, 아주, 아주 나중에 태어난 걸 거다.


이 노래가 처음 발매됐던 2006년 당시, 나는 가장 무서운 중2병을 퇴치하고 다시 정상인으로 거듭나는 과정 중인 중3 학생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만 하면 내 날개가 저절로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던 시절이다.


찍기 싫다며 억지로 찍은 사진도 나중에 문득 생각나, 들여다보면 불과 몇 개월 안 되었어도 저 때가 지금보다 예쁘고 젊어 보인다. 비슷한 맥락에서, 학생 시절 때는 그렇게 모든 게 짜증스럽고 싫었는데… 막상 어른이 되고 나니 다시금 아이가 되고 싶은 이 마음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역시 그 무엇에도 완전히 만족할 수 없나 보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의사- 특히 외과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게 끝이 아니라, 의사 면허를 딴 이후에는 오지 어딘가에 들어가서 봉사하며 사회적 기업을 꾸리겠다는 원대한 꿈을 매우 구체적으로 세웠다.

물론, 지금의 나는 의사 면허가 없다.


어렸을 적 꿈을 실현하겠다며, 이제 와서 의사 면허 취득에 도전하기에는 현실적으로 글렀다(사실 세상에 안 되는 건 없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나의 출판사 ‘나나용북스’를 통해서 본의 아니게 일종의 사회적 기업 아닌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기는 하다. 일단 사회적 기업이 된 것처럼 수입이 없다. 게다가 예비 독자에게 자꾸만 대표가 내 책을 선물한다. 물론 내가 대표다. 대표도 영리인지 비영리인지 헷갈리는 사업이다.


어렸을 적 꿈을 절반은 이룬 거라고 쳐야 하는 걸까?


헛소리를 집어치우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외국에서 자란 나는 의대를 생각하며 대학에 입학했다. 의대에 가려면 당연히 학부 기간에 꿈이 흔들림이 없어야 했으며, 성적과 여러 가지 대외 활동에 매달리면서 의대를 준비했어야 한다. (참고로 외국 의대는 대학원이다.) 그러나 나는 학부 생활 동안 우울 속에서만 지냈다. 물론 핑계는 아니다-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는 상황이었어도 미국에서 의대에 가는 것은, 시민권이 있었어도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었다.


하여간 내가 우울했다고 얘기를 하면, 가끔 사람들은 “왜 우울했어?”라고 묻는다.

사실 이유는 별거 없이, ‘그냥’, 그냥 우울해서 우울한 거였다.

피곤한 데 이유가 없을 수 있는 것처럼, 우울한 데 이유가 없을 수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주요 우울장애의 낌새가 보이긴 했는데, 대학이라는 새로운 환경과 압박 속에서 우울 장애가 제대로 발현했던 모양이다.


어찌저찌, 힘들게 졸업한 대학 생활의 끝은 더 암울한 미국에서의 직장 생활로 이어졌다. 일 년이 지나서는 취업 비자가 박탈되었다는 통보까지 날아와서 한 달 안에 미국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더욱더 우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한국에서는 건강보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의료비 때문에 엄두도 못 냈던 정신과를 바로 찾아가서 내 상태에 맞는 약을 처방받아서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아니- 사실 지금도, 정신질환이 있다고 하면 흔히 “미친 사람”을 연상한다.

어딘가 나사가 빠진 사람을 떠올리고, 가족이나 지인은 남들의 시선을 중요시하며 쉬쉬하려고 한다.


나도 쉬쉬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편견 있는 시선을 만드는 게 ‘남’이 ‘나’가 아닐까?


사실 남들은 아무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아- 물론 반대로 편견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지만은 않다는 거다.


나는 4주에 한 번 정신과에서 진료받고, 매일 약 한 움큼씩 먹어도 아무도 내가 정신 질환자인지 모른다.

그만큼 보기에 아주, 매우 멀쩡하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나름) 꽤 많다.


내가 만약 내가 약을 먹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증상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날아다니는 나비와 같아 보이더라도, 곧 애벌레 시절보다도 못한 날개 꺾인 나비와 같아질 수도 있다.


인생 경험이 부족했던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고등학교 졸업만 하면 내 앞길이 저절로 열리는 줄 알았다.

막상 성인이 되니, 정신질환을 포함한 별의별 문제가 내 발목을 잡는 덕에 깨달았다.


아- 저절로 세상을 날 수는 없구나.


또 날개를 폈다고 해서 모두가 나는 것도 아니구나.


날개를 활짝 펴는 것조차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



난다는 건, 피나는 노력을 했다는 것과 같다는 걸 알게 됐다.


훨훨 날기 위해서 가끔 나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다는 걸, 할 수 있다는 걸 굳게 믿는 것도 좋지만 그게 가끔은 자만일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상황에 따라 스스로 자존심을 꺾을 필요도 있고, 시선을 달리 바꿔야 할 때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이제 최대한 도움을 받으려고도 하고, 주려고도 한다.


그리고 약을 먹어야 한다고 하면, 약을 먹는다.

치료받아야 한다고 하면, 치료받는다.

그리고 내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으면, 성장하려고 애쓴다.


이렇게 스스로 노력하며 도움까지 받다 보면 언젠가 날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다.


나는 당신은 이미 날고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직 나처럼 뜰락 말락, 바닥에서 발을 완전히 떼지 못하고 있다면- 절대 꿈을 잃지 말자.

우리의 때가 올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믿다 보면…


당신도, 나도 언젠가 날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