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은 무슨, 나는 글렀어

by 나나용

방금 찍은 내 책상이다.


나는 한때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걸 꿈꿨다…. 웃어도 된다.


한참 미니멀라이프 열풍이 불었을 때, 역시 나는 그 트렌드에 전혀 끼지 못했다.

언젠가 청소 전문가를 만난 적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정리가 잘 되나요, 라고 나는 물었다.


그분은 내게 자주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다 버려야 한다고 딱-! 잘라서 말씀해 주셨다. 정리를 잘하려면 미니멀해져야 하고, 미니멀하려면 조금이라도 필요 없는 건 다 버려야 한다고 하셨다. 아… 역시 다 버려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2주 전에는 내가 운영하는 출판사, ‘나나용북스’로 부산콘텐츠앤북페어에 참여했다.

책 구매자에게 즉석에서 영수증 종이에 인화되는 사진을 찍어 그 사진을 플라스틱 케이스에 깔끔하게 넣어주는 이벤트를 준비했다. 구매자가 케이스 위에 사인펜으로 날짜와 오늘의 소감 등을 쓸 수 있게끔 했다.


매일이 기념이니까.


99%의 구매자는 기념할 수 있는 사진이 생겼다며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분은 이벤트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말씀하셨다.


저는 미니멀리스트라서 이런 건 필요 없어요.


아, 역시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기에는 글렀구나….


내 방에 전시된 오브제 중에 작은 크리스털이 하나가 있다. 미니멀리스트가 봤을 때 아마 버려야 할 물건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나는 이 크리스털이 좋다. 투명한 유리에 반사되어 나오는 무지갯빛에 매료되어 하루 종일 이리저리 굴려 보며 놀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만 5살 때, 그러니까 1998년도에 아빠가 가나 카지노에서 딴 돈으로 이탈리아 여행을 갔었는데, 거기 베네치아에 있는 어느 유리 공예 관광지에서 크리스털이라는 걸 처음 봤다. 다소 어두운 지하에서 유리 공예가 아저씨가 막대기를 불어 화병을 금세 만들어 냈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혹시 가나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연재의 이전 화를 살펴보시기를 바란다.

그곳에서 엄마, 아빠가 곰돌이 모양의 작은 크리스털 오브제를 사주었다. 행복했다.


출처: Freepik | 내가 기억하는 크리스털과 최대한 비슷한 사진을 찾아봤다.


나는 이 곰돌이 크리스털을 평생 간직하고 싶었을 거다. 일정이 끝나고 호텔로 돌아왔을 때, 곰돌이를 “잘 두려고” 일부러 호텔방에 비치된 작은 데스크의 얇은 서랍에 고이 넣어놨다.

엄마와 아빠는 아마 피곤함에 그 크리스털의 존재를 잊었던 모양인지, 크리스털의 행방을 내게 묻지 않았다. 나와 돌쟁이였던 내 동생까지 데리고 자유여행을 다니는 거였으니, 아기부터 재우고 쓰러져 자지 않았을까 싶다.


다음 날, 아침부터 또 여행 일정을 소화했을 거다. 그리고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서 호텔에 돌아와, 짐을 쌌을 거다. 그때 우리 엄마는 갑자기 크리스털을 사줬던 게 생각났나 보다. 나에게 크리스털을 어디에 뒀냐고 물었다. 나는 재빨리 데스크 서랍을 열었다. 그런데, 어랏-


서랍 안에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텅텅 비어 있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엄마는 여기에 넣었냐며, 물건을 아무 데나 두면 어떡하냐며 나를 다그쳤다.

아빠는 오전에 방을 청소한 호텔 직원이 가져간 것 같다며 혀를 끌끌 찼다.


나는 곰돌이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마음이 많이 상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만 10살 정도 됐을 때, 2002년 당시에 가나의 유일한 쇼핑몰이었던 ‘코알라 쇼핑몰(동네 3층짜리 이마트 크기다)에서 엄마에게 크리스털을 사드렸다.


내가 엄마 생일 선물을 사고 싶다고 했더니, 엄마가 그러라며 우리 운전사였던 미스타 알베트(Mr. Albert)에게 넉넉한 금액을 쥐여주고 나를 데리고 코알라 쇼핑몰에 가라고 시켰다. 내가 선물만 고르면, 우리 운전사가 엄마가 맡긴 돈으로 물건을 사면 되는 거였다.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어차피 모든 곳을 보호자와 동행하여 차로 갔어야 해서 돈을 쓸 곳이 없었다. 그래서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부모님께 용돈을 규칙적으로 받아본 적이 없다. 필요할 일이 있으면 엄마가 돈을 충분히 챙겨줬고, 나는 언제나 남은 돈을 엄마에게 돌려드렸다.)


우리 집에서 코알라 쇼핑몰로 가는 길은 차 타고 약 1시간 걸렸지만 나는 가는 내내 설렜다. 코알라 쇼핑 몰에 들어가서 눈에 바로 띄는 건 입구 안쪽 유리장 속에 자물쇠로 잠겨 있는 각종 크리스털 오브제였다. 한참 동안 서서 구경했다. 내 보호자로 나를 따라온 미스타 알베트는 얘가 뭘 그렇게 뚫어지게 보나 싶었을 거다.

나머지 쇼핑몰의 물건도 꼼꼼히 살폈지만 나는 크리스털 오브제가 가장 끌렸다.


또 유리장 앞에서 크리스털을 하나씩 관찰했다. 지금 생각하면 미스타 알베트가 아주 지루했을 것 같다. 내 기억에 유리장 안에 앞발을 들고 있는 말이 있었고, 백조도 있었던 것 같고… 하여간 그중에 나는 제일 작은, 가격이 나름 저렴하다고 생각한 쥐 크리스털을 골랐다.


사실 엄마는 쥐를 정말 극도로 무서워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쥐띠라서… 좋아할 거라는 생각에, 아주 큰 뜻을 품고 쥐 크리스털을 골랐다.


아직 순수했던 시절이다.

그 유리장에 정말 오랫동안 진열됐을 크리스털 쥐가 바깥 세상으로 드디어 나와 내 손 위로 올라왔고, 미스타 알베트는 나 대신 계산을 마치고 함께 차에 타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엄마에게 크리스털 쥐를 건넸을 때, 엄마의 반응이 참 기억에 남는다.

박장대소를 하며, “엄마 쥐 싫어하는데, 쥐를 사 왔어!?”라며 그래도 예쁘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이 선물을 굉장히 흥미롭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도 소중했는지, 엄마의 유품을 정리할 때 잠겨 있는 장롱에서 그 쥐가 나왔다. 그 장롱은 현지인 직원이 슬쩍 훔쳐 가면 안 되는 귀중품을 보관하는 금고 같은 곳이었다.


그렇게 엄마 돈으로 엄마에게 선물했던 크리스털 쥐가 내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 쥐를 다른 유품과 함께 캐리어에 넣고 가나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전시조차 하지 못하고 엄마의 유품이 든 상자 속에 보관하기만 했다.


그게 벌써 9년 전이다.


그런데 3년 전에 이사할 때 엄마의 유품을 다시 열어 봤고, 크리스털 쥐를 다시금 손에 들어 빛을 비춰보게 됐다. 이번에는 내 시야에 가장 잘 보이는 데에 올려 뒀다. 그리고 그동안 같이 살았던 내 동생이 독립하게 되었을 때, 내 동생이 쓰던 방을 내 서재로 꾸미게 되었고 크리스털 쥐는 내 새로운 책상 옆 작은 책장으로 옮겨졌다. 각기 의미가 다른 오브제와 함께, 나의 시선과 관심을 며칠에 한 번씩 받았다.


그런데 작년 겨울에 오브제를 살피는데 크리스털 쥐가 없는 거다. 나는 방바닥을 다급하게 살폈고 곧 쥐는 구석에 뒤집힌 채로 발견되었다. 안심하며 쥐를 들어 올렸는데, 웬걸, 귀가 한쪽이 없어진 것이다. 본드로 본체에 붙은 귀 부분이 떨어진 것으로 보였다.


나는 온갖 난리를 피우며 방을 뒤졌다. 남편한테도 함께 찾아달라고 했고, 몇십 분을 찾았지만 귀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없나 봐”라며 남편에게 포기를 선언했고,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눈물이 나오기 시작하니까 멈출 수가 없어서 크리스털 쥐의 귀 한쪽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서른 살 넘게 먹은 여자가 엉엉 소리 내며 오열했다. 누가 보면 정말 큰 일이 난 줄 알았을 거다. 하지만 나에게는 정말, 정말 큰 일이었다.


문득문득 쥐의 잃어버린 귀가 생각나서 몇 번을 더 울고, 한 쪽 귀만 건사한 크리스털 쥐를 실수로라도 쳐서 떨어뜨릴 수 없는 위치로 옮겼다.


그렇게 두어달이 지났다. 북페어 일정으로 나와 남편이 하루 종일 집을 비워야 하는 상황이 생겼고 내 동생에게 키키, 쿠파와 체다(우리 고양이, 강아지 등골 브레이커들)를 우리 집에 와서 낮 동안만 봐달라고 부탁했다.


북페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남편이 갑자기 손에 무언가를 들고 내게 오면서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귀…!

나는 다시 못 찾을 줄 알았던 걸 찾았다는 감동에 또 엉엉 울면서 작은 크리스털 조각을 건네받았다. 내 동생이 굴러다니는 걸 찾고서는, 크리스털이 어디서 떨어진 건가 싶어 남편 책상 위에 올려놓았나 보다.


나는 벅찬 마음으로 쥐의 한 쪽 귀를 다시 붙였다. 쥐는 아직 안전한 곳에 잘 전시되어 있다.



이런 내가 언젠가 미니멀 라이프를 선망했다니….

쥐의 귀 한쪽을 못 찾겠다고 오열하는 사람이…!

(웃어도 된다....)


이제는 그냥 나 자신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모든 것에 의미 부여해서 못 버리는 사람, 그게 나다.


내가 미니멀리스트는, 무슨.


무소유??

아니-? 나는 그냥 유소유(?)로 살련다.


맥시멀 라이프도 나름 매력있다.

갖고 싶은 거를 다 가져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렇다, 맞다, 합리화하는 중이다.)


자, 자. 다들 잔, 캔, 병-! 뭐든 들고.

맥시멀 라이프에, 건배…!

캬아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