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모를 수 있지

by 나나용

나는 어린 시절을 아프리카 가나에서 보내며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국제학교를 다녔다. 한 학년에 있는 학생이 40명을 넘지 않게 통제되었고 (아무리 많아도 30명정도 있었다), 같은 학년의 친구들은 세계 각국에서 와서 우리 학년에 있는 학생 국적의 수만 20개국이 넘었다. 유치원부터 고3까지의 학생 수를 더해도 400명이 채 안 되는 학교였는데, 학생들이 대표하는 국적의 수는 300개 국가가 넘었다.


IMG_17D2E8C82879-1.jpeg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반(학년) 사진. 스누피 원피스를 입고 있는, 유일한 동양인 여자 아이가 나다.


이렇게 다국적 문화의 친구와 서로 교류하다 보니, 우리는 무언가를 모르는 것에 대해 굉장히 관대한 편이었다. 모두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이 늘 전제에 깔려 있었고, 새로운 것 또한 엄청나게 쉽게 받아들였다. 예로, 내가 한식 도시락을 학교에 싸가곤 했는데, 김밥을 싸가는 날에는 하나라도 얻어먹으려고 친구들이 내 앞에 줄을 지었다. BTS가 유행하기 20년 전, 그리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 노래가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기 25년 전의 일이다. 엄마는 내 작은 도시락통과 함께, 친구와 나눠 먹을 김밥을 소풍 갈 때나 꺼낼만한 커다란 락앤락 통에 더 싸서 들려 보내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통에 김밥이 스무 줄은 더 들어 있었던 것 같다.


K-푸드라는 호칭이 생기기도 전에 자비를 들여서 한국을 알리는 데 선구적인 노력을 하신 우리 엄마다.


그때부터 우리 학교 학생들은 여러 재료와 고슬고슬한 밥이 생소하지만서도 맛있는, 까만 seaweed(해조)로 둘러싸인 이 음식은 sushi(스시)가 아닌, gimbap(김밥)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게 되었다. 그 후로 누군가가 김밥을 sushi라고 칭하면 “gimbap, not sushi!(스시가 아니고, 김밥!)”라며 서로 고쳐주곤 했다.


우리 학교 학생은 대부분 부모님의 근무지를 따라서 2~3년에 한 번씩 다른 나라로 이사를 갔다. (대부분 그래서 2개 국어는 기본이었고, 4개 국어를 자연스럽게 배워서 하는 친구도 흔했다.) 덕분에 학년이 바뀔 때마다 학년의 절반은 전학생이었다. 새로 전학해 온 친구가 김밥을 스시로 오해하면 내가 가만히 있어도, 김밥을 좋아하는- 아니, 사랑하는 다른 나라 친구들이 친절하게 “이건 한국 음식이고, 김밥이야”라며 알려줬다. 김밥을 스시라고 칭하는 게 한국인인 나에게 실례를 범하는 걸 알기에, 솔선수범 그 친구에게 교육 아닌 교육을 했다. 이 과정은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지속되었던 것 같다.



가만히 있어도 화제가 되던 우리나라. 역시 K-문화는 떡잎부터 달랐다.


재미있는 점은, 김밥이 한국 음식이라는 걸 알려주는 친구가 언제나 ‘모를 수도 있지’라는 태도로 설명을 해준다는 것이었다. 김밥이 뭔지 몰랐던 친구가 무안하지 않게 말이다. 그렇지만 그 친구가 알면서도 스시라고 우기거나, 이미 알려줬는데도 스시라고 말할 때는 다른 나라 아이들이 되레 기분 나빠하며 무안을 확- 주곤 했다. “너는 그것도 모르냐?”라며.


역시 어리다고 지혜가 없는 게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친구들이 웬만한 어른보다 ‘모르는 것’에 대해 현명하게 대처했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뭘 모를 때, 우리는 헉- 하고 놀라곤 한다. 속으로 놀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표정과 목소리로 서슴없이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너 그거 몰라!?”라며 민망하게 만들고, “그거 엄청 유명한데!!!”라며 트렌드를 못 따라가는 사람을 만들곤 한다. 최악은 무언가를 모른다고 무시할 때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자라온 환경이 다르다. 만약 (내가 생각하기에) 모두 알만한 무언가를 모른다고 무시하거나 괄시하고 무안을 준다면, 그 사람이 그동안 처했던 환경을 무시하는 게 되어 버리는 수가 있다.


남편이 누누이 말한다. 너는 아마 옛날에 태어났으면 독립투사를 했을 것 같다고. 부정하지는 않는다. 죽는 게 무섭고 고문당하는 건 훨씬 더 무섭지만, 우리나라가 빼앗긴 꼴은 못 볼 것 같다. 상상만 해도 열이 뻗친다. 그런데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건, 나는 재외국민이다. 한국에서 산 지는 이제 10년 남짓 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안타깝지만, 한국을 잘 모른다. 한글은 어찌저찌한다고 치고, 수학과 과학은 해외에서도 배웠는데, 한국의 역사를 제대로 못 배웠다. 게다가 역사에 취미가 정말 없어서인지, 결국 30살 넘게 먹도록 한국의 역사에 대해 무지하다. 초등학생도 아는 역사 상식조차 헷갈린다. 그리고 알더라도 나 자신을 의심한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 한국 역사 얘기가 나오면, 나는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하는 편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무시당할 수도 있다. 보는 앞에서 대놓고 말하지는 못해도, 집에 가서 가족에게 말할 수도 있다.


와, 그 사람은 기본 상식인 걸 모르더라?


내가 만 6살 때 일이다. 1998년이었다.

엄마와 잠깐 한국에 놀러 와서 외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도착하자마자 첫 식사를 하기 위해 외가 식구들과 식탁을 둘러싸서 바닥에 앉았고, 나도 끽해야 2년에 한 번 볼까 하는 가족들 사이에 끼어서 앉았다.

나는 그때 찌개를 중간에 하나만 두고 숟가락을 모두가 그 같은 찌개에 넣는 모습을 처음- 정말이지, 6살 평생에 처음 봤다. (가나에서는 엄마가 항상 국을 각자 따로 줬다.)

생소해서 안 먹고 있다가, 다들 찌개를 열심히 떠먹길래 나도 그 김치찌개의 맛이 궁금했다.


나에게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갈 것 같은 습관이 있다. 국을 먹을 때, 그 국물에 밥알이 섞이는 걸 아주 싫어한다. 그래서 절대 밥을 말아 먹지 않는다. 또 먹고 있는 쌀밥에 뭐가 묻는 걸 싫어한다. 반찬 양념이 밥그릇이나 남은 밥에 묻으면 안 된다. 그래서 국을 먹는 방법이 다소 특이하다. 밥을 숟가락으로 잘 떠서 살짝 뭉쳐지도록 밥그릇 벽면에 지그시 누른다. 그리고 국물에 살포시 담가서 국물이 밥에 스며들게끔 하고, 바로 입으로 직행한다. 만약 밥알이 한두 개 국물 안으로 떨어지면 그걸 바로 떠서 먹는다.


6살의 나는 찌개를 나눠 먹은 적이 없어서 암묵적인 규칙을 몰랐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른다. 애초에 그 문화를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에 나눠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그냥 안 먹는다.) 나는 늘 하던 대로, 숟가락으로 밥을 조금 떠서 잘 뭉친 다음에 나눠 먹고 있는 찌개에 살짝 넣었다.


그 순간에 느꼈다. 외가 식구들의 시선을.

그리고 엄마가 황급히 말했다.


아이고- 용재야! 아, 얘가 나눠 먹어본 적이 없어서 그랬구나-


나는 ‘이러면 안 되는 거구나’를 깨닫고 숟가락을 찌개에서 바로 뺐다. 그리고 창피함에 얼어 있었다.

그때 우리 외할머니께서 아주 나긋하고 여유로운 목소리로 “그릇 줄까~?”라며 일어나셔서 주방에서 국그릇과 국자를 가져오셨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국을 조금 떠서 내 앞에 놔주셨다.


내가 이 일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무지함을 뒤따라온 쪽팔림 때문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외할머니께서 내가 무안하지 않도록 전혀 나무라 하지 않고 배려를 해주신 것에 감동했기 때문에 이 기억이 내게 각인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배운다. 어느 누군가가 보편적인 상식을 몰랐을 때, 그 사람의 과거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모를만한 상황인 건가? 알 기회가 없었나 보다.

아마 나도 그 환경에서 살았으면 몰랐겠지.

창피하지 않은 방법으로 알려줘야겠다.


그 사람이 생각했을 때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분명 나도 모를 수 있을 테니까.

그런 과거를 가졌다면 오히려 모르는 게 당연한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