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쁠수록 잘라내야 하는 이유

by 나나용

나는 근처에 화훼시장이 있으면 꼭 들려서 새 식구- 그러니까, 식물을 꼭 데려오는 편이다. 정신 차려 보니 같은 지붕 아래에 사람 둘, 고양이 둘, 강아지 하나, 그리고 식물 육십 마리(?)가 함께 하고 있다.


초록이들은 겉으로 표현하는 개성이 각자 너무나도 다른 게 신기해서, 하찮을지언정 각자 소중한 생명이라서 나는 식물이 참 좋다. 게다가 하나, 하나씩 관찰하며 시간을 보낼 때면 회오리치던 마음이 가라앉게 된다. 내가 책임진 것을 나 몰라라 하게 되면 이 여러 생명은 목말라 괴로워하다가 죽겠지, 싶어서.


다행히 식물의 생존을 위한 필수품은 흙, 햇빛, 물 정도로 아주 간단하다. 때로는 양분 보충을 위해 흙을 교체해 주거나 복합 영양제를 주기도 하며, 화분이 다소 비좁아지면 분갈이도 해준다.


그리고 식물의 키가 기특하게도 쑥쑥 자랄 때면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가지치기란, 수형, 햇빛과 통풍, 그리고 식물의 건강한 성장을 돕기 위해 가지나 뿌리를 잘라내는 거다.

한 줄기로만 뻗으며 자라던 (건강한) 식물의 가지를 잘라내면 그 상처 옆에서 새순 여러 개가 돋는다.


나도 무언가 잘려 나갔을 때 새순을 더 많이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가지치기를 과감하게 하는 편이지만, 버젓이 살아있는 가지를 싹둑 잘라낼 때는 늘 마음 어딘가가 불편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죄책감이 든다.


나는 만 여섯 살 때 실수로 내 생의 첫 가지치기를 범했다. 실수는 죄책감이 따라오기 마련이고, 아직 미성숙한 내 마음을 뒤덮었던 그때의 감정이 지금까지 이어진 게 아닐까 싶다.


첫 가지치기를 (실수로) 했던 내 기억의 자초지종은 이러하다.


나는 아프리카 가나에서 자랐다. 내가 만 여섯 살이었던 1999년도 기준으로, 한국에 비하면 그곳 땅값이 매우 저렴했기 때문에 우리 집과 바깥 정원이 상상 이상으로 넓었다.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내가 방금 아빠에게 전화로 팩트체크(fact check)를 했다. 그때 살았던 집은 이층집으로, 각 층이 100평이었다. 페인트칠한 철 게이트(대문)부터 정원 끝까지 길게 이어진, 시멘트 바닥의 야외 주차 공간과 그 양옆으로 펼쳐진 정원은 총 387평이었다. 아무래도 어린아이가 탐험하며 놀기 딱 좋은 공간이었다.


가나 전통 옷 입고 주차장 한가운데에서 찍은 사진. 당시에 살던 집으로, 집 양옆과 뒤로 정원이 있음. 뒤쪽에 보이는 건물은 우리 집이 아닌, 당시 우리 아빠 회사에서 사무실로 쓰던 건물.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집은 왼쪽 나무 수풀 너머로 있음. 닭 두 마리는 옆집 닭이 넘어온 것.


나는 저 초등학교 때까지 거의 매일 우리 집 정원에서 놀았는데, 다른 아이와 유독 다른 점이 있다. 나는 거의 뛰지 않았다. 대신, 관찰을 통해 주변 자연을 오감으로 느꼈다. 정원 풀밭 여기저기에는 각종 나무와 꽃이 자라고 있었는데, 나는 잔디밭을 누비며 귀뚜라미도 잡았다가 놔주고 나비도 두 손 사이에 머금었다가 날려 보내기를 반복했다. (지금은 작은 벌레만 나타나도 정신이 혼미해진다.) 하지만 가장 흥미를 느꼈던 건 각종 식물을 관찰하고, 맡고, 만지는 것이었다. 각기 다른 식물의 잎이 신기했다. 거친 아이, 반들반들한 아이, 그리고 따가운 아이. 향기 나는 꽃, 노란 분이 묻어나는 꽃, 그리고 끈적한 꽃까지.


각 생명이 내뿜는 매력을 충분히 이해하고 싶었다.


집 뒤쪽에는 정원을 가로지르는 오솔길이 있었다. 그 길 오른쪽에는 기다란 장미 수풀이 심겨 있었는데, 나는 그 장미 줄기에 달린 수많은 가시를 옆으로 젖혀서 똑 따는 걸 취미 삼았다. 몇 시간씩이고 가시를 하나씩 떼어냈다. 마치 뽁뽁이를 하나씩 터트리는 것과도 같은 성취감이 들었다.


갑자기 딴 얘기가- 정말 어이없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가나는 계절이 우기와 건기뿐이라 그 장미 넝쿨은 사계절 내내 피었고, 잘 자랐기 때문에 가지치기가 주기적으로 필요했다. 그런 업무를 위해 고용된 현지인 가드너(정원사)는 그 일이 귀찮았나 보다. 자,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가나 현지인은 믿으면 안 된다. 식당에서 휴대전화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면 종업원이 주문을 받고 나서 은근슬쩍 들고 간다. 걸리면, "아, 내 건 줄 알았다"로 마무리된다. 집 안에서도 귀중품이 내 시야를 벗어나면 현지인 식모가 훔쳐 간다. 냉장고 안에 있는 달걀 개수, 오렌지 개수까지 세어놓고 먹어야 한다. 작은 예시를 들자면, 어느 날은 아침에 일어나서 거실로 나가보니 텔레비전이 없어진 상태였다. 알고 보니 우리 집에서 먹고, 자고, 일하고 월급 받는 직원이 작당하고 텔레비전을 훔쳐 누군가에게 팔아넘긴 거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텔레비전을 훔치기 위해 우리 트럭을 이용했고, 그 트럭은 우리 운전사가 몰았고, 철제 게이트는 우리 집을 지키라고 고용한 경비가 열어줬다. 황당하게 느껴지는가? 그런데 이 정도 촌극은 놀랍지도 않은 일상이다. 그래서 취침 전에 잠그는 문이 서너 개 정도 되었다. 물론 집 내부에서 말이다.


하여간 이런저런, 상식을 뛰어넘어도 월등히 뛰어넘는 일들이 흔히 일어나는 곳이다. 그런데 아빠가 귀찮은 가드너에게 장미를 다듬으라고 말했다. 다음 날, 내가 사랑하는 장미 덩굴이 홀라당 없어졌었다. 몇 개월에 한 번씩 가지치기하는 게 귀찮다는 이유로 가드너가 장미를 아예 뽑아버린 것이다. 아직도 황당하다. 그 해결방안이 기발하기까지 하다. 25년이 넘게 지난 일이지만, 우리 아빠도 여전히 황당해하고 있을 거다.


하여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장미 넝쿨이 감싼 잔디밭에는 여러 나무가 살았는데, 그 중간에는 커다란 꽃나무가 있었다.

난 그 꽃을 정확히 기억한다. 가쪽에는 연 핑크색으로, 중간으로 갈수록 노란색을 띠었다. 꽃은 여러 개가 뭉텅이로 피었고, 잎은 넓적하니 길었다.

찾아보니 하와이를 대표하는 꽃이기도 하며, 이름은 플루메리아(Plumeria)로 열대식물이라서 가나에서도 잘 자란다.


Plumeria Flowers.jpg 출처: Freepik


이 꽃에서는 짙은 향기가 났다. 그리고 이파리가 보들보들했고, 엄지와 검지 사이에 이파리를 잡고 살짝 문지르면 보드라운 분 같은 물질이 묻어나는 듯했다. 그 고운 냄새가 내 손가락에도 배었다.


나는 이 꽃이 너무 탐스러웠다.

그래서 하나만 따기로 했다.

나무의 가지는 낮게, 길게 뻗어 있었다. 모든 가지는 목질화(식물의 줄기가 나무처럼 단단해지는 현상)가 되어 있었고, 가지의 끝에서 난 짧고 짙은 분홍색 줄기에서 꽃이 여러 개씩 피어났다. 나는 하나만 따고 싶었기 때문에 손이 닿는 가장 예쁜 꽃을 골라, 그 줄기를 엄지와 검지로 잡았다. 내가 기억하는 가지와 꽃은 아래 사진과 비슷하다.


출처: Freepik


하지만 줄기가 생각보다 쉽사리 끊어지지 않았다. 꽃을 떼기 위해 나는 줄기를 잡고 아래로 당겼다. (키가 작았기 때문에 줄기를 아래로 당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그 긴 가지가 통째로 떨어져 버렸다.

꽃 하나를 따려다가 나보다 키가 큰 가지가 통째로 잘린 거다.


나는 놀라서 가지가 잘려 나간 나무의 몸통을 살폈다. 팔이 잘린 곳에서 피가 나듯 하얀 액체가 방울방울 맺히며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손에 쥐고 있던 꽃의 줄기를 놓고 집으로 있는 힘껏 달렸다.

사실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한 게 거의 처음인데 (이 글을 쓰기 직전에 남편에게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기억을 되돌아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심장이 쿵쾅거린다. 그 꽃나무를 다시는 건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자연에서 피어난 꽃을 따지 않는다.


그렇지만 성인이 돼서 식물을 본격적으로 키우며 알게 됐다.


가지치기해야 새순이 잘 돋고, 통풍이 잘되며, 식물이 제대로 자란다는 걸.


내 눈에 유독 예쁜 식물이 있을 때, 그 아이만큼은 더 과감하게 가지치기를 해주게 되는 이유이다.


사람도 그런 걸까?

좌절하고 낙심하는 경험이 있어야 더 건강한, 성숙한 사람이 되는 걸까?
어쩌면 살아가면서 입는 상처는 내가 한 뼘 더 자라날 기회가 아닐까.


당신도 만약 상처를 입었다면, 아니- 가지가 통째로 잘려 나갔다면, 아픔을 딛고 자라난 건강한 새순이 훨씬 더 많기를 바란다. 당신의 가지가 새로운 이파리와 꽃으로 더욱더 풍성해지기를.


나도 이제 플루메리아 나무를 본의 아니게 가지치기(?)해 줬던 일에 대한 죄책감을 좋은 에너지로 바꿔보려고 한다. 어쩌면 그 플루메리아 나무는 내가 다시는 가까이서 있지 않아서, 어루만져주지 않아서 슬퍼했을지도 모르겠다. 생명의 소중함을 참 이른 나이에 일깨워 줬던 그 어여쁜 나무에게 이제부터는 죄책감이 아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