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더 무비’ 영화를 보러 오랜만에 영화관에 갔다. 참고로 볼 거면 꼭, 꼭 IMAX로 봐야 한다.
영화관에 가면 준비한 팝콘이나 주전부리를 먹으며 광고를 시청하는 게 큰 재미이다. 집 앞 CGV에서 하루에 영화를 네 편씩(n회차 포함)도 보던 우리 엄마가 말하기를, 자고로 팝콘은 영화 시작 전에 다 먹어야 하는 거란다. 그래야 영화 보는 중에 다른 사람한테 와그작- 거리는 소리가 민폐가 안 된다고. 그렇다, 엄마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내가 그 면모 쏙 빼닮아서 딱히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나와 남편은 매번 적응되지 않는 크기의 IMAX관 중간 자리쯤에 앉아 광고에 집중한다. 그리고 광고가 끝나면 틈틈이 남편에게 이런저런 코멘트를 한다. 신한카드 광고를 보고는 "와- 저 카드 진짜 만들고 싶은데!? ㅋㅋ"라며 유혹을 떨치고, 익산 고구마를 재료로 선택한 맥도날드의 의외로 서정적인 신메뉴 광고에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감성을 따라 한 건가…", 라며 의아해했다. (그래도 광고 효과를 무시하지 못하는 게, 다음 날 맥도날드 드라이브 스루 전광판에 띄워진 그 제품을 알아보며 반가워했다).
그러다가 숙연해지는 광고가 나왔다. 이노션과 빙그레사의 광복 80주년 캠페인, ‘처음 듣는 광고’. 광복절에 찍은 사진은 당신도 아마 익숙할 거다. 그런데 이 광고는 AI 기술로 그날의 함성을 재현해서 들려주었다. 광고 내용은 그 함성을 당시의 사진에 입혀서 들려주는 걸로 끝이다. 그것만으로도 가벼웠던 마음이 잠시나마 숙연해졌다. 광고가 여러 번 나오면 지루하기 마련이지만, 이 광고만큼은 볼 수록 마음이 미묘해졌다.
나는 광복이 80주년이라는 게 나름 충격적이다. 아직 우리나라를 되찾은 지가 80년밖에 안 됐다니. ‘대한민국’으로 개명(?)된 게 불과 77년 전이라니…!
내가 왜 이 얘기를 하는지 매우 의아할 것이다. 분명히 펭귄에게 새우깡을 줬다길래 들어와 본 걸 텐데 말이다. 도대체 펭귄이랑 광복이랑 무슨 상관인가 싶을 거다. 그래도 내가 당신을 낚으려는 건 아니니 안심하기를 바란다. 그냥 말이 길어진 거다.
내 이야기의 종착역은 펭귄이 맞으니까, 속는 셈 치고 일단 들어줬으면 좋겠다.
어쨌든 다시 광복으로 돌아와서… 위키피디아에서 광복 당시에 찍은 (공유 저작물) 사진을 찾아왔다.
엄청 옛날 같지 않은가?
흑백 사진이라니, 우리는 흑백으로 만들려고 카메라 필터를 입히는데 말이다.
여자들의 쪽 찐 머리를 보아라. 아주, 아주 옛날옛적 조선시대의 일 같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이름이 ‘조선’이었던 건 그리 오랜 일이 아니라는 거다.
그러니까 80년 사이에 우리는 몰라보게 바뀐 거다. 그리고 가장 많이 변한 건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80년 전에 결혼 장려? 다둥이 혜택?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 그리고 동물 권리!? 사람조차 인권이 없고 서민 모두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기까지 하는데 (물론 배부른 사람도 있었겠지만), 동물의 안위는 무슨- 잡아먹기에 바빴겠지. 비건!? 조선 시대 사람이 들으면 놀라서 뒤로 자빠질 얘기다. (참고로 나는 동물 자식(?) 세 마리나 키우는 동물 애호가니까 혹시라도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말이 그렇다는 거다.)
지금 내가 광복 얘기를 통해 인식 얘기, 동물 인권 얘기까지 온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1995년도 5월 중순쯤에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내가 남쪽 땅끝으로 불리는 남아공의 볼더스 비치(Boulders Beach) 해변의 어느 작은 바위 위에서, 현재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한 케이프 펭귄(Cape penguin)에게 알 수 없는 먹이를 대가 없이 나눠줬던 기억을 합리화하기 위해서이다. (내 기억이 사실이라고 우리 엄마가 보증 서준 적이 있다.)
그러니까.. 그때는... 1995년도에는, 그게 가능했나 보다. 나도 처음에 우리 엄마, 아빠가 규칙을 어긴 게 아닌가 의심했지만, 찾아보니 자연 보존에 대한 정부 계획에 "관광객이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못하게 하자"는 이야기가 1998년도에 처음 거론됐다 (출처: Maria Island National Park and Ile Des Phoques Nature Reserve Management Plan 1998).
어디 가서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나는 야생 펭귄한테 먹이도 줘본 사람이다. (절대 자랑은 아니다.)
만약 이 썰을 누군가에게 또 푼다면, 그때도 광복 얘기로 시작해, 인식 얘기를 찍고 펭귄 기억에 종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30개월 먹은 나도 야생 펭귄에게 먹이를 준다는 게 얼마나 이례적인 일인지 알았나 보다. 파도가 넘실거리는 해변가의 바위에서 펭귄에게 무언가를 던져 주는 기억이 짧지만 선명하다. 어려도 알았던 걸까… 펭귄에게 농심 오리지널맛 새우깡(은 당연히 아니었겠지만)이 안 좋다는 걸…. (손이 가요, 손이 가..)
요즘에는 인식이 그새 많이 바뀌어서 자연이 생존하는 곳 어딜 가나, “먹이를 주지 마시오”라는 문구가 대문짝만 하게 적혀있다. 동물을 위해, 그리고 인간을 위해서일 거다. 동물은 위기에 처하게 되고 인간은 생태계가 무너지면 환경 변화를 통해 장기적인 위협을 받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펭귄은 칼날 같은 이빨을 가졌는데 만약 공격하면 심하게 다칠 수 있다고 주의하라던데…. 우리가 먹을 걸 주니까 호의적이었던 건가……? 아니면 그냥 운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에 펭귄의 서식지인 볼더스 비치와 그곳에 사는 케이프 펭귄을 한참 조사했고 내가 알아낸 정보는 다음과 같다.
케이프 펭귄의 키는 평균 60cm, 몸무게는 3.3kg으로 아주 쪼꼬미인 축에 속한다.
떠돌아다니던 펭귄 무리가 1982년에 처음 이 해변을 발견하고 정착했다. 내가 그 해변으로 놀러 가기 13년 전이다.
남아공과 나미비아 전체에 수백만 마리가 살았는데, 한 세기 만에 99% 이상이 줄어 2024년에는 17,500마리가 되었다.
2024년에 멸종 위기 동물 ‘위급’ 등급으로 지정됐다. 일곱 단계 중에 높은 순으로 세 번째 단계이다. 그런데 첫 번째 단계는 '절멸'이기 때문에 사실상 위기 단계로는 두 번째로 심각한 단계라고 볼 수 있다.
현재 가장 큰 위협은 어업 활동이나 기후 변화로 줄어든 정어리, 멸치와 같은 주 먹이 부족이다.
어쨌든 보호해야 하는 동물로 이제는 사람이 펭귄 가까이 가지 못하게 펭귄이 사는 모든 구역에 펜스가 쳐져 있다. 그리고 “먹이를 주지 마시오”는 아주 당연한, 알려주지 않아도 아는 기본 규칙이고 관광객에게 아주 강조되는 사항이다. 아무래도.. 펭귄이 새우깡이나 땅콩을 먹고 배탈 나서 개체 수가 줄면 너무 황당한 일이니까..
도대체 우리는 뭘 먹이로 줬던 걸까…? 알고 싶은데 알기 싫다..
현지인이 펭귄 먹이라며 길가에서 파는 걸 사지 않았을까.
하여간, 인식이 그렇게 많이 바뀌었다는 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다. 아주 아무렇지 않았던 일이 더 이상 괜찮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뒤떨어지는 것보다는 (나쁜 목적을 위한 추세가 아니라면) 열심히 요즘의 인식을 쫓아가려고 노력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에코 프렌들리(eco-friendly), 업사이클링(upcycling), 소수민족의 인권 문제, 관련된 정치 문제. 억지로라도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 물론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는 게 더 많긴 하다.
나는 이 글을 쓰며 다짐한다.
1. 펭귄을 보호하자.
2. 갈매기도 새우깡 주지 말자. (갈매기가 갈수록 너무 가까이 날아서 너무, 너무 무섭다..)
3. 내 동물 자식을 유기하지 말자. (애당초 자식은 등골브레이커다. 등골 빼줄 자신 없으면 데려오지 말자.)
4. 과거 관습에 매여있지 말고, 인식 면에서만큼은 앞서나가려고 노력하자.
5. 꼰대가 되지 말자.
6. 얼굴은 갈수록 주름지더라도, 내면만큼은 유연한 마음을 가지고 젊게 살자.
역시 당신과 함께하는 대화는 늘 재미있다.
광복에서 펭귄까지, 참 장황했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답시고 함께 멀리 돌아와 줘서 참으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