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용규
김용규 님의 ‘생각의 시대’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 500페이지가 넘는 생각에 대한 전문가의 사유 전반을 내가 리뷰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책을 덮은 뒤에도 가슴에 꽂혔던 한 줄에 대해서만 리뷰를 하고자 한다.
<동물들은 단지 시각을 통해 얻어진 장면들이 마치 스냅사진처럼 존재하는 현재라는 독재자에 얽매여 산다.> (생각의 시대 308p/ 저자 김용규)
가슴에 꽂힌 한 줄은 바로 이것이다. 이 멋진 문장이 나오기까지 저자는 루리야나 올리브 색스 같은 정신병리학자의 실험을 예로 든다. 수화도 배우지 못한 청각장애인과 문맹들에게 간단한 질문을 던지면서 정규 교육과정을 밟은 일반인들과 사고를 비교하려는 실험이다. 이 실험의 목적은 언어가 인간의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려는 것이다.
결과는 이렇다. 문맹들은 언제 추수가 잘 되고 돼지 부위는 어디가 맛있는지에 대해서는 대답을 잘한다. 그러나 시간, 공간, 인과관계, 목표의식, 추상화 능력을 확인하는 질문에는 대답을 못하거나 회피한다. 그들이 피하는 질문이란 미래 계획이나 자신이 개선할 점, 인간이 갖춰야 할 덕목 같은 것들이 있겠다. 문맹들은 실생활에서 만져지지 않는 추상적인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도 없으며 상상했을 때조차 떠오르는 것이 없기 때문에 대답을 못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에서 몇 가지의 소설들이 떠올랐다.
하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오는 카레닌이라는 개의 이야기다. 밀란 쿤데라는 말한다. 인간의 인생 곡선은 구불구불할지라도 뻗어나간다. 개는 다르다. 개의 인생곡선이란 오늘은 내일의 다름이 아닌 순환(원과 비슷한)이라고 볼 수 있다. 개들은 먹고 자고 싸고 꼬리를 흔든다. 침대 밑에서 자다가 주인이 일어나면 같이 밖으로 나와서 꼬리를 흔드는 걸로 아침을 시작한다. 나중에는 주인 침대 밑에서 다시 잠든다. 물론 개들에게도 변화가 있다. 낯선 이를 보면 짖는다. 개들은 낯선 사람에게 짖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낯선 것을 자기의 원(순환 곡선) 안으로 받아들인다. 개들은 크게 다르지 않은 트랙을 반복하며 사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짐승만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니다. 이 새로운 사실이 이 책을 통해 받은 인사이트다. 소설 ‘아큐정전’에서 아큐는 인간이다. 루쉰이 쓴 이 소설은 ‘아큐’라는 무지몽매한 인간이 어떻게 이유 없이 처형대로 향하는지 잘 보여준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아큐는 매일 반복되는 주변 사람들의 모욕과 멸시에 씩씩거리다가 처음으로 받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어리둥절해하면서 처형대로 걸어간다. 마치 그에게는 그런 죽음도 나쁘지 않다는 듯이 그려 놨다. 그것은 ‘아큐’에게는 내일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하고 술을 마시고 씩씩거리는 것을 반복하는 삶. 그것은 현재라는 스냅사진을 반복하는 짐승의 삶과 다르지 않다. 문득 ‘생쥐와 인간’의 유명한 문구가 떠오른다. 누구나 머릿속에 땅 덩어리 하나는 가지고 산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벌어들인 소작료를 가지고 위스키를 마시러 가거나 사창가로 향한다.
언어 학습의 없다면 인간은 아주 기본적인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마저도 배우지 못한다. 여기서 이 말이 떠오른다. ‘인간의 새끼가 짐승들 중 가장 약한 이유는 인간은 진화를 택하지 않고 학습을 택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이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학습(인풋)의 총량에 의해 많은 것을 결정되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인풋은 생각을 결정하고, 생각은 아웃풋을 결정한다. 학습(인풋)이 없으면 인생은 경영되는 것이 아니라 컨베이어 벨트처럼 그저 회전하는 것이 아닐까.
정리하자면 인간은 언어를 만들었지만 언어가 인간을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역시 비슷한 것 같다. 문학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나도 그런 문학을 만들고 싶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