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매력은 주인공 바틀비보다 말하는 화자라는 생각이 든다. 화자는 중년의 변호사이며 자기 사무실 안에 있는 칠면조와 펜치라는 두 필경사를 우스꽝스럽고 재치 있게 묘사한다. 그것은 바틀비가 등장하기 전까지의 자칫 지루한 월스트리트 어딘가에 자리 잡은 사무실의 일상으로 독자를 빠져들게 한다. 그렇기에 화자가 주변을 설명하지만 독자에게 화자 자신을 이해시키는 방법 같다. 그의 어투는 너그그러우면서 재치 있고 평화를 추구하고, 약간은 소심하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는 결말에 상관없이 유머러스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화자의 변호사 사무실에 일이 많아지면서 바틀비는 등장했다. 바틀비 역시 필경사로 고용된 것이다. 필경사라는 직업은 문서를 베끼는 직업으로 지루한 작업을 견디는 인내심은 요구되지만 평범함 이상의 대단한 능력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이 소설의 제목은 필경사 바틀비다. 바틀비는 보통 인물이 아니며 그로 인해 본격적인 스토리는 시작된다. 처음부터 바틀비가 어떤 기행을 일으키는 건 아니다. 연약하고 창백해 보이지만 차분함과 신사다움이 마음에 들었기에 화자는 바틀비를 자기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힌다. 그리고 사람을 제대로 봤다는 듯이 바틀비는 한 동안 마치 걸식 들린 사람처럼 문서를 먹어치우듯 일을 해치워 나간다. 그러다가 소설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바틀비는 고용주(화자)가 시키는 타당한 업무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바틀비의 거부하는 방식이다. 그는 시종일관 “안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I prefer not to)”라는 말을 내뱉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동요하거나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왜 거부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모른다. 결국에는 일체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자리에 앉아 고요하게 벽만 쳐다본다.
고요한 바틀비와 다르게 화자의 마음은 들쭉날쭉한다. 고용주로서 화를 내기도 하지만 그는 선천적으로 따뜻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인간이다. 그는 바틀비에게서 끝 모를 고독을 느낀다. 그렇기에 바틀비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으려 한다. 혹은 어린아이를 다루듯 대화를 시도하고 구슬려보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나 돌아오는 말은 “안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말이다. 나는 화자가 마치 투정 부리는 어린아이를 어떻게 다룰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어른처럼 느껴졌다. 결국 화자도 바틀비의 기행을 감당하지 못하고 바틀비로부터 달아난다. 고용인을 해고하는 것이 아닌 자기가 사무실을 빼고 도망을 간다.
바틀비는 고용주가 떠난 건물을 떠나지 않은 채 부랑자로 남아 결국은 감옥으로 간다. 그가 감옥에서 혹독한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의 관심 아래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앉아 여전히 벽만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먹는 것도 거부했기에 그는 그 상태로 조용히 잠든다.
나는 바틀비가 어린아이와 어른의 양면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솔직함, 연약함, 무기력함, 떼쓰는 아이 같은 느낌과 그 와중에 공손하고 차분한 신사 같은 모습이 있다. 몸은 컸고 어른의 관습을 배웠지만 더 이상 이 세계로 편입하기를 거부하는 느낌이다.
화자는 바틀비가 죽은 후에 설명한다. 그의 기행의 원인은 이전에 수취인 불명인 편지를 태우는 일을 한 뒤에 오는 후유증이라고. 선천적으로 고독에 물들기 쉬운 인간이 그런 일을 한 것을 원인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잘 모르겠다. 편지를 쓰지 않는 세대여서 그런지 이 설명이 내게 충분치 않다. 다만 생각해 본다면 어른인 나로서는 일하기, 먹기와 같은 생명 활동을 거부한 채 벽을 바라보는 바틀비의 행동이 이해 안 가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어린아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어린아이라면 수취인 불명의 편지를 하늘로 올려 보내고 싶어 하지 않을까. 보통 어린아이라면 편지를 태워 하늘로 날아가는 연기를 보며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고독에 물든 어린아이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갈지도 모른다. 벽을 보며 편지를 곱씹어 자신이 직접 하늘로 배달하는 방법을 택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세상에서 수많은 문서와 밥으로는 자신의 고독을 치유할 없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