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멋진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by 홀론씨

SF는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멋진신세계나 1984만큼 그것을 보여주는 소설은 없다고 생각한다(왠지 1984 서평에서도 똑같이 말할 것 같다). 지금 우리네 문제가 극한으로 수렴한다면 곧 멋진신세계가 펼쳐질 것만 같다.

멋진신세계에는 많은 설정?이 깔려있다. 갈등 없는 계급, 항시 보급되는 소마라는 마약, 자연분만이 아닌 인공수정 등. 뭐 그런 것들이다.

멋진신세계의 이런 설정들은 많은 것들을 시사하지만 나는 먼저 자연분만을 야만적 행위로 취급 받는기에, 인간을 플라스크 인공수정 만드는 설정에 집중하게 되었다. 자연분만은 아마 소마로도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고통일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이다. 새싹이 고개를 쳐들고 잠자리가 젖을 날개를 펼치는 안간힘 같은 게 아닐까. 고통의 종류로 따진다면 원죄와도 같다. 비록 제왕절개가 있지만 엄마와 아기는 서로에게 고통을 가하고 받으며 그것을 이겨내고 태어난 것이다.

그것은 사랑과도 같다. 사랑은 나 이전에 누군가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나는 낮아지고 상대는 높아지는 것의 출발이다. 아무리 곱씹어봐도 잘못은 걔가 했는데, 방귀 뀌고 성내는 상대를 달래줘야 하는 것과 같다.

사랑은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 어린아이가 타자를 결정적으로 인식하는 작업이다. 처음의 그것은 고통스럽다. 나를 낮아지고 상대를 높아지니까. 내가 부족해서 상대를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생긴다.

멋진신세계에서 사랑의 빠진 여성은 소마를 흡입한다. 소마가 떨어지면 사랑의 감정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나는 그 감정을 기억한다. 당구에 빠지면 눈뜨자마자 내방 천장에다가 쓰리 쿠션을 그렸던 것처럼, 눈뜨면 다시 잠들고 싶을 정도로 괴롭게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그것이 가질 수 없는 상대에 대한 마음. 짝사랑의 감정이었다. 만약 이 시대에 소마가 있었다면 나도 그 감정을 물리치기 위해 거침없이 그것을 흡입했을 것이다.

멋진 신세계에서도 사랑을 한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어디든 붙일 수 있는 추상적인 단어이기에 사랑은 어디에든 존재할 수 있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소마를 흡입하고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성관계를 할 수 있다. 많은 과정이 생략된 자기 쾌락을 얻는다. 우리가 버튼 한 번과 클릭 몇 번으로 직바구리, 따오기 폴더를 열어서 얻을 수 있는 그런 것과 흡사하다. 멋진 신세계에는 현자타임은 없는 것 같지만 말이다.

어쩌면 사랑은 자기부정, 열등감, 결핍이라는 부산물을 만든다이다. 그러나 그 부산물이 정신승리가 아닌 인간이 자기의 인생에서 승리하기 위한 발로라고 볼 수 있다. 그 부산물은 비극을 탄생시키지만 극복과 자절을 통해 미학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에는 유독 세익스피어가 많이 언급된다.

절대적인 무가 펼쳐진 우주에서 한 줌의 빛이 없다면 그것은 살얼음마저 손난로처럼 느껴지는 세상일 것이다. 그것은 절망의 끝이다. 그러나 태양과 가까운 수성이 무한한 환희로 인해 대기마저 날아간 채 한쪽 면은 끝없이 달구어진다. 멋진신세계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적절한 균형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것은 다만 행성과 항성간의 적정 거리를 말하는 골디락스 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쾌락과 고통의 균형에도 골드락스 존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어느 우주에 먼지 위에서 사는 생물이 돌맹이를 깨서 사냥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원동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멋진신세계를 살아간다고 생각해 본다. 자기 쾌락과 환희가 가득 찬 세상. 계급투쟁과 갈등이 없는 세상. 어딘가 즐겁긴 할 것 같다. 즐겁지만 즐거움이 없는 곳. 모든 게 빨간색이라면 빨간색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끝으로 고통의 미학을 아는 야만인(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인간)은 홀로 채찍질을 하는 와중에 사람들에게 조롱받는다. 고통 없는 이 세상에서 고통의 미학을 혼자 알게 된 인간은 고독한 것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것이 올더스 헉슬리가 우려한 바인 것 같다. 행복과 쾌락을 좇는 우리네 삶을 풍자한 것이다. 나는 이승을 비하하는 기독교적 고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들 나락으로 떨어지라는 말이 아니다. 그저 환희의 찬 인생은 백치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마치 자전하지 않는 지구의 밝은 면에서 사는 인간과 같다. 그곳에는 생명이 끼어들어갈 틈이란 게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모두 자기 인생으로 찾아온 고통도 하나의 행복으로 가는 길임을 인식하고 극복하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에로스의 종말(현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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