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이방인을 읽고

written by 알베르 카뮈

by 홀론씨

나는 3년 전에 처음 이방인을 읽었다. 그때도 나는 먹고사는 일에 나 자신을 옭아매던 중이었다. 그것마저도 잘 안되는 그런 시기였다. 하필 그런 시기에 나는 이방인을 집어 들게 되었다. 왜 하필이냐면 나는 이방인을 다 읽은 다음 날에도 출근했어야 했다. 회사에서도 꽤나 정신 차리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만큼 악랄하게도 내게서 많은 것을 뒤흔든 책이다.

다시 한번 책을 펴는 순간 그동안의 독서는 이방인을 다시 읽기 위한 것이라는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왜냐면 첫 문장이 ’오늘 엄마가 죽었다.’ 였기 때문이다. 다시 읽어보니 이것이 말하는 투는 ‘대체로 맑지만 오늘은 비가 내렸다.’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뫼르소에게 있어 어미의 죽음은 그런 것이었다. 평범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다가올 우중충한 어느 날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것은 그가 말하듯 그의 잘못이 아니다.

어머니 장례식 이후에도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자기 입으로 먼저 말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렇다. 만약 꺼냈더라도 그것은 주변인들이 안부를 물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하우 두 유두를 말하고 곧바로 아임 소리 투 히얼 댓을 말했을 것이다. 안부를 묻는 것도 애도를 하는 것도 주변 사람의 몫이지 뫼르소의 몫이 아니었다. 그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지나간 일이며 한 번은 겪었어야 할 일이다. 그것은 어머니가 양로원에 가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이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양로원에 처음 간 날 그의 어머니는 울었다고 했다. 우리는 어쩌면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원치 않게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올 때, 우리는 거기서 느끼는 당황스러움을 슬픔으로 착각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초면의 당황스러움은 곧 익숙함에 손을 내민다. 그렇듯 뫼르소의 어머니도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 역시 그의 어머니도 첫날 조금 당황한 게 분명하다.

주인공은 과거보다는 현재를 말한다. 그는 앞 집 사람의 사소한 의자 배치와 더 편한 자세 따위를 중요한 것처럼 말한다. 그리고 붐비는 거리가 한산해질 때까지 지켜본다. 이것이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요구하지도 요구받지도 애도하지도 위로받지도 않는다. 지켜보고 관찰한다. 그 대상은 그와 닿아있는 이웃과 풍경, 날씨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태양에서 한 발짝 멀어지기 위해 또 다른 태양을 비추는 어느 누군가의 미간에 총알을 박아 넣은 것이 아닐까. 현재를 관찰하듯 할 수 있다면 자신을 비추는 태양으로부터 한 발짝 달아나는 것이다. 하필 그는 그때 총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이 소설의 대미는 죽음을 앞둔 그가 신부와 대화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 후에 이어지는 독백이다. 이것은 소설의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파도이다. 유난히 물놀이가 많이 나오는 이 소설에서 어떤 새찬 물살이다. 우정은 즐거운 한 때의 물놀이다. 두둥실 바다 위에서 무고한 잠은 파도에 의해 우리를 감옥 흘러 보내기도 한다. 내게 입술을 허락한 과거의 그녀가 오늘 또 다른 뫼르소에게 그러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없다. 서슬 퍼런 칼날이 목에 떨어지는 순간 떠오르는 얼굴은 예수가 아니라 나의 정욕일지도 모른다. 너의 신념은 머리카락 한올의 가치도 없다. 세상의 무관심을 부드럽게 느껴진다. 그것은 나와 닮았다'라고 뫼르소는 말한다. 왜냐하면 뫼르소는 알았던 것 같다. 그것이 항소를 하지 않았던 이유이지 않을까. 삶을 연장하지 못한다 해도 어딘가에서 또 다른 청춘들은 살아갈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뫼르소가 아닌 그들은 세대를 이어가기 위해 생산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그들도 마찬가지로 때 없이 불어온 바람에 떠나게 될 것이다.

소설의 끝 부분에서 뫼르소는 다시 살아볼 준비가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이 부분을 몇 번이고 읽었다. 그러나 아직은 이해할 수 없었다. 때 아닌 바람이 불어오는 게 두려운 내게는 아직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 같다.

끝으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뫼르소는 또 다른 카뮈다. 그것은 분명하다고 본다. 그의 안에 있는 또 다른 그가 세상에 말을 걸어온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뫼르소이자 카뮈가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어느 미래 시대에 살아가야 하는 내게도 말을 걸어온 것이라 생각한다. 죽은 시체에 남을 총알을 박아 넣듯 아무렇게나 인생을 던져버리는 것 같은 남자가 굳이 소설씩이나 써서 말을 걸어왔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나는 어쩌면 인생이란 한산한 카페에 앉아 주변에 잡히는 냅킨 위에 냅다 갈기듯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갈기듯 던져진 우리네 삶이 쓰레기 통에서 고전으로 떠오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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