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에서 남매는 통했다

by 책읽는 애나샘


어려서부터 난 게임치였다.

오락실에 가면 동전을 넣고 1분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그러니 게임이 재미없을 수밖에...

친구들과 오락실에 가도 난 주로 구경꾼이었다.

그런 내가 오락실에서 그나마 잘하는 것이라곤 너구리와 테트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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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돋는 너구리와 테트리스 게임~

아~~ 테트리스는 정말이지 막내 외삼촌과 오빠의 온갖 잔소리와 비아냥을 견뎌가며 터득한 게임이었다.

"야~~ 세상에 너처럼 게임 못하는 애는 처음 본다." "그만해라 그만해."

하도 그런 소리를 듣자 어린 나이에 오기가 생겼던 모양이다. 한 판을 깨기 위해 자주 가지도 않던 오락실을 다니며 무수한 동전을 바친 대가로 그나마 5판은 넘길 수 있었다.


이렇게 게임치인 나에 비해 두 살 위인 오빠는 내 눈엔 게임왕이었다.

오락실에서 못하는 게임이 없었고, 한 번 게임을 정한 후 자리에 앉으면 제한된 판까지 앉아있는 편이었다.

(모든 곳이 다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어릴 적 성남의 오락실에서는 게임 독식을 막기 위해 판수에 제한을 걸어두었더랬다. 예를 들어 '보글보글' 같은 경우 화면 위에 "40판 제한"이라고 쓰여있었고, 40판이 넘으면 무조건 게임 종료를 시키거나 전원을 꺼버리는 식이었다.)




그런 오빠가 겨울방학이었던 초등학교 3학년인 어느 날, 집에 있는 나를 불렀다.

"야, 나랑 오락실 같이 가자."

"왜?"

"응~. 네가 할 일이 있어."

게임치라는 걸 잘 알고 있는 오빠가 나한테 시킬 일이 뭐가 있을까?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평상시엔 잘 가지 않던 곳이었기 때문에 괜히 오락실에서 같은 반 친구라도 만날까 싶어 옷과 목도리, 마스크로 온 몸을 중무장하고선 쫄래쫄래 오빠를 뒤쫓아갔다.


오락실 안은 방학중이라 아이들로 북적북적했다.

아이들 틈을 비집고 오빠가 앉은 곳은 무슨 비행기 게임기 앞이었는데, 적의 총알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적을 맞추는 게임이었다. (1945 비슷한 게임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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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자주 했었던 게임들~



오빠는 나를 옆에 앉혀놓고선 동전을 넣고 신나게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한 판, 두 판, 세 판...

난이도가 점점 높아질수록 오빠의 손은 점점 더 바빠지고 있었다.

몇 판째인지 모르겠으나 꽤나 복잡해 보이는 단계였을 때 오빠가 나에게 나직이 말했다.

"거기 빨간 버튼이랑 하얀 버튼에 손가락 대고 있어. 그러다가 내가 누르라고 하면 빠르게 두 개 다 막 눌러야 돼. 알았지?" "응."

비장하게 난 각각의 검지 손가락을 빨간 버튼과 흰 버튼에 갖다 대곤 숨죽이며 오빠의 명령을 기다렸다.

새로운 판이 시작되자 오빠의 눈과 손가락은 정신없이 움직였다. 왼손은 방향을 바꾸느라 손잡이를 상하좌우로 빠르게 움직였고, 오른손은 버튼을 누르느라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주변에는 게임을 구경하려고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마 사람들이 잘 깨지 못하는 판이었던 것 같다. 오빠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판에 초집중하고 있었다.


12287_7288_324.jpg 손은 눈보다 빨리 움직인다.


게임이 절정에 다다를 무렵... 드디어 오빠가 외쳤다.

"눌러!!!!"

난 오빠가 시킨 대로 열심히 두 검지 손가락으로 정신없이 버튼을 눌렀다.

타 다다다, 타 다다다.

오빠랑 내가 이렇게 마음이 잘 맞았던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우리는 환상의 짝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 어렵다는 판을 깨고 오빠는 흡족했는지 나를 보며 "잘했어. 다음 판도 그렇게 하면 돼." 하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 칭찬이 뭐라고 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오빠가 하라는 대로 열심히 버튼들을 누르며 두세 판 정도를 더 했다.

주변 아이들의 시선이 적잖이 느껴지자 나름 우쭐해지기 시작했다.

고작 버튼 두 개만 열심히 눌렀을 뿐인데... 괜히 내가 게임왕이 된 것처럼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오빠와 함께 게임장을 빠져나왔다.




이제 삼십 년도 훨씬 지난 일이지만 오락실 하면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나름 재미있고 뿌듯한 날로 생각되어 그런가 보다.

오락실 안에 가득 차 있는 아이들의 그 북적거림과 구경꾼으로 여기저기 둘러보는 재미가 그리워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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